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회장과 공모해 계열사 기업어음(CP)을 다른 계열사가 사들이도록 하는 방식으로 1300억 원 규모의 배임을 저지른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으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김철 전 사장은 유동성 위기에 놓인 동양그룹 계열사 매각에 깊숙이 개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현재현 회장의 부인인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의 신임을 받는 ‘비선라인’ 핵심으로 지목됐다.
앞서 진행된 공판에서 법정에 출석한 증인들은 김 전 사장이 마지막 자금 동원줄로 여겨졌던 동양매직 매각 협상을 실패로 이끌며 동양그룹 위기를 가속화했다고 진술했다.
김 전 사장은 반성문에서 “그동안 억울하고 답답한 제 자신의 처지에만 도취돼 있었다”며 “너무나 후회가 되고 제 자신이 부끄러워 변호인과 남은 심리 일정을 포기할 것을 협의하였습니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내가 목소리를 높여 잘잘못을 따지며 싸워야 하는 상황이 아니고 죄인의 자세로 숨죽이고 자숙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너무 죄송하고 부끄럽다”고 후회했다.
실제 김 전 사장은 지난해 10월 ‘동양 사태’와 관련 국정감사에 출석해 혐의를 부인하며 의원들과 말싸움을 벌여 “책임감을 느끼는 태도가 아니다”라고 질책을 받았다.
또한 자신이 놓인 상황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김 전 사장은 “평생 재테크는 고사하고 아직 전셋집도 한 번 얻어 보지 못한 평범한 월급쟁이”라며 “유일한 아들인 제가 구속되면서 (부모님께) 생활비며 의료비조차 드리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궁박한 제 상황이 너무 답답하고 조급했다”고 밝혔다.
김 전 사장은 동양그룹 전·현직 임원들의 비리 실상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그는 “(동양그룹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업체) 미러스를 설립할 당시 전·현직 임원들에 의해 장악된 구매 비리 척결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수십 년간 관행화된 그룹 구매시스템을 개선하는 등의 과정에서 기존 기득권 세력들과 엄청난 분쟁에 휘말렸다”고 밝혔다.
그의 설명과는 다르게 김 전 사장은 동양네트웍스 전신인 미러스를 통한 시멘트 헐값 판매로 계열사 동양시멘트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김 전 사장은 공소사실 일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CP 매입 등을 통한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면서도, 개인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사익을 위해 의도한 범죄행위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김 전 사장은 반성문을 제출하면서 당초 부동의했던 검찰의 진술조서 내용을 모두 인정하고, 증인 8명에 대한 신청도 모두 철회했다.
한편 김 전 사장은 현 회장과 공모해 계열사 CP를 다른 계열사가 사들이도록 하는 방식으로 1300억 원 규모의 배임을 저지른 혐의 등으로 지난 1월 28일 구속기소됐다. 이어 지난 12일에는 동양시멘트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현 회장과 함께 추가 기소됐다.
현재 김 전 사장과 현 회장은 다른 동양그룹 경영진 9명과 함께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