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청부살인 주범 윤길자 씨가 호화 병동생활을 하던 모습. 사진출처=SBS <그것이 알고 싶다>
지난해 9월 검찰은 윤길자 씨의 주치의인 박병우 교수와 윤 씨의 남편인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을 구속해 법정에 세웠다. 두 사람이 공모해 2008년 10월부터 지난해까지 세 차례에 걸쳐 무기징역수 윤 씨에게 허위 진단서를 발급했다는 혐의였다.
이번 재판은 지난 2002년 여대생 하지혜 씨(당시 22세)의 살인을 교사한 윤 씨가 2004년 무기징역이라는 사법적 단죄를 받고 복역 중 ‘형집행정지’를 이용해 호화병동생활을 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형집행정지에 필요한 허위진단서를 받는 대가로 류 회장이 박 교수에게 1만 달러를 건넸다는 혐의에 대해 검찰 측과 피고인 측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져왔다.
지난 12일 열린 세 번째 항소심 공판의 쟁점 중 하나는 윤 씨의 형집행정지와 관련된 ‘허위진단서’의 적극적 동기 여부였다. 허위진단서를 자신을 위해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청탁을 받아서 작성한 것이라면 적극적 동기가 아닌 소극적 동기로 봐야한다는 내용이었다.
검찰 측은 “청탁을 받고 허위진단서를 작성한 것도 적극적 동기로 보고 있다”며 “박 교수가 안식년 동안 미국에 있으면서도 레지던트를 통해 진단서를 첨삭한 것과 수색 당시 (윤길자 허위진단서에 기재된) 파킨슨 병과 관련한 논문이 다수 발견된 점, 통장 속 현금이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에서 판결한 징역 8월은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의 변호인 측은 “수감생활 가능 여부 판단은 의료적 판단과 건강상태만 보고 한 것이 아니다. 도주가능성까지 고려해 검찰이 검토하는 것”이라며 “윤 씨는 급성천식으로 2번 응급실에 간 사실이 있고, 호흡기 내과와 영등포 구치소 의료과장도 윤 씨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수감생활이 힘들다고 일관된 의견을 제시했다”고 반론했다.
이미 원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던 두 사람 사이에 1만 달러가 오갔다는 배임수증죄에 대해서도 박 교수 변호인 측은 추가자료를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변론에 나섰다. 1심에서 검찰은 2년 전 박 교수가 세브란스 병원 인근 중식당에서 류 회장을 만나 식사를 하고 미화 1만 달러를 건네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 교수 변호인 측은 “이미 무죄를 받은 부분이지만 박 교수가 보석으로 풀려나 직접 뇌물 거래 정황이 있었다던 당일 은행거래내역을 확인했다”며 박 교수가 통장정리를 한 구체적인 시간을 제시했다.
윤길자 씨의 합법탈옥을 도운 남편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이 지난해 9월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부지검으로 출석하는 모습이다. 류 회장은 최근 보석으로 풀려났다.연합뉴스
재판부는 “윤 씨의 장기 형집행정지에 대한 책임을 세브란스 박 교수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검찰 소속 의료자문위원회 역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인정된다”며 박 교수가 보험사기에 연루된 의사들보다 더 위중한 벌을 받아야 하는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류 회장의 배임·횡령과 관련한 쟁점도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류 회장은 회사자금을 빼돌린 뒤 이중 일부를 윤 씨의 입원비 등으로 사용하는 등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63억 원 부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검찰은 “피고인(류 회장)이 횡령한 자금 중 2억 원 상당이 윤길자의 입원료로 사용됐다. 회사대표로서 주도적 역할을 했고 대량 피해자가 발생했다”며 원심에서 징역 2년을 받은 양형을 3년에서 3년 6개월로 조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재판부는 “다른 횡령·배임 건과 다른 경제사범에 비해 수법이 교묘하고 극악한 부분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주식거래 일시정지로 대량 피해자가 발생했는지, 임금체불이 됐는지, 그 같은 피해가 발생했다면 채권자와 근로자가 피해를 입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번 세 번째 항소심 공판은 허위진단서와 배임수증죄를 두고 치열하게 대립했다. 각 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다보니 재판은 오후 2시부터 5시간가량 진행됐다.
다음 항소심 공판은 오는 7월 15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며 박 교수 변호인 측은 전 세브란스 병원 레지던트를 증인으로 요청한 상태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류원기 보석 허가 앞뒤 영남제분 피해회복 위해… 결국 회장님도 풀려나 지난 6월 12일 항소심 3차 공판에 앞서 ‘여대생 공기총 청부살해’ 주범 윤길자 씨의 남편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이 보석으로 풀려났다. 류 회장의 항소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김용빈)는 앞서 지난 4월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서 “피고인이 모두 풀려난 상태로 재판을 받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보석 신청을 한 차례 보류한 바 있다. 허위진단서를 발급했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박병우 교수는 지난 3월 31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런데 항소심 3차 공판에서 검찰 측은 “피고인(류 회장)의 수익이 어디에 쓰였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범행수법이 전문적이고 불량하고 반복적인 점, 법인카드로 윤길자 씨의 입원료로 사용한 점 등 범행동기가 불량하다”며 집행유예 기준을 충족시키는지 재판부에 검토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류 회장이 보석으로 석방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중 어떤 것이 영남제분 피해회복에 더 긍정적일지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특히 재판부는 “피고인이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횡령 및 배임 피해액 중 3분의 2 이상을 회복시켜 양형기준상 집행유예 조건을 충족했다”며 “심리가 길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구속 기간이 대부분 지났다”며 보석허가 배경을 재차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보석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박주민 변호사는 “보석을 허가할 경우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슈화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양형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며 “노역기준이 1일 5억 원이었던 허재호 회장 경우와 같이 보석집행기준도 법관의 재량이 넓다. 양형기준표가 있는 것처럼 보석기준도 좀 더 세밀한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