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인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5월 28일 전격 사퇴했다. 변호사 시절 번 돈을 기부키로 하는 등 당초 ‘정면돌파’를 시도했다가 사퇴로 급선회한 배경을 두고 궁금증이 일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본인이 그만두겠다는 데 어쩌겠느냐. 회의 분위기도 무거웠다고 들었다. 김 실장을 포함해 회의 참가자들은 안타까워하며 후임 총리 후보자 인선을 논의했다”고 귀띔했다.
청와대가 이처럼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안 후보자 결정이 그만큼 전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 후보자는 총리 지명 후 불거진 전관예우 문제에 대해 ‘정공법’을 택하는 듯한 스탠스를 보였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7월 변호사 개업 이후 5개월 만에 16억 원가량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드러나 전관예우를 넘어 ‘황제 전관’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과거 전관예우로 도마에 올랐던 고위 법관 사례와 비교해 보면 안 후보자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가늠해볼 수 있다. 이용훈 전 대법관 4년간 60억 원(한 달 평균 1억 2500만 원), 박시환 전 대법관 22개월간 20억 원(9000만 원),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 7개월간 7억 원(1억 원)을 벌었는데, 안 후보자의 경우 한 달 평균 3억 원 이상을 벌어들인 셈이다. 이에 대해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안 후보자는 대법관 출신에다 친박계 인사로 분류돼 더욱 몸값이 올라갔을 것”이라면서 “정식 수임계를 낸 것 외에 자문료 등을 합하면 그 액수는 더욱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관예우가 십자포화를 맞자 안 후보자는 26일 승부수를 던졌다. 변호사 활동으로 번 11억 원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안 후보자가 전관예우 논란을 뚫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였다. 안 후보자의 한 측근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안 후보자는 국가를 개조해달라는 박 대통령 요청을 받고 고심 끝에 총리직을 수락한 것이다. 전관예우가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는 만큼 국민들에게 진정성을 갖고 사과를 한다면 청문회 통과는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한 친박계 의원은 “안 후보자 측에서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울 것이란 우려가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상관과 불협화음이 있었다면 공직생활을 오래 했겠느냐. 박 대통령을 잘 도울 것’이라는 취지로 얘기하면서 청문회 협조를 요청했다”고 털어놨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청문위원 역시 “안 후보자와 직접 통화했다. 살살 좀 해달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앞서의 안 후보자 측근은 “안 후보자 성격상 여야 청문위원들에게 허리를 굽혔다는 것은 그만큼 청문회 통과가 절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의 발표 하루 전인 27일경부터 기류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야당과 언론의 타깃이 안 후보 가족에게로 옮겨가면서부터다. 특히 안 후보자는 아들의 군복무 특혜 의혹이 쟁점화 되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안 후보자 장남은 지난 2010년 입대해 서초경찰서 의경으로 복무했는데 10개월 만에 경찰청 본청으로 이동 배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근무여건이 좋은 곳으로 재배치된 것을 놓고 당시 대법관으로 재직 중이던 안 후보자가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던 것이다.
부인이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도 안 후보자의 발목을 잡았다. 안 후보자는 증권가 정보지 등을 통해 자신의 사생활과 관련된 루머가 퍼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곤혹스러워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야권은 안 후보자가 지난해 11월 출범한 국세청 세무조사감독위원회 위원장에 발탁된 이후 맡은 조세사건을 면밀히 분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에서 조세사건은 비교적 수임료가 고액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1월 18일 위원장에 임명됐고, 같은 해 12월 3일 나이스홀딩스가 영등포세무서를 상대로 낸 법인세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변호를 맡았다.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과 함께 여의도 당사에서 정치쇄신안을 발표하는 모습.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전관예우는 변호사 때의 일로 국민정서상 도마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아들 군복무나 부인 위장전입과 같은 문제는 안 후보자의 공직자 시절 벌어진 것이다. 평소 청렴하고 강직한 공직자 이미지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안 후보자로서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라면서 “공직 후보자 중 낙마한 인사들에게 물어보면 가족이 공격을 받을 때 사퇴를 결심했다고 답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야권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안 후보자의 또 다른 수임 사건 관련 내용들을 청문회에서 폭로할 것이란 소문이 돈 바 있다. 사퇴를 놓고 고심하던 안 후보자가 결단을 내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의 새정치연합 청문위원은 “안 후보자가 특정 대기업 사건을 맡아 거액을 받았다는 제보가 있었다. 전관예우의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확인하던 과정에 안 후보자가 물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안 후보자 입장에선 자신에게 사건을 맡겼다는 이유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의뢰인을 지켜보기가 힘들었을 수 있다. 실제로 안 후보자가 사석에서 그런 뉘앙스로 말을 했다고 들었다. 사퇴 배경 중 하나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