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대의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유영철이 지난 19일 인천 월미도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씨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하나둘 거짓으로 밝혀져 경찰 발표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경찰조차도 “하늘이 도왔다”고 할 만큼 그의 입에서는 계속 새로운 범죄 사실들이 쏟아져 나온다. 간부들의 경질설까지 나돌 정도로 침울하던 경찰청은 희색이 돌고있다. 유씨의 입에서 나온 말은 경찰의 발표라는 중간 단계를 거쳐 곧바로 뉴스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 그의 말이 곧 뉴스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왠지 갈수록 국민들은 유씨의 세치 혀에 다시 한번 농락당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씨 입에서 나온 말들은 하나 둘씩 거짓으로 밝혀지고 있다. 경찰 수사 결과에 각종 의문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있다.
의문 1. 단지 여성에 대한 분노 때문에 윤락녀 죽였나?
유씨는 대개의 흉악범들이 그렇듯이 결손 가정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오피스텔에서 발견된 가족 사진 앨범과 자작시를 통해 그가 평소 얼마나 정(情)에 굶주려 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특정한 직업도 없었던 유씨가 이른 나이인 23세에 같은 또래의 윤락 여성을 만나 결혼한 것도 그만큼 사랑이 그리웠던 탓으로 보인다. 유씨에 의하면 자신의 전처 황아무개씨(32)는 출장마사지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절도죄로 수감중이던 2000년 이혼을 당했고, 지난해 9월 출소한 후 5개월 만에 다시 전화방에서 만난 윤락여성 김아무개씨와 동거에 들어갔다.
유씨에 의하면 그는 김씨와 결혼 약속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알게된 후 김씨가 도망가 버렸다는 것. 윤락여성을 상대로 한 유씨의 잇따른 범죄는 김씨가 도망간 3월 이후부터 최근까지 벌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수사과정에서 나타난 한 가지 중요한 의문점은 유씨가 유독히 전화방과 출장마사지 여성들만 불렀고, 그 지역이 마포 서대문 등 자신의 원래 거주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살해 시점을 보면 출장오자마자 바로 둔기로 살해한 경우도 있지만, 하루 이틀 이상 함께 지내다가 살해한 경우도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경찰은 “유씨가 윤락여성 출신인 전처와 동거녀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들에게 분노를 표출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과연 적개심만이 살해 이유의 전부일까.
경찰의 한 관계자는 “그런 여성들이 대개는 성격이 거칠어서 유씨의 어떤 요구에 곧바로 반항해서 유씨를 자극했을 수도 있고, 또 일부는 처음에 말을 좀 듣는 듯했다가 나중에 거절했을 수도 있고…”라고 얼핏 언급했다.
그렇다면 ‘유씨의 어떤 요구’는 무엇일까? 두 가지 가능성이 제기된다. 첫 번째는 유난히 사랑에 집착했던 유씨가 자신과 동거 내지는 결혼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적개심에 살해를 저질렀을 가능성이다.
두 번째는 자신을 배신하고 가버린 전처 황씨와 동거녀 김씨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출장 윤락여성들만 불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출장 윤락 여성을 불렀고, 곧이어서 살해한 것을 두고 유씨가 이들을 통해 어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유씨는 대개의 흉악범들이 그렇듯이 결손 가정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오피스텔에서 발견된 가족 사진 앨범과 자작시를 통해 그가 평소 얼마나 정(情)에 굶주려 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특정한 직업도 없었던 유씨가 이른 나이인 23세에 같은 또래의 윤락 여성을 만나 결혼한 것도 그만큼 사랑이 그리웠던 탓으로 보인다. 유씨에 의하면 자신의 전처 황아무개씨(32)는 출장마사지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절도죄로 수감중이던 2000년 이혼을 당했고, 지난해 9월 출소한 후 5개월 만에 다시 전화방에서 만난 윤락여성 김아무개씨와 동거에 들어갔다.
유씨에 의하면 그는 김씨와 결혼 약속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알게된 후 김씨가 도망가 버렸다는 것. 윤락여성을 상대로 한 유씨의 잇따른 범죄는 김씨가 도망간 3월 이후부터 최근까지 벌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수사과정에서 나타난 한 가지 중요한 의문점은 유씨가 유독히 전화방과 출장마사지 여성들만 불렀고, 그 지역이 마포 서대문 등 자신의 원래 거주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살해 시점을 보면 출장오자마자 바로 둔기로 살해한 경우도 있지만, 하루 이틀 이상 함께 지내다가 살해한 경우도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 지난 18일 경찰이 신촌 봉원사 입구에서 유영철씨가 토막낸 후 파묻은 전화방 윤락녀 시신을 무더기로 발굴했다. | ||
경찰의 한 관계자는 “그런 여성들이 대개는 성격이 거칠어서 유씨의 어떤 요구에 곧바로 반항해서 유씨를 자극했을 수도 있고, 또 일부는 처음에 말을 좀 듣는 듯했다가 나중에 거절했을 수도 있고…”라고 얼핏 언급했다.
그렇다면 ‘유씨의 어떤 요구’는 무엇일까? 두 가지 가능성이 제기된다. 첫 번째는 유난히 사랑에 집착했던 유씨가 자신과 동거 내지는 결혼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적개심에 살해를 저질렀을 가능성이다.
두 번째는 자신을 배신하고 가버린 전처 황씨와 동거녀 김씨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출장 윤락여성들만 불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출장 윤락 여성을 불렀고, 곧이어서 살해한 것을 두고 유씨가 이들을 통해 어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의문 2. 경찰은 왜 유씨 개인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나?
경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를 확인해보면 허점과 오류가 잇따라 발견된다. 그만큼 경찰이 유씨의 진술만을 근거로 정밀한 확인 작업 없이 발표를 한 탓이다. 우선 자신의 부친과 둘째형이 간질로 사망했고, 자신도 그런 증세가 있어 자포자기 심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발표했으나, 어머니 김아무개씨(62)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확인했다. 실제 부친은 간질로 사망한 것이 아니고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졌고, 둘째형은 자살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경찰에서 발표한 유씨의 결혼과 이혼 시기 역시 <일요신문>이 직접 호적등본 내용을 확인해서 비교해 본 결과 사실과 달랐다. ‘91년 결혼, 2002년 이혼’이 아닌 ‘93년 결혼, 2000년 이혼’이었다. 자신의 아이큐가 140이 넘었다고 말한 대목도 실제 그의 출신 중학교에서 밝힌 바로는 100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씨가 모든 범행을 자신이 혼자 했다고 진술한 것을 근거로 경찰이 유씨 단독범의 소행으로 발표하는 것에 대해서도 동료 수사관들조차 “공범의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둬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살해된 노점상 안아무개씨의 유가족들은 “100kg이 넘는 거구인 안씨가 자기보다 작은 체구의 범인 한 사람에게 서울과 인천을 끌려다니며 그렇게 맥없이 당했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구기동 살인 사건 역시 유씨 혼자서 주변 탐색과 침투, 일가족 3명 살해 등을 모두 도맡아 했다는 점에 대해서 일부 경찰 관계자는 아직도 의문을 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 한 관계자는 “피의자의 자백에만 지나치게 의존해서 성급하게 수사 결론을 냈다가 나중에 증거 불충분으로 부실 수사 시비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문 3. 노인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유씨의 진술에 대한 의문점
지난해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네 건의 노인 연쇄 살인사건도 일단 유씨가 범인인 것으로 굳어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경찰의 사건 발표가 단순히 유씨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뭔가 찜찜한 면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씨는 현장 검증에서 일부는 태연하게 범행 당시의 상황을 재연했으나 또 일부는 자신의 범행이 아닌 듯한 진술을 늘어놓아 경찰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유씨가 노인 연쇄 살인 사건과 관련, 피해자 주택 담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범행 현장 재확인 과정까지 세세히 진술한 것은 네 사건 가운데 혜화동 사건이 유일하며, 네 사건의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과 유씨와의 연관성 여부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유씨의 범행이 가장 확실하다는 혜화동 사건만 해도, 유씨는 당시 인근 건물 CCTV에 찍힌 화면이 자신이라는 진술을 하지 않았으며, CCTV에 찍힌 남성이 입은 검은색 점퍼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확인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사동 사건의 경우에도, 숨진 이아무개 교수의 부인이 손에 쥐고 있던 7개의 머리카락이 유씨의 것이었는지, 또 유씨가 부인을 살해하기 직전 몸싸움을 벌인 일은 있는지에 대해 경찰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CCTV 화면과 함께 사건의 핵심 단서가 됐던 운동화 족적도 유씨 검거 직후 수사 과정에서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는 게 경찰 주변 관계자들의 말이다. 족적을 통해 용의자가 신었던 것으로 추정됐던 260~265mm의 버팔로 운동화가 과연 유씨의 것이었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을 어디에서 구입했는지, 그 사실 확인 작업조차 아직은 이루어지 않았다.
수개월 동안 네 건의 노인 연쇄 살인 사건을 조사하며 적잖은 데이터를 축적한 동대문, 강남, 서대문 경찰서의 수사 책임자나 관계자들이 유씨를 검거한 서울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의 수사 과정에 배제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문 4. 서남부 부녀자 연쇄살인 주장했다가 번복한 이유
유씨의 추가 범죄에 대한 수사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서울 서남부권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관련성 여부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서남부권 연쇄 살인도 자신이 한 것이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올해 4월과 5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서남부권 연쇄 살인은 이제까지 드러난 유씨의 범행일지를 보면 우선 시기적으로는 그 개연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서남부권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 4~5월에는 유씨의 여성에 대한 증오심이 극에 달했을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실제 유씨의 윤락 여성에 대한 일련의 살인극 일정을 보면 3월에 한 차례 저지른 후, 6월에 3건, 7월에 3건이 일어났다. 아직 4건은 정확한 일정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연쇄살인이 벌어진 4~5월에만 공백이 생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범행장소 또한 사건이 발생했던 대림동, 고척동, 보라매공원 등은 유씨의 원룸이 있는 노고산동과도 가까운 위치여서 지리적 개연성도 갖추고 있다. 당시 이 연쇄 살인범으로 추정된 인물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남성으로 키는 170cm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은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는 “이제까지 드러난 유씨의 살인패턴으로 보아 서남부권 연쇄살인과는 연관성이 떨어져 보인다”며 관련이 없다는 점을 서둘러 단정하는 분위기다. 한 경찰 관계자는 “노인 연쇄살인은 유씨가 순순히 모두 자백했으나, 서남부권은 아니라고 한다”고 밝혀, 이 또한 유씨의 입에만 의존하고 있는 점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사회부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