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을용은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에게 쓴소리를 주저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대표팀 선수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강원 FC 코치에서 물러난 뒤 3개월가량 유럽 연수를 떠났던 이을용이 돌아왔다. 유럽 연수동안 박지성을 비롯해 손흥민, 구자철, 박주호, 홍정호 등을 만나 따로 식사를 하거나 경기장에서 만남을 가졌다는 이을용은 유럽에서 활약 중인 후배들에 대한 얘기를 먼저 풀어냈다.
―한국에서 언제 떠났던 건가.
“지난 시즌 마치고 팀을 나온 후 유소년축구에 매진했었다. 그러다 3월 1일 독일로 떠났고, 그곳에서 먼저 가 기다리고 있던 김상식과 함께 한 달 동안 독일 축구를 둘러봤다. 그 후에는 나 혼자 터키로 들어가 현재 터키리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페네르바체 팀에 들어가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페네르바체를 이끄는 에르순 야날 감독과의 인연이 그곳으로 나를 이끈 셈이다. 에르순 야날 감독은 한때 터키대표팀을 이끄셨다. 내가 터키에서 선수 생활할 때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아주 큰 도움을 주셨다.”
―유럽으로 연수를 떠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은퇴 후 국내 감독님 밑에서 3년 정도 있다 보니까 이전 내가 유럽에서 배웠던 것을 다 잊어버렸다. 유럽 축구에 대한 갈증이 독일과 터키로 날 이끈 것 같다. 막상 가보니까 이전에 했던 플레이들이 생각나면서 한국과 유럽 축구 지도자들의 훈련 방식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참으로 소중했던 3개월의 시간들이다.”
―독일에서 만난 한국 선수들과의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손흥민이다. 나랑은 초면이었고, 워낙 나이 차이가 많아서 불편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녁을 사달라고 해서 한식당에 데려가 삼겹살을 사줬다. 당시 흥민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았었다. 몇 경기 동안 골도 안 터지고 해서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런데 나랑 삼겹살을 먹은 후 다음 주에 바로 골을 터뜨렸다. (김)상식이랑 나는 아우크스부르크에 있는 홍정호를 보려고 이동 중이었다. 그때 흥민이가 전화를 걸어선 또 다시 삼겹살을 사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야 또 골이 터진다면서. 심정적으론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삼겹살뿐만 아니라 더 한 것도 사주고 싶었는데, 홍정호와의 약속을 어길 수 없어 흥민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해야 했다.”
손흥민은 가나와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도 만났다고 하던데.
“지성이랑은 정말 편하게 봤다. 독일에 있는 후배들이랑은 같이 축구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대화를 하면서도 약간은 서먹서먹했었다. 반면에 지성이랑은 서로 별명도 부르고 농담도 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선배들은 박지성의 별명을 뭐라고 불렀나.
“비밀이다. 장가도 가야 하기 때문에(웃음).”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하다.
“지성이가 예전에는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 났었다. 그 흔적들 때문에 속어로 ‘빠꾸’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남일이가 지성이를 놀려 먹을 때마다 불렀던 별명이다. 그때는 지성이가 그 별명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선배로부터 그 별명이 나오니까 크게 웃더라. 재미있다면서. 지성이네 집에서 맥주 마시며 많은 대화를 나눴었다.”
―박지성을 만났을 시점이 은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시기 아니었나.
“그랬다. 그때도 지성이 무릎에 물이 차 있었고, 그런 상태에선 한 경기 뛰고 나면 2~3일은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하더라. 그때 우리한테 지성이가 처음으로 털어 놨었다. 시즌 마치고 은퇴할 것이라고. 아직 젊은 나이인데, 은퇴 시기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도 들지만, 무릎이 좋지 않다 보니 지성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후배들을 만나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
“나도 다시 그라운드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 (웃음) 한국에서 코치 생활할 때는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이 없었는데. 유럽에서 축구를 보니까 다시 선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현역으로 뛰고 있는 후배들이 무척 부러웠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은 2002년 축구대표팀 출신들이 방송 해설로 장외 대결을 벌이고 있다. 혹시 해설 제안을 받은 적은 없었나.
“많이 받았다. 그러나 난 입담이 좋은 편도 아니고, 후배들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쓴소리를 할 자신도 없었다. 더욱이 그라운드에서 은퇴한 선수는 은퇴 후 지도자 등의 모습으로 다시 그라운드를 밟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즉 운동장에 머물고 싶었지, 중계석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현역 때부터 가장 친한 안정환은 해설과 예능 프로그램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나도 정환이가 그런 ‘짓’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돈이 궁했나? (웃음) (이)영표, (송)종국이, 정환이의 해설은 각각의 특징들이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로선 축구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월드컵이 지금의 대표팀 선수가 아닌 2002년 월드컵 멤버들을 더 클로즈업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방송국 입장에선 시청률 경쟁을 의식해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난 월드컵에서 뛰는 우리 후배들에게 더 집중하고 싶다. 해설보다는 축구를 보고 싶을 뿐이다.”
―그래도 기대를 높이게 하는 선수 출신의 해설이 있을 듯한데.
“이영표다. 영표가 포인트를 잘 끄집어내더라. 대표팀에서 생활할 때 선배들로부터 ‘목사님’ 소리 들었는데, 입담은 종국이 정환이를 단연 앞선다. 더욱이 영표는 맥을 정확히 짚어낸다. 가장 기대를 안 하게 만드는 이는 (김)남일이다. 방송 중에 욕만 안 해도 성공한 케이스라고 본다(웃음).”
홍명보 감독이 미국 마이애미 전지훈련에서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축구 인생에 두 차례의 월드컵이 있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6년 독일월드컵이었다. 그런데 두 월드컵의 결과는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지 않았나.
“2002년에는 골도 넣고 어시스트 2개를 기록했지만 2006년에는 내가 갖고 있는 기량을 제대로 펼쳐 보이지 못했다. 터키리그를 마치고 바로 합류한 탓에 토고전 때는 다리에 쥐가 나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독일월드컵은 내 진로 문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건가.
“당시 터키리그를 마치고 월드컵대표팀에 합류하기 전, 트라브존스포르의 귀네슈 감독은 2년 계약 연장을 원했다. 그러나 그 무렵 영국 프리미어리그 팀으로부터 오퍼가 왔었고, 나로선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낸 후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하려고 계약을 미뤄뒀는데, 월드컵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조건이 더 안 좋아졌고, 결국에는 FC 서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평가전을 지켜봤을 텐데, 마지막 평가전인 가나전에서 0-4 패를 당하며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금의 대표팀에는 리더가 안 보인다. 월드컵처럼 큰 대회에선 무엇보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데, 리더가 없다 보니 조직적인 플레이를 할 때 문제점을 노출시키는 것 같다. (박)주영이가 리더 부재에 대해 ‘모든 선수가 리더이다’라고 역설을 했던데, 그건 말장난에 불과하다. 모두가 리더가 되면 누가 구심점 역할을 해줄 수 있겠나.”
―‘홍명보호’가 이번 월드컵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나.
“이번 월드컵은 50 대 50인 듯하다. 가나전을 보면서 주전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고, 벤치를 지키는 선수들은 모두 K리그 출신들이었다. 국내파 선수들이 지금의 대표팀에서는 너무 소외되는 게 아닌가 싶다. 홍 감독이 어련히 잘 알아서 대표팀을 운영할까 싶지만, 베스트 11은 어느 정도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수비라인이 약하다. 벨기에 러시아 알제리 대표팀의 타깃맨들은 하나같이 키가 크고 빠른 선수들이다. 상대 공격진들이 원 투로 치고 올라가면 우리는 그걸 막기는커녕 쫓아가기에도 벅차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타깃맨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막아낼지 걱정이 앞선다. 러시아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런 점들을 잘 보완해서 나왔으면 좋겠다.”
이을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가나전에서 선수들이 보여준 체력 열세와 부진은 브라질 월드컵에 초점을 맞춘 컨디션 끌어올리기의 일부분일 것이라고 정리했다. 그리고 지금은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대표팀 선수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을용이 브라질에서 뛰고 있는 태극전사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대한민국 파이팅!”이라고.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홍명보 감독에 보내는 메시지 항상 난관 헤쳐낸 형님을 믿으~리! 명보 형! 지면을 통해 이런 글을 전하는 게 쑥스럽고 다소 ‘뻘쭘’한 일이지만, 기회가 주어졌을 때 형에게 메시지를 전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대표팀을 구성하고 조직력을 가다듬고 선수들을 이끌어 간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을 해봅니다. 솔직히 저로선 상상이 안 됩니다. 이 모든 건 명보 형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니까요. 홍명보 감독(왼쪽)과 김태영 코치. 전 이번 대표팀을 보면서 두 형들이 그리웠습니다. 명보 형, 선홍이 형처럼 대표팀을 이끄는 리더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형도 감독을 맡고 그 점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걱정이 컸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명보 형은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만들어냈고, 좋은 결과로 그런 우려들을 모두 잠재워왔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리더가 분명 존재할 것이고, 선수들은 한 사람한테만이 아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서 월드컵을 즐기고 경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명보 형, 아니 홍 감독님! 12번째 선수가 국민들이라면서요.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합니다. 모든 부담을 떨치고 그라운드에서 우리 선수들이 흥겨운 잔치를 벌였으면 합니다. 형은 그 위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거고요. 모두 무사히, 건강하게, 그리고 좋은 결과를 안고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그땐 형이 좋아하는 맥줏집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들이켜는 걸로!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