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산속에서 여성 등산객만을 골라 음란 행위를 일삼으며 성폭행을 하고 금품까지 빼앗은 ‘다람쥐 바바리맨’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이미지 합성이다.
“삼림욕이 건강에 그렇게 좋다네.”
지인의 이 한 마디는 40여 년을 평범하게 살아온 김광균 씨(가명·48)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아가던 김 씨는 2002년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도중 뜻하지 않은 추락 사고를 당했다. 목 등에 큰 부상을 당한 김 씨는 무려 2년 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했고 퇴원 후에도 후유증 때문에 이전처럼 완벽한 건강을 회복할 순 없었다.
건장한 체격에다 누구보다 건강을 자신했던 김 씨에게 사고 후유증은 극심한 고통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지인들은 “좋은 공기를 마시면 건강도 나아질 것”이라며 김 씨에게 삼림욕을 권했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고민할 것이 없었던 김 씨는 집 근처의 산을 찾아 삼림욕을 시작했다. 그런데 김 씨의 삼림욕 방법은 약간 특이했다. 보다 높은 효과를 얻고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자연인’ 상태 그대로 삼림욕을 즐긴 것. 물론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을 찾아다녔다.
“어머, 으악.”
그러던 어느 날, 김 씨는 나체로 삼림욕을 즐기는 장면을 여성 등산객에게 들키고 말았다. 깜짝 놀란 여성들은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고 김 씨 역시 처음엔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 당시를 떠올려보니 그리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알 수 없는 쾌감까지 밀려왔다. 결국 이날의 경험은 김 씨를 변태성욕자의 길로 빠져들게 했다.
이후 김 씨가 자주 찾았던 산마다 “바바리맨이 자주 출몰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바바리맨은 김 씨였다. 더욱이 김 씨의 모습은 일반적인 바바리맨들과 다른 모양새라 여성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더욱 공포의 대상이 됐다. 경기 의왕경찰서 한 관계자는 “보통 바바리맨들은 마음이 약한 게 특징이라 얼굴을 포함한 자신의 신체를 노출하고 사라지지, 위협을 가하진 않는다. 그런데 김 씨는 목 위로 마스크, 모자, 스카프 등을 동원해 눈만 빼고 모두 가리고 다녔다. 덕분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아 오랜 시간 그런 행동을 하고 다닐 수 있었다”며 “경찰에 조사에서 왜 얼굴을 가렸냐고 물어봤더니 ‘건강을 위해서’라고 말하더라. 햇볕에 얼굴이 타는 걸 막고 미세먼지나 흙먼지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여성들에게 그런 짓을 하면서 자신의 건강은 무척 아낀 모양”이라고 말했다.
김 씨의 엽기 음란행위는 4명의 여성 등산객이 함께 있을 때도 계속됐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하다. 일요신문 DB
시간이 흐를수록 김 씨의 범행 무대는 넓어져만 갔다. 경기 의왕의 청계산과 모락산, 바라산을 시작으로 수원 광교산, 인천 계양산, 안산 수리산까지 수도권 일대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범행도 더욱 치밀하고 대담해졌다. 김 씨는 인적이 드문 점심시간 직전과 오후 3~5시를 범행 시간으로 삼았다. 범행 도구도 철저히 챙겼다.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여름에도 넥 워머를 사용했으며 여성들을 쉽게 제압하기 위해 흉기까지 동원했다. 지난해 8월에는 청계산 국사봉 부근 등산로에서 혼자 등산하던 A 씨(여·31)를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하고 현금, 휴대전화 등 70만 원을 빼앗기까지 했다.
의왕경찰서 관계자는 “성폭행은 혼자 산을 찾은 여성을 대상으로 했으며 음란행위는 4명의 여성이 함께 있는데도 저질렀다. 특히 성폭행의 경우 여성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숲으로 끌고 가 소리를 지를 수 없게 했으며 휴대전화 배터리를 분리해 던져버려 신고도 못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2009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모두 6회에 걸쳐 여성 등산객을 성폭행하고 5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김 씨. 또한 5회에 걸쳐 여성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음란행위까지 저질렀다. 범행을 저지른 뒤 재빠르게 사라져 ‘다람쥐 바바리맨’이라는 별칭까지 생겼다. 경찰 역시 김 씨를 잡으려 애를 썼지만 검거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수년간 등산을 하며 지리를 익힌 김 씨였기에 도주 경로도 완벽히 숙지하고 있었던 것. 또한 수도권 일대의 산을 헤집고 다니는 김 씨라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경찰은 김 씨의 범행 장소를 토대로 수차례 현장답사를 실시했고 마침내 그의 이동 통로와 패턴을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몇 차례 잠복 수사에는 실패했지만 지난달 16일 오후 3시쯤 청계산에서 바바리맨이 나타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의왕경찰서 관계자는 “김 씨가 3~4주 간격으로 범행을 저지른 다는 것을 파악하고 대기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날은 4주차 마지막 날이었는데 신고 접수 즉시 40여 명의 인원을 동원해 현장으로 출동했다. 도주 경로를 차단하고 김 씨를 찾아 나섰는데 우리와 마주치자 거세게 반항했다. 일반인보다 건장한 체격이라 격투 끝에 그를 체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 씨를 붙잡고 보니 어딘가 낯이 익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8월 청계산에서 벌어진 부녀자 성폭행 사건 용의자의 인상착의와 상당히 비슷했던 것. 이에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검사를 의뢰했고 수원 광교산과 인천 계양산서 발생한 성폭행 DNA 증거와도 일치한다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무려 4년 동안 여성 등산객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다람쥐 바바리맨’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역대 등산로 변태들 금정산 날다람쥐 길 안내 해주는 척 접근 ‘몹쓸짓’ 전국 유명산을 가보면 그 지역마다 독특한 인물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만인에게 달갑지 않은 유명인사도 있었으니 변태적 성욕을 가진 이들이다. 일명 ‘바바리맨’이라 불리는 이들은 인적이 드문 시간 여성 등산객들을 상대로 변태적인 행위를 하거나 성폭행까지 저질러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범행 3년 전부터 금정산 일대를 누비고 다니며 지리를 익힌 이 씨는 등산객들의 왕래가 적은 등산로에 숨어있다가 부녀자들이 나타나면 길 안내를 해주는 척 접근해 몹쓸 짓을 저질렀다. 길을 잃고 헤매던 20대 여대생부터 50대 주부까지 범행 대상도 다양했다. 여성들을 흉기로 위협한 뒤 인적이 드문 숲속으로 끌고 가 둔기로 마구 때려 상해를 입히는가 하면 현금과 휴대전화까지 빼앗아갔다. 이런 이 씨의 범행은 1년 이상 계속됐다. 피해 여성들의 진술을 토대로 1년 동안 이 씨를 뒤쫓은 경찰이 2005년 2월 마침내 금정산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 중이던 그를 검거한 것. 결국 이 씨는 법원으로부터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씨에 앞서 2004년 9월에도 전남 순천에서 등산하는 부녀자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남성 조 아무개 씨(40)가 경찰에 붙잡혔다. 매곡동 박난봉 등산로에서 40대 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숲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는 등 부녀자 7명을 강간하고 600여만 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였다. 특히 조 씨는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온 뒷날만을 골라 범행을 저질렀는데 이 때문에 온갖 괴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3개월에 걸친 경찰의 잠복 수사 끝에 조 씨를 체포할 수 있었는데 실제 그는 비만 오면 집을 나가 산에서 잠을 잤으며 과거 정신감호 치료를 받은 경력도 있었다고 한다. 서울 한복판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2월에는 북악산 자락의 등산로에서 대낮에 주부가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무직이었던 허 아무개 씨(41)는 북악산 등산로를 걷던 40대 주부를 흉기로 위협한 뒤 성폭행 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허 씨는 범행을 위해 흉기와 마스크, 청테이프까지 준비했으며 등산객으로 보이기 위해 복장과 신발까지 완벽하게 갖춰 입는 치밀함을 보였다. 다행히 피해자가 소리를 지르고 저항해 다른 등산객의 도움으로 범행은 미수에 그쳤지만 폐쇄회로(CC)TV에 찍힌 허 씨의 인상착의를 토대로 동선을 추적한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등산로 바바리맨 피해가 잇따라 발생하다 보니 경찰은 몇 가지 안전수칙 숙지를 당부했다. 경기 의왕경찰서 관계자는 “여성 혼자 등산을 할 경우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우므로 여럿이서 함께 다니는 것을 권한다. 또한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곳을 이용해야 하며 인적이 드문 밤늦은 시간이나 너무 이른 아침은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