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와 매혹적인 빨간 입술.
최근 빨간색이 집중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화제다.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 소개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의 줄리엣주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특정 업무의 수행에 있어서 빨간색과 파란색은 매우 다른 뇌의 반응을 유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우선 한 그룹의 대학생들에게 바탕화면이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깔린 컴퓨터를 준 뒤 몇 가지 테스트를 통해 인지 반응의 차이를 관찰했다. 그 결과 빨간색 바탕화면을 받은 학생들은 벽돌의 용도를 물었을 때 ‘집을 짓는다’와 같은 실용적인 답변을 내놓은 반면 파란색 바탕화면을 사용한 학생은 ‘애완동물의 등 긁개로 사용한다’와 같은 다소 엉뚱하면서도 창의적인 답변을 했다. 이는 어릴 적부터 빨강은 위험을 파랑은 자유 평화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학습돼 왔기 때문에 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빨간색을 심리학적으로 보면 마음을 자극하고 불안과 긴장을 증가시킨다. 순색 빨강은 너무 강렬해서 매우 강한 잔상을 남긴다. 선명한 빨간색은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특징이 있다. 빨간색 계통은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선호되기 때문에 심리요법에서는 소심증이나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빨간색은 주술 치료에 쓰이는 색채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색이며 고대의 문헌에서뿐 아니라 현대 미신에서도 흔히 등장한다. 영국에서는 의사들이 한때는 직업을 나타내는 표시로 진홍색의 망토를 입기도 하고 메사추세츠의 시골에서는 순회의사에게 환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빨간 깃발을 매달았던 적도 있었다.
아일랜드와 러시아에서는 성홍열을 치료하는 데 빨간색의 플란넬천이 쓰였으며 스코틀랜드에서는 빨간 모포가 뼈가 어긋난 것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아일랜드에서는 후두염을 치료하는 데 쓰였으며 마케도니아에서는 열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또 영국에서는 어린아이의 이가 나려면 빨간 실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또한 빨간색의 봉랍(封蠟:편지, 포장물, 병 따위를 봉하여 붙이는 데에 쓰는 수지질(樹脂質)의 혼합물-네이버 국어사전)에는 부스럼을 치료하는 신비한 힘이 들어있다고 믿었다. 포르투갈에서는 두통을 가라앉혀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마케도니아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악귀를 묶어두기 위해서 침실의 손잡이에 빨간 실을 꼬아 메어두기도 했다.
한국 중국 등의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사상의 영향으로 양의 의미인 밝음, 불을 뜻한다. 빨강이 불과 관련된 어원적 의미는 한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빨강을 가리키는 한자 적(赤)이라는 글자는 큰 대(大)와 불 화(火)의 합성어로 본래는 ‘큰불’이라는 의미다. 때문에 동양에서 빨강은 ‘붉은 색’ 또는 ‘밝음의 색’임을 알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장수를 누리기 위해서 빨간 루비를 지니고 다녔으며 어린 아이들의 땋은 머리칼에 빨간 천 조각을 매달아 두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고대 그리스에서의 빨강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상징을 지녔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 로마 가톨릭 교회는 위엄과 권위의 색상으로 빨간색을 사용했으며 그것은 그리스도와 기독교 순교자의 피를 상징했다.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2012)’은 프랑스 혁명(1789~1794)을 소재로 다뤘다.
예부터 치유와 종교적 상징이었던 빨강은 프랑스 혁명 때는 개인의 자유, 19세기와 20세기에는 사회주의 운동과 혁명의 아이콘이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1949년 중국 혁명의 색상으로 주로 공산당을 대표했기 때문이다.
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참고자료
-<색깔의 힘> Breaem Harald (유로서적, 2002)
-<색채심리>파버리렌(1985)
-<한국인의 빨간색 색채인식 변화와 활용에 관한 연구> 김기정,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