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정부의 집단자위권 선포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연합뉴스
“일본 1분기 GDP 성장률 5.9%. 소비세 인상에도 불구하고 매우 양호한 수치다. 이제 주가만 회복된다면….”
총리관저 관계자들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금 주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연말, 총리 집무실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다. 화면에는 일본 증시 닛케이 평균주가가 실시간으로 표시되는데 아베 총리는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힐끔힐끔 화면을 쳐다보기 바쁘다고 한다. 관계자들은 그 이유를 “주가가 총리 지지율과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13년, 일본 증시는 아베노믹스 ‘약발’로 6년 만에 1만 6000엔을 돌파했다. 그러나 올 연초부터 서서히 하락하더니 소비세가 인상된 4월 중순에는 급기야 1만 4000엔대마저 붕괴됐다. 이후 주가는 계속 제자리걸음인 상태. 이런 가운데 5월 15일 저녁, 아베 총리가 기자 회견을 갖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헌법 해석 변경을 검토할 의사가 있다”고 표명했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자국이 직접 공격을 받지 않아도 동맹국이 공격을 받으면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 모든 국가가 갖는 고유의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서 헌법 제9조에 “국제분쟁에 참여해 무력행사하는 것을 금지하고, 전력 보유도 금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그동안 일본 정부는 “집단자위권 권리는 있지만 행사하지는 못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었다.
따라서 이번 아베 총리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추진하겠다”는 선언은 전후 일본이 지켜온 ‘평화 헌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집단자위권 행사가 허용되면 지금까지 헌법 해석상 일본이 보유하지 못했던 공격력 강한 무기들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많은 일본 국민들은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한 찬성보다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혹시라도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렇다면, 왜 아베 총리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일까. 이와 관련, 한 측근은 아베 총리로부터 전해들은 비공식 발언을 공개했다. 아베 총리가 “원전과 신칸센 그리고 무기. 이 세 가지 기술을 해외에 팔면 아베노믹스는 끄떡없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구미지역은 일본산 무기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4월 말 유럽 6개국을 순방한 아베 총리는 무기 판매에 열을 올렸다. 앞서 4월 1일에는 일본의 무기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온 ‘무기수출 3원칙’을 47년 만에 전면 개정하기도 했는데, 그 덕분에 프랑스와는 무인 잠수기를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베 정권의 향후 전망은 마냥 밝지만은 않을 것 같다. 정치 저널리스트 노가미 다다오키(野上忠興·72)는 이렇게 내다봤다. “요즘 아베 총리는 지지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려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여기에 집단자위권, 주가, 개각이라는 과제는 앞으로 더욱 꼬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보다 스트레스가 심해질 경우 건강악화로 어쩔 수 없이 퇴진했던 1차 아베 내각 시절의 악몽이 재연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사실, 폭주하는 아베 총리와 관련해 일본 정치계에는 이런 소문도 떠돌고 있다고 한다. 다름 아닌 “아베 총리의 최측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65) 관방장관이 내심 총리를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스가 장관은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의 지시로 ‘특정비밀보호법’ 강행 처리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특정비밀보호법은 방위, 외교 등 누설되면 국가 안보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정보를 특정 비밀로 지정하고 이를 유출한 공무원을 최대 징역 10년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 처리 후 총리의 지지율이 10% 가까이 급락하자, 아베 총리는 “내가 직접 나서는 편이 나았다”며 비공식 석상에서 그를 자주 험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간겐다이>는 “오프더레코드 발언이라 할지라도 돌고 돌아 언젠가는 본인의 귀에 들어간다”면서 “가장 절친했던 두 사람 사이에 이처럼 냉랭한 바람이 부는 것은 마치 일본 정치계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하다”고 전했다. 덧붙여, 잡지는 아베 총리가 일전에 “보수(保守)는 다시 말해 태도다. 즉, 보수란 무슨 일을 하는 데 있어 선인들이 해온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닐까한다”라고 지론을 펼쳤던 일화를 소개하며 “아쉽게도 최근 아베 총리의 행보에는 겸허함이 부족해 보인다. 심지어 ‘입이 화근’인 순간도 여러 차례. 좀 더 겸허한 태도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일본 국민들 여론 반대 목소리 안들리나 <마이니치신문>이 5월 17~18일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54%가 반대한다고 답해 찬성 39%를 크게 웃돌았다. 또한 아베 총리가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 헌법 해석을 변경하는 방법을 통해 집단자위권 행사를 인정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56%가 반대, 37%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다만,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49%로 지난달과 같았다. 같은 기간 <교도통신>의 여론조사에서도 “집단자위권 행사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48.1%로 찬성(39%)보다 높게 나왔다. 그러나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지난달에 비해 5.1%포인트 떨어진 54.7%로 집계됐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