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병역비리 연루 혐의를 받고 있는 프로야구선수들이 수사를 받기 위해 서울경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5년 전에 은퇴한 전 프로야구 선수 출신의 A씨는 기자와 만나 자신의 병역 비리 사실을 털어놓으며 자신 말고도 현 프로팀 코치 중에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면제받은 사람이 상당수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A씨는 알부민 주사액으로 사구체신염 판정을 받고 병역을 면제받은 신종 수법 이전에도 프로야구판에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군 입대를 피해갔다고 털어놨다.
A씨는 흔한 수법이었던 오른쪽 무릎 연골 제거 수술로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실제로 연골을 제거하지 않아도 무릎에 수술 자국만 남기면 대부분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브로커와 병원, 그리고 일부 병무청 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돈만 주면 무릎 연골 수술과 어깨 탈골, 디스크 수술 등으로 면제받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오른쪽 무릎 연골이 왼쪽보다 커 문제가 있었다. 허리도 X-레이를 찍으면 돌아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브로커가 정해준 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받아 신검 받을 때 제출했고 면제 판정을 받기까지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A씨에 의하면 브로커가 아무 때나 연락을 해오지 않는다고 한다. 신체검사 후 현역 판정을 받은 선수들만 선별해서 절묘한 시점에 전화를 하는데 전혀 들통 날 염려가 없고 사후 안전까지 책임지겠다며 감언이설을 해대는 상황에서 안 넘어갈 선수가 없다는 것.
“브로커들과 관련 있는 병원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특정 병원만 이용할 경우 발각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전국의 병원을 대상으로 ‘섭외’에 들어갔다가 성공하면 줄을 이어갔다. 서울의 경우엔 종합병원보다 개인 병원이 허위 진단서 발부가 용이했다.”
A씨가 브로커에게 건넨 돈은 2천5백만원. 브로커에 의하면 자신과 의사, 군의관이 나눠 먹는다고 말했다는 것.
무릎 연골 수술로 허위 진단서를 발부받아 군 면제를 받으려 했던 A씨는 그나마 나은 편. 당시 같이 활동했던 유명 투수 B선수는 정신질환으로 3개월간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군 면제를 받았다고 한다. B선수가 진짜 정신병자였냐 하면 절대 그렇지가 않다고. 퇴원 후 B선수는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운동 생활에 이상을 나타내거나 정신병 증세를 드러내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B에 대한 소문이 선수들한테 알려지면서 몇몇 선수가 B와 같은 방법으로 군 면제를 받으려고 했다가 3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한 경우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두 달을 정신병원에서 보내다보니 진짜로 미칠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퇴원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 선수들은 방위로 빠져 나처럼 단기 복무를 마쳤다.”
현재 한 프로팀의 C코치는 현역 시절 군 면제 판정을 받기 위해 무릎에 칼을 댔다가 수술이 잘못되는 바람에 다리를 절룩거리다 결국 조기 은퇴하고 말았다고.
A씨는 신장질환으로 병역면제 혜택을 받는 수법에 대해선 이미 4~5년 전부터 선수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었고 횡행했던 터라 선수들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발각된 사례가 없어 브로커들의 유혹에 더욱 쉽게 걸려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A씨는 “현재 혐의가 드러난 선수들은 달게 죄를 받겠지만 나처럼 그런 불법 행위를 이미 오래 전에 행했거나 35세가 넘어 징집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은퇴 선수나 현역 코치들 중에서 요즘 같은 시기에 다리 뻗고 자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