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네이버를 설립한 이해진 의장, 카카오를 창업한 김범수 의장, 다음커뮤니케이션을 만든 이재웅 창업자. 일요신문 DB
한게임과 카카오를 창업한 김범수 의장과 네이버를 설립한 이해진 의장, 다음커뮤니케이션을 만든 이재웅 창업자는 모두 86학번이다. 그들은 전자공학도, 동네 친구, 대학·입사 동기라는 공통분모로 엮이고 있지만, 반대로 성격·환경 등의 차이로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오기도 했다.
김범수 의장은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김 의장의 부모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무작정 상경, 아버지는 막노동과 목공일을 하고 어머니는 지방에 머물며 식당일을 하면서 자식을 키웠다고 한다. 김 의장 중학생 시절 아버지가 정육 도매업으로 자리를 잡아 작은 집을 장만하기도 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부도가 났다.
김 의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할머니까지 포함해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다. 어머니가 지방에 돈 벌러 다니셔서 같이 살아본 적이 거의 없다.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며 “2남 3녀 중 맏아들인데 대학에 간 건 나 혼자뿐”이라고 털어놨다. 김범수 의장은 재수를 할 당시 혈서까지 쓰며 독하게 공부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반맨 이해진 의장과 이재웅 창업자는 김범수 의장과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두 사람은 학연이 같지는 않다. 이해진 의장은 상문고-서울대 출신이고, 이재웅 창업주는 영동고-연세대를 나왔다. 그러나 둘은 대학시절부터 친구로 지냈다. 그 인연은 30년여 전 두 사람이 서울 청담동 진흥아파트 같은 동의 위·아래층에 살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어머니끼리 알고 지낸 사이였고, 학교는 달라도 전자공학도라는 공통분모 때문에 이 의장과 이 창업주는 돈독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김범수 의장과 이해진 의장은 서울대 공대 86학번 동기다. 이 의장은 컴퓨터공학을, 김 의장은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두 사람은 1990년 졸업 후 각각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서울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고, 1992년 삼성SDS에 들어가 입사 동기로 다시 한 번 인연을 맺었다.
PC방을 통해 자본금을 확보한 김 의장은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1998년 11월 서울 테헤란로 뒷길 작은 임대사무실을 얻어 한게임을 창업한다. 인터넷으로 고스톱과 포커를 하는 도박 게임에 도전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불과 1년 6개월 만에 한게임의 회원은 1000만 명에 육박했다.
이 의장은 김범수 의장이 퇴사한 이듬해인 1999년 삼성SDS를 나와 ‘네이버컴(현 네이버)’을 설립했다. 네이버는 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트래픽이 문제였다. 당시 다음, 야후, 라이코스 등이 건재해 네이버컴은 업계 5위에 머물러 있었던 것. IT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컴의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자 이해진 의장이 한때 사업을 접고 매각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김 의장의 한게임 역시 네이버와는 다른 문제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용자가 늘어 성공은 했지만, 마땅한 수익모델이 없어 회사 운영비용을 감당하기도 힘들었다. 반면 당시 네이버는 100억 원대 투자를 받아 자금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상태였다. 이에 대학과 직장 동기였던 김 의장과 이 의장이 의기투합, 2000년 7월 네이버와 한게임을 합병해 NHN을 만들었다. 김범수·이해진 의장이 NHN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합병 후 한동안 NHN의 수익은 한게임이 책임졌다. 무료로 제공하는 게임에, 아이템을 파는 수익 모델이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합병 2년 뒤인 2002년 네이버의 질문형 검색서비스 ‘지식in’이 성공하고, 검색광고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며 네이버는 포털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이 의장과 김 의장이 함께 이뤄낸 성과였다.
그러나 이때부터 오히려 NHN 내에서 김범수 의장과 한게임의 입지가 좁아졌다. IT업계 1위인 NHN에서 고스톱·포커 같은 도박 게임으로 돈을 번다고 대중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결국 NHN 단독대표와 해외사업 총괄 대표를 거친 김 의장은 NHN USA 대표를 마지막으로 지난 2007년 직함을 모두 내려놓고 네이버를 떠난다.
당시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유에 대해 김범수 의장은 인터뷰에서 “거대 조직을 이루면서도 성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야인으로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그가 사직서에 남긴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닙니다”라는 문구에도 그의 고심이 나타나 있다.
앞서의 IT업계 관계자는 “두 사람 사이 불화설이 있었지만 모두 사실과 다르다”라며 “두 사람은 지금도 두 달에 한 번 정도 사석에서 만나 편하게 식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NHN을 떠나며 손에 얻은 500억 원의 자금으로 김 의장은 주로 미국에 거주하며 휴식과 함께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 그러던 중 김 의장은 모바일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네이버를 떠난 지 3년여 만인 2010년 3월 ‘카카오톡’을 들고 나와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네이버의 라이벌인 다음과 손잡고 네이버의 IT업계 시장 독주체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한편 이재웅 창업자는 지난 1995년 2월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해 1997년 ‘한메일’, 1999년 다음 카페 등을 개발하며 한때 포털업계의 선구자로 불렸다. 그러나 네이버의 급성장에 다음이 포털 2위로 밀리자 이 창업자는 지난 2007년 석종훈 전 대표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이사회 의장을 맡다가 2008년 6월에는 아예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대주주 지위만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이재웅 창업자가 이번 합병을 통해 자신의 다음 보유 지분 모두를 프리미엄을 받고 처분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 의장과 이 창업자는 학연이나 지연 같은 인연은 없지만 함께 IT업계에 오래 종사하면서 친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 관계자도 “김 의장과 이 창업자가 자주 식사를 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합병 결정도 식사 중에 ‘다음을 통해 우회상장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내년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와 다음의 이번 합병 발표는 지난 2000년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김 의장의 한게임은 인력과 자금이 필요했다. 지금의 카카오 역시 해외 모바일시장에 뛰어들 자금과 시간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김 의장은 다시 한 번 본인이 설립한 회사를 합병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14년 전 김 의장이 이 의장의 네이버컴에 트래픽을 선사했듯, 이번에는 다음에 모바일 시장을 제공한다.
과거 김 의장의 선택이 네이버를 포털 1위 자리에 올려놓았던 것처럼, 이번 합병도 다음카카오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결단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이 의장이 과거의 동료였던 김 의장의 도전을 뿌리치고 네이버의 1위 자리를 수성할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또 다른 IT업계 관계자는 “카카오와 다음의 합병은 사업적으로 봤을 때는 옳은 결정이었다고 본다”라면서 “이해진 의장, 김범수 의장, 이재웅 창업자가 국내를 벗어나 글로벌 기업과 경쟁을 통해 세계시장 진출에 성공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여지고 있다”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