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이 개인적인 견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의 귀국 시점이 임박했음을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언급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의원은 지난 12월23일 국회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2003년 7월 태국 방콕에서 김 전 회장과 만난 일화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1년 5개월 만에 김 전 회장과의 만남을 공개한 그는 “김 전 회장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두어 달만 밖에 나가 있으면 된다. 그러면 대우자동차를 포함해서 주력 4개 기업의 경영은 보장하겠다’고 한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게 한스럽다며 심한 배신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고 전해 항간에 나돌고 있는 김대중 정권의 ‘대우 희생양 삼기’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김우중 전 회장을 만난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은 지금 내가 <대통령의 비자금>(가제)이란 책을 준비중이다. 내년(2005년) 10월이면 내가 국회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을 폭로한 지 꼭 만 10년째가 된다. 그래서 그때 밝히지 못했던 비하인드 스토리도 밝히고 또 대통령의 비자금을 전체적으로 정리해놓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서 취재를 하는 도중이었다. 김 전 회장의 증언도 꼭 필요했다.
─해외에서 유랑 생활을 하는 김 전 회장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따로 루트가 있나.
▲김우중 체포조까지 생긴 마당에…(웃음) 어떻게 해서 만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2003년 7월 당시 프랑스 등 유럽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 전 회장을 방콕에서 만났다면, 동남아 등지를 김 전 회장이 활발히 오갔다는 추측도 결국 사실인 셈인데.
▲그렇다. 김 전 회장은 베트남 태국 동남아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에서도 여전히 국빈 대접을 받는 세계적인 기업인으로 통하고 있다.
─최근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다는 것도 사실인가.
▲그렇게 알고 있다. 사실은 베이징 가기 전인 지난 11월 중순경 내가 한번 더 만나보려고 김 전 회장에게 연락을 했었는데, 수술을 한 지가 20일 정도밖에 안 됐다고 하시더라. 장 협착이 와서. 그래서 좀 편안해지면 만나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약 4~5일 후에 베이징에 간 것으로 보인다.
▲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 | ||
▲99년 10월경 김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딱 두어 달만 나가 있으면 된다. 그러면 대우자동차를 포함해서 대우의 주력 4개 기업은 경영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당시 워크아웃 열풍이 상당할 때였고, 또 대통령이 직접 말하는데 동의 안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가 있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완전히 자신의 입국 자체를 막았다고 한다. 물론 대우자동차 등은 모두 팔리고. 너무 심한 배신감과 울분 스트레스로 결국 장이 꼬여서 이후 장 수술만 세 차례 받았다고 했다.
─(김 전 회장은) 여전히 대우가 희생양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당시 대우가 글로벌 경영을 표방하면서 동유럽 남미 아프리카 러시아 등 세계 각지에 사업장을 갖고 있었는데, 돈을 각 나라마다 관리할 수 없으니까 영국의 한 은행에서 집중적으로 관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DJ 정권에서는 이것이 마치 외환 빼돌리기 기법인 양 비친 점도 억울해 했다. 그는 귀국만 하면 영국의 은행 계좌 등 관련 내용들을 충분히 다 해명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나 경제 정책이 채권자본에서 투자자본으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해외 시장에 어필하기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국내의 영양가 있는 알짜 기업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었다는 점도 대우 사태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다. 또한 정부 입장에서도 해외에 “봐라. 우리가 이런 재벌기업까지 해체시킨다”는 성의를 보여줄 필요성도 있었을 것이다.
─(김 전 회장이) 아직도 대우의 경영권에 대해 강한 집착을 갖고 있던가.
▲결과적으로 대우의 여러 계열사나 또 해외 진출 기업이 최근 위기를 넘기고 탄탄하게 운용되고 있다는 점만 봐도 김 전 회장의 경영 방식이 전혀 틀렸다고 보긴 어려운 것 아닌가. 또 최근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점이 새롭게 인정되고 있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본인도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본인이 여전히 갖고 있는 그 정력과 경험, 그리고 막강한 해외 인맥과 신뢰도로 볼 때 국가를 위해서 일정한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김 전 회장을 만난 시점은 노무현 정권 출범 직후인데, 새 정권에 대한 기대감을 표하지는 않던가.
▲당연히 기대할 수밖에. 본인으로서는 어떻게 하든 들어오고 싶어하는 입장이니까. 또 나도 김 전 회장에게 “노 정권이 들어섰으니 많은 변화가 올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김 전 회장의 귀국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
▲상당히 밝다. 정치권에서 더 이상 김 전 회장을 반대할 세력도 이젠 없다. 오는 2월이면 노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이 되는데, 정치적 대사면으로 국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경제인들도 대거 사면해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올 초쯤이면 들어올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얼마 전 노 대통령이 유럽순방길에서 폴란드의 대우전자 공장을 방문해서 한 발언(“오래 전부터 대우 취직이 젊은이들의 꿈이었다. …대우는 한국 기업이지만 여러분과 함께하므로 폴란드 기업이라고 생각한다”)도 이와 관련해서 상당히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