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씨의 두 딸. 오른쪽은 해인사에 기거하던 시절 세 모녀가 함께 찍은 사진.
정주영 회장의 아들들은 ‘몽(夢)’자 돌림을 쓴다. 장남 정몽필 전 인천제철(현 현대제철) 회장은 마흔다섯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정몽필 회장이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에 여념이 없던 1982년 4월 일어난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2남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76)은 경영일선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장남의 죽음으로 현대가의 적통 역할도 사실상 정몽구 회장이 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왕자의 난’으로 현대자동차를 분리해 받았고, 기아차를 인수해 2013년 기준, 세계 완성차 시장에서 매출 6위, 영업 이익 4위로 키워냈다.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72)은 유통업 외길을 걸었다. 일찌감치 유통 부문을 물려받아 현대백화점그룹을 이끌고 있다. 현대백화점 등 주력 계열사를 토대로 유통그룹을 일궜다.
정주영 회장의 장녀인 경희 씨(70)는 선진종합의 안주인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4남인 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은 40대에 현대알루미늄을 맡았지만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1990년 4월 그는 45세의 젊은 나이에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남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이름 앞에는 ‘비운’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2002년 9월에 5억 달러 대북 불법송금 사건이 터져 2003년에 검찰 조사를 받은 뒤 현대그룹 계동 사옥에서 투신자살해 세간에 충격을 안겼다.
6남인 정몽준 전 의원(62)은 서울대-미국 MIT 경영대학원을 나와 형제 중에 학벌이 가장 좋아 왕회장이 유난히 예뻐했다고 한다. 그는 새누리당 소속의 7선 국회의원이며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7남은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59), 8남은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55)으로 이들 8남 1녀는 모두 재계 한 가운데 있었다. 부침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모두 유력 기업의 경영자나 대주주의 위치에 있거나 후대에 물려줬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의 호적 마지막 칸에 있는 두 딸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2녀인 그레이스 정(34)은 할리우드에서 배우를 꿈꾸고 있다. 비록 단역이지만 여러 작품에 출연하면서 최근에는 조금씩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그레이스의 어머니인 김경희 씨에 따르면 그는 현재 차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김 씨가 사기 등으로 재산 관리에 실패하면서 집안 전체가 망해 미국에 있던 집까지 경매로 넘어가게 됐기 때문이다. 김 씨는 “LA가 얼마나 무서운데…”라며 안타까워했다.
3녀이자 막내딸인 엘리자베스 정(32)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차의 최대 경쟁회사인 도요타의 미국 광고를 대행하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엘리자베스도 마찬가지로 집이 없어지면서 친구 집에서 기거하고 있다고 한다. 김 씨는 엘리자베스가 현대차의 경쟁사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현대에서 일하고 싶어도 못한다”며 “(오빠들이) 여동생을 무심하게 내던진 셈”이라고 주장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