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시작된 ‘히든 캐시’, 다시 말해 ‘숨은 돈 찾기’ 게임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게임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숨겨진 돈을 누가 가장 빨리 찾아내는가 하는 게임이다. 돈을 숨기는 사람은 익명의 백만장자이고, 돈을 찾는 사람은 불특정 다수, 즉 누구나 가능하다. 돈을 숨기는 장소는 공원 벤치 아래, 길거리 쓰레기통, 건물 벽 틈 사이, 해변 모래사장 등 다양하다. 주의만 잘 기울이면 길을 걷다가 돈봉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5월 2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된 이 게임은 현재 미국을 넘어 바다 건너 영국에까지 번진 상태. 자신이 받은 혜택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익명의 이 백만장자는 앞으로도 당분간 이 게임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익명의 백만장자가 LA 헤르모사 해변의 백사장에 숨겨둔 돈을 찾고 있는 사람들. 미국에서 시작된 ‘히든 캐시’ 게임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세상에 공짜 마다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던가. 지난 5월 31일 토요일, LA의 헤르모사 해변. 땡볕이 내리쬐는 백사장으로 난데없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모래 위에 떨어진 바늘이라도 찾듯 백사장 위를 샅샅이 뒤지던 이 사람들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히든 캐시’를 찾는 것이었다.
익명의 백만장자가 오전에 트위터에 올린 글이 발단이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HiddenCash)을 통해 다음과 같이 ‘히든 캐시’의 장소와 힌트를 제시했다. “돈이 든 앵그리 버드 플라스틱 인형 36개를 헤르모사 해변의 백사장에 발목 깊이로 묻어 두었다. 인형을 묻은 위치는 부두와 배구 네트 사이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헤르모사 해변으로 몰려들었던 것은 물론이었다. 얼마나 순식간이었는지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남성은 “아비규환이었다”라고 말했는가 하면, 이 이색적인 광경을 촬영하기 위해서 상공에는 방송국 헬리콥터들이 날아다녔다.
자그마한 붉은색 앵그리 버드 장난감을 찾은 36명의 행운의 주인공들은 돈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저마다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고, 각자 트위터에 인증샷들을 올렸다. 이날 ‘히든 캐시’의 액수는 40~100달러(약 4만~10만 원)까지 다양했다.
수수께끼 백만장자의 ‘히든 캐시’ 게임은 헤르모사 해변에서만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전날 저녁에는 버뱅크의 엠파이어 쇼핑센터에 세 개의 돈봉투를 숨겨 두기도 했었다. 각각의 봉투에는 135달러(약 13만 8000원), 210달러(약 21만 5000원), 200달러(약 20만 원)가 들어 있었으며, 장소는 레스토랑 앞, 화단, 그리고 쓰레기통 등이었다.
지난 5월 2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된 ‘히든 캐시’는 정확히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 걸까. 게임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히든 캐시’ 게임을 시작한 백만장자는 CBS2와의 인터뷰에서도 발만 보여주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백만장자가 도시 어딘가에 몰래 돈을 숨겨 놓는다. ▲돈을 숨겨놓은 장소의 사진과 함께 힌트를 트위터에 올린다. 가령 ‘울새나 독수리가 돈을 맡기는 곳은 어디일까?’라는 힌트를 올린 경우, 사람들은 ‘버드-뱅크(bird-bank)’를 떠올릴 수 있다. 이 경우 정답은 LA의 ‘버뱅크(Burbank)’였다. 또 한 번은 100달러 지폐 사진과 공중전화 사진과 함께 ‘가까이에 있는 버려진 공중전화 부스를 살펴보세요’라고 알려주거나 공원 벤치 사진과 함께 ‘새로운 장소입니다. 아래를 살펴 보세요:)’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백만장자가 이렇게 트위터에 글을 올리면 ▲사진 속의 장소와 힌트를 유추해낸 시민들이 현장으로 달려가 돈을 찾는다. ▲돈을 찾은 행운의 주인공들은 트위터에 인증샷을 올리고, 이 인증샷을 백만장자가 다시 자신의 트위터에 리트윗해 축하의 메시지와 함께 ‘다음에는 당신이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격려한다.
현재 ‘히든 캐시’의 트위터 팔로어 수는 6월 4일을 기준으로 44만 5000여 명을 넘어선 상태다. 보통 20~100달러(2만~10만 원)가량의 돈을 넣어두고 있지만 횟수를 거듭하면서 그 액수는 점차 늘고 있다. 또한 백만장자는 앞으로 트위터 팔로어가 100만 명을 넘을 경우 거액의 돈봉투를 숨길 것이라고 미리 예고해 놓은 상태이기도 하다.
돈을 숨겨둔 장소는 대문 옆, 화단, 소화전, 쓰레기통 등 다양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기발한 게임을 시작한 수수께끼 백만장자는 과연 누구일까. 단지 35~45세의 부동산 투자가라고만 알려져 있을 뿐 그의 정체는 정확히 밝혀진 바 없다. 자신을 ‘운 좋은 미국의 1%’라고 소개한 그는 ‘히든 캐시’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 “최근 부동산 거래를 통해 50만 달러(약 5억 원)의 수익을 거두었다”면서 “나는 되돌려 주는 것을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참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내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과 부를 즐겁게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끝에 ‘히든 캐시’를 생각해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처음에는 우승상금을 걸고 하는 도전이나 대회를 열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너무 복잡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단순하게 돈을 숨겨두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라고 말했다.
‘히든 캐시’ 캠페인이 정치적, 사업적, 종교적으로 관련돼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히든 캐시’는 사람들에게 긍정과 미소를 주기 위해서 시작됐을 뿐 숨은 의도는 전혀 없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나는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돈이었다. 아직도 많은 친구들, 그리고 나를 위해 일하는 직원들 가운데는 제대로 된 집 하나를 살 형편이 못 되는 사람도 많다. 내가 사회에 돌려주고 기쁨을 주는 방법이 바로 이런 식의 기부다”라고 설명했다. ‘돈도 찾고, 즐거움도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기부 방법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앵그리 버드 플라스틱 인형 안에 숨겨둔 돈을 꺼내는 모습.
좋은 일을 하면서도 굳이 정체를 숨기는 이유에 대해서는 혹시 정체가 밝혀질 경우,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반대하거나 비난할까 하는 염려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그는 앞으로도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낼 생각이 없다고 밝힌 상태다. 이런 까닭에 최근 CBS2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발만 보여준 채 결코 얼굴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안전’이다. 돈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다닐 경우 자칫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헤르모사 해변에서는 대형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주변 일대에 심한 교통 체증이 발생하거나 경미한 사고가 발생하면서 아찔한 순간들이 연출됐었다.
이에 익명의 백만장자는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향한 당부의 메시지를 트위터에 남겼다. 그는 “부디 안전하게 걸어서 혹은 운전해서 오세요. 며칠 전에는 젊은 여성 한 분이 제 자동차 앞을 가로질러 뛰어가더군요. 가능한 안전한 장소를 고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 제발 질서와 주의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앞으로도 ‘히든 캐시’ 게임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횟수는 일주일에 1~2회 정도이며, 샌프란시스코나 LA 외에 다른 도시에서도 ‘나눔’이라는 비슷한 취지의 게임이 시작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뜻에 따라 돈을 찾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 돈을 다시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거나, 혹은 자선단체에 역기부하고 있다. 바로 이런 참여가 자신이 원하는 ‘나눔’이라고 말하는 백만장자의 훈훈한 게임이 과연 미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지 지켜볼 일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영국 사업가도 ‘특별한 나눔 실천’ 동참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 시작했다는 미국의 수수께끼 백만장자의 뜻에 따라 현재 ‘히든 캐시’는 나이지리아, 인도, 홍콩,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에까지 번진 상태다. 이 가운데 현재 영국의 트위터 계정(@HiddenCash_UK)의 팔로어 수는 6월 4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6만 8000명가량이다. ‘히든 캐시’ 게임이 영국까지 번졌다. 지금까지 리즈, 셰필드, 맨체스터, 브라이튼 등에서 50파운드(약 8만 5000원) 또는 그 이상이 든 돈봉투가 발견됐다. 가장 먼저 시작된 도시는 리즈였다. 당시 시립박물관 근처에서 돈봉투가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이후 브라이튼의 해변가, 낡은 배 아래에서도 속속 ‘히든 캐시’가 발견됐다. 미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영국 전역의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히든 캐시’를 시작한 장본인은 25세의 젊은 나이에 성공한 익명의 사업가다. 이 남성은 자신이 전자상거래와 관련된 사업을 통해 돈방석에 앉았으며, 현재 해외 출장이 많기 때문에 여덟 명과 함께 팀을 꾸려 영국 전역에서 동시에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록 자주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꾸준히 게임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한 그는 “액수에 제한은 없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한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