카드 고객정보 유출 등 잇단 악재로 곤욕을 치른 KB금융. 이번엔 임영록 회장(왼쪽)과 이건호 은행장의 갈등이 표면화돼 우려를 낳고 있다.
KB금융지주의 내부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KB금융뿐 아니라 금융권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은행 이사회에서 결정한 사항을 감사위원이 문제제기를 했고 이사회는 이를 묵살했다. 그러자 감사위원은 이를 금융당국에 보고, 검사를 요청했다. 이사회 의결사항임에도 은행장은 감사위원의 지적이 타당하다며 금융당국 보고와 검사 요청을 허락했다. 누가 봐도 내부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고 이를 통제하는 시스템은 허술하다.
카드 고객정보 유출, 도쿄지점 부당대출, 사외이사 고액 보수 논란 등으로 가뜩이나 비난의 중심에 있던 KB금융이 내홍을 겪자 곳곳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지금 집안싸움 할 때냐’는 것이다. ‘내부 단속이 그 모양이니 사건·사고가 빈번한 것 아니냐’는 비난도 거세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7월 임영록 회장이 KB금융지주의 새로운 회장에 오른 이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자 임 회장의 리더십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KB금융이 사업을 펼쳐나가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잇단 사건·사고로 사과하기 바쁜 데다 내부 갈등까지 표면화됐으니 이미지 추락과 사업 추진 난항은 불가피하다”며 “특히 금융권에서는 내부 갈등이 설로 돌아다니는 것과 외부에 알려지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KB금융은 올 초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인수전에서 NH농협금융지주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앞두고 있는 LIG손해보험 인수전도 낙관하기 힘들다.
KB금융 측이 설명하는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국민은행은 최근 이사회를 열어 전산시스템을 IBM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 기반 시스템으로 교체하는 것에 대한 안건을 의결했다. 그러나 정병기 상임감사위원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 이의를 제기했으나 이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 감사는 이건호 국민은행장의 승인을 받아 금융감독원에 검사를 요청했고 금감원이 검사에 착수하면서 사달이 났다.
KB금융 관계자는 “전산시스템 교체 건은 2012년부터 진행해온 것”이라며 “내년 7월쯤이 계약 만료인데 만료 1년 전에 미리 알려줘야 하는 것이어서 은행 이사회 개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KB금융이 주장하는 바는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와 감사 문제는 어디까지나 은행의 문제일 뿐 지주사와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지주사-은행, 이사회-감사위원회의 내부 갈등으로 비치는 것, 나아가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의 갈등으로 해석되는 것이 억울하다는 얘기다. KB금융 관계자는 “전임 회장 때 추진돼온 일인 데다 은행 이사회, 은행 감사 등 모두 은행의 문제인데 지주사가 엮어 들어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특별검사를 받는 KB금융은 고위 임원들의 징계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요신문DB
국민은행 측도 지주사와 관련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금융당국에 보고하는 것이 상임감사의 주요 임무”라며 “이사회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금감원에 보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달리 금융권에서는 이미 KB금융의 내부 갈등의 골이 꽤 깊이 패여 있으며 곪았던 상처가 터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명쾌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정 감사가 금감원에 보고하고 검사를 요청한 부분은 설명된다. 하지만 국민은행 이사회가 왜 정 감사의 문제제기를 묵살했는지, 이사회 결정에도 불구하고 왜 이건호 행장이 정 감사의 의견을 받아들여 금감원 보고를 승인했는지 KB금융과 국민은행 측 모두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잘 모르겠다”라는 답변뿐이다.
KB금융 사태가 내부 갈등으로 비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시스템 교체를 지주사가 진행하고 있으며 이사회 결정에 지주사의 입김이 작용했다, 시스템을 교체하기 위해 보고서까지 조작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정 감사와 이 행장이 반대했다는 것. 지주사가 추진하는 일을 은행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사회가 아예 정 감사를 해임하려고 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면서 KB금융은 ‘한 집안 두 식구’가 되고 말았다.
김재열 KB금융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전무)가 직접 나서 해명한 부분도 지주사와 은행 간 싸움으로 해석되는 원인이 됐다. 은행의 문제로 국한시키면서도 지주사에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김 전무는 또 “이 행장이 지난해 11월에는 승인해놓고 입장을 바꿨다”며 이 행장을 비난했다. 김 전무와 정 감사가 임 회장과 이 행장의 대리인처럼 비치기도 한다.
KB금융의 사태는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당장 KB금융 특별검사에 착수한 금감원이 검사 인력을 추가 파견해 검사를 강화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검사 인력을 증원하면서까지 특별검사에 착수한 이상 임 회장과 이 행장을 포함, KB금융 고위 임원들의 징계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금융당국이 잇단 금융 사고와 관련해 향후 금융사 CEO(최고경영자) 처벌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한 데다 지난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외친 터다. 임 회장은 재정경제부 관료 출신이며 이 행장은 한국금융연구원·KDI(한국개발연구원) 출신이다.
KB금융은 지난해 7월 임영록 회장이 새로운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 갈등마저 불거지고 이를 통제할 만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날 경우 두 사람의 자리가 위태로울지 모른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뿌리깊은 반목 모피아 vs 연피아 권력다툼 KB금융 내부 문제를 금융권의 힘이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박근혜 정부 들어 금융권에서 주목받는 곳은 한국금융연구원과 KDI(한국개발연구원) 등 연구기관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고영선 청와대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 등이 KDI 출신이다. 반면 모피아·관피아는 박근혜 정부의 금융권에서 배제되고 있다. 특히 ‘관피아 철폐’를 외칠 만큼 박 대통령은 모피아·관피아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모피아·관피아의 수가 연구원과 학계 출신 인사들보다 여전히 많지만 그 수가 현저히 줄었으며 그 자리를 연피아가 채우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행정고시 20회 출신으로 재정경제부 제2차관까지 지낸 임영록 회장은 전형적인 모피아·관피아로 통한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은 모두 현 정부의 낙하산 인사로 지목되는 인물들이지만 둘의 갈등이 현 정부에서 ‘뜨는 해 연피아’와 ‘지는 해 관피아’의 다툼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낙하산끼리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지주사의 오랜 폐해로 지적돼온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 간 마찰로 비춰진 것과 더불어 연피아와 관피아의 갈등으로 해석되면서 KB금융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사태가 확산되자 KB금융은 봉합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임영록 회장은 지난 20일 “이번 건은 전산시스템 수주 과정에서 생긴 의견 불일치”라며 “지주사와 은행의 대립구도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이건호 행장은 지난 23일 임시 이사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분쟁이나 갈등이 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금융권에서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사태가 이미 확산될 대로 확산되고 금감원 특별검사까지 진행되는 상황에서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3일 급하게 열린 임시이사회에서도 서로 의견을 조율하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국민은행 노조는 임 회장과 이 행장을 낙하산 인사로 지목, 둘 다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는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각종 금융사고와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확인된 경영실패도 모자라 내부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갈등을 외부에 표출하는 경영진의 무능력함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잇따른 경영실패의 책임 당사자인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 등 지주와 은행의 모든 낙하산은 즉각 사퇴하라”고 강조했다.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에서는 관피아로 분류되는 임영록 회장과 신진세력인 연피아로 분류되는 이건호 행장 간의 갈등이 어디까지 드러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임] |
지주사 회장-은행장 갈등은 필연? MB정부 때 4대 금융 모두 부글부글 지난 2001년 우리금융지주가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사로 출범한 이래 금융지주사에서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 간 마찰은 비일비재했다. 특히 지주사 회장이 정부의 낙하산 인사로 ‘꽂히는’ 경우나 과한 권한을 행사할 경우 갈등과 마찰은 심해졌다. 지주사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현실에서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의 의견이 어긋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겉으로는 지주사가 은행보다 위에 있지만 은행의 비중이 워낙 커 은행이 없으면 지주사 의미도 희박해지는 탓에 은행의 입김이 세다”면서 “이를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해 안간힘 쓰는 지주사 회장들은 전부 은행장과 갈등을 빚었다”고 털어놨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권력다툼’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을 겸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순우 우리금융 회장이 우리은행장을 겸직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민영화가 지상 과제인 우리금융으로서는 회장과 은행장의 의견이 사사건건 대립하는 것은 민영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사로 출범한 우리금융은 시작부터 윤병철 초대 회장과 이덕훈 당시 우리은행장(현 수출입은행장)이 의견 충돌을 빚었다. 갈등 원인은 지금의 국민은행처럼 전산시스템 도입 문제였다. 2007년에는 박병원 전 재정경제부 제1차관이 우리금융 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모피아 출신 낙하산 논란을 일으켰으며 박해춘 당시 우리은행장은 박병원 회장에게 여러 차례 반기를 든 것으로 알려졌다. 박해춘 우리은행장은 비록 민간기업(삼성화재) 출신이었지만 금융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사람으로 분류됐다. 모피아 회장과 민간기업 출신 은행장의 대립이었다.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 간 갈등과 대립이 극에 달한 때는 지난 이명박(MB) 정부 때다. MB 정부 때는 4대 금융지주라 불리는 KB, 우리, 신한, 하나금융에서 모두 지주사와 은행 간 갈등이 야기됐다. MB 정부 때 유독 심했던 까닭은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들이 전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지주사에서 은행의 비중이 압도적이었으며 지주사 회장들이 대부분 낙하산 인사로 지목된 인물들이었고 이들 회장들이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면서 은행을 지배하려 했다. MB 정부 때 4대 금융지주 회장을 가리켜 ‘천황’이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였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은 매트릭스 조직 체제 도입 문제로 이종휘 전 행장의 반발을 샀다. 이 전 회장이 사업 부문별로 대표를 따로 둬 수평적 조직체계를 만들겠다고 강조한 매트릭스 체제는 은행장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한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결국 이 전 회장은 이 체제를 도입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고려대 총장 출신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과 사외이사들의 극한 대립은 MB 정부 시절 금융권 사건 중 손에 꼽을 만한 일이다. ING생명 한국법인을 인수하려던 어 회장은 당시 사외이사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일로 어 회장은 사외이사들과 함께한 저녁 자리에서 술잔을 깨고 고성을 쏟아내는 등 ‘난동’을 부리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민병덕 국민은행장은 비록 ING생명 인수에는 찬성했으나 어 회장과 의견 충돌로 자주 부딪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1년 금융권을 강타한 이른바 ‘신한사태’는 지주사 회장과 사장, 은행장이 서로 진흙탕 싸움을 벌인 일로 회자되고 있다. 당시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차기 회장으로 거론되던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을 배격했고 신 사장은 이에 반발했다. 급기야 라 회장 사람으로 분류된 이백순 행장이 신 사장을 배임 혐의로 고소하면서 사태가 커졌고 결국 세 사람이 동반 퇴진하면서 진정됐다. 회장 자리에는 한동우 신한생명 대표가 올랐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도 윤용로 외환은행장과 자주 마찰을 빚었다. 윤 행장은 2013년 4월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자회사 편입과 외환은행 주식 상장폐지를 반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환은행 인수 때 체결한 ‘5년간 독립경영 보장’ 약속을 지키라는 것. 윤 행장은 또 외환은행의 하나고 기금 출연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비록 2012년 3월 지주사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고문으로서 여전히 하나금융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진 데다 하나고 이사장을 맡고 있었다. 연임이 유력했던 윤 행장은 올 초 외환은행장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