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머슴 노릇을 제대로 하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 국민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유권자들이 뽑아 놓고 후회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고질처럼 되었다. 그 중요한 원인은 왜곡된 공천제도와 선거풍토가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에선 지역정서를 바탕으로 한 선거풍토로 인해 후보자들은 주민보다 공천권을 쥔 정당의 이익에 더 충성한다. 유권자들조차 그런 지역정서에 휘둘려 온 지 오래고, 이번 선거에서도 그런 완고한 지역성향은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일단 뽑히고 나면 선거기간의 머슴의식은 상전의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런 심리의 배경은 자신이 잘났기 때문에 선택을 받았다는 자만심이다. 그런 사람일수록 유권자에게 군림하려 들고, 자기가 누리는 특권도 당연시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그런 현상에 대해 ‘유권자들은 투표 날 하루만 주인이지 나머지 기간은 노예’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관존민비 사상에 젖어 있던 나라이고, 매관매직의 전통도 뿌리 깊다. 관직은 명예와 부의 원천으로 간주되었다. 그처럼 비리를 예사로이 생각하는 공직풍토가 관피아의 뿌리이자 세월호의 주범이다. 선거가 공직자의 봉사정신과 청렴성을 사전적 사후적으로 검증하고 심판하는 절차이지만 현실에선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결과가 자치단체장들의 끝 모를 비리행렬이다. 민선 4기의 경우 230명의 단체장 중 42%인 96명이 비리혐의로 기소됐고,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난 20년 동안 6명 중 1명이 대부분 비리 혐의로 현직에서 낙마했다. 4년간 군수선거를 네 번 치른 기초단체도 있다.
6기 지자체 출범과 함께 중앙정부에서도 관피아 척결을 위한 조각 수준의 내각 개편이 예정돼 있다. 이미 안대희 총리후보의 자진사퇴 파동에서 관피아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안 씨가 변호사로 일한 5개월 동안 16억 원을 벌었다는 사실에 대해 서울변호사회가 논평을 통해 ‘보통 변호사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금액’이라고 했다. 안 씨는 국민의 형편은커녕 동업계의 형편조차 살피는 겸허함이 부족했다. 관직에 있을 동안 비교적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 것으로 비쳤던 그마저도 재물 앞에서 평형감각이 퇴화됐다는 얘기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들이나 앞으로 정부의 고위직에 기용될 사람들은 제발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공복정신의 근본인 겸손이 그들에게 깃들일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 겸손으로 그들이 국민의 권익과 자신의 명예도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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