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불법뇌물 수수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은 박상은 의원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의석이 비어있다. 박 의원은 보좌관들의 월급 착취 폭로가 불거지면서 더욱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 11일 오후. 인천시 중구 사동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 사무실 앞에 에쿠스 차량 한 대가 주차돼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자가 차량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주위를 은밀하게 살핀 그는 순식간에 에쿠스 뒷좌석 문을 열고 가방 하나를 꺼내 홀연히 사라졌다.
이후 박상은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 조직부장인 나 아무개 씨가 차량으로 왔다. 뒷좌석을 살펴본 그는 흠칫 놀라고 만다. 자리에 있던 가방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 당황한 나 씨는 의원 사무실로 올라갔다. “의원님 가방이 없어졌습니다.” 보고를 받은 박상은 의원은 보좌관을 시켜 112에 신고를 했다. 이때가 오후 5시쯤이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박상은 의원 측은 “가방에는 현금 ‘2000만 원’과 서류가 들어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차량 인근 CCTV를 확보했고, 차량에 접근한 한 남성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었다. 박상은 의원 측에 알아보니 인상착의가 박상은 의원의 운전기사 ‘김 아무개 씨’와 유사하다는 점을 알아냈다. 박상은 의원 조 아무개 보좌관은 “김 씨가 이날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용의자는 김 씨로 좁혀 들어가는 듯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발생한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김 씨가 다음날인 12일, 직접 인천지검으로 찾아가 가방을 제출한 것. 김 씨는 가방을 두고 “불법 정치자금 수수 증거”라고 지목했다. 마침 당시 인천지검 해운비리특별수사팀(송인택 1차장)은 박상은 의원이 해운비리와 연루된 정황(박스기사 참조)을 잡고 내사를 진행 중이었다. 검찰은 즉각 불법 정치자금 혐의도 함께 병합해 수사를 개시한다.
그렇다면 과연 ‘돈 가방’의 진실은 무엇일까. 박상은 의원 측과 운전기사 측의 주장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우선 박 의원 측은 “김 씨가 2000만 원을 계획적으로 훔쳐갔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불법 정치자금이라며 검찰에 신고를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박 의원 측은 김 씨가 가방을 가져간 당일이 아닌 다음날인 12일에 검찰에 신고를 한 것에 주목한다. 박 의원 측은 “만약 그게 불법 정치자금이었다면 우리가 도난당했다고 신고했겠느냐. 김 씨도 여기에 당황한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김 씨 측의 주장은 다르다. 김 씨와 직접 통화를 했다는 박 의원의 전 비서관은 “김 씨가 11일에 굉장히 몸이 안 좋았고 검찰도 어디를 찾아갈지 몰라 하루가 미뤄진 것”이라며 “아직 40살밖에 안 된 사람이 2000만 원에 자신의 인생을 걸겠느냐”고 반문했다.
‘2000만 원’의 출처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박 의원 측은 “각종 의혹에 대응하기 위한 변호사 선임 비용이다. 일부는 집에서 가져왔고 나머지는 지난해 말 출판기념회 수익금”이라고 전했다. 박 의원은 지난 4월 전 비서관이었던 장관훈 씨로부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바 있다. 이를 대응하기 위한 변호사 선임 비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운전기사 김 씨는 검찰 조사에서 ‘공천헌금’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돈의 출처와 관련해서는 박 의원 측의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높다. 변호사 선임 비용을 굳이 현금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변호사는 통상 세무서에 신고한 ‘수임료 계좌’를 통해 수임료를 받는 게 일반적이다. 게다가 박 의원은 지난해 말 출판기념회 수익금 전액을 난치병 어린이 돕기 성금으로 기부한 바 있다. 돈의 출처에 대한 해명 자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이 포착되는 셈이다.
결정적인 것은 박 의원이 ‘2000만 원’이라 신고했던 금액이 검찰에 의해 ‘3000만 원’으로 드러난 데에 있다. 박 의원이 애초에 가방에 든 돈의 액수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정황으로 해석된다. 박 의원 측은 “분실한 가방은 평소에 돈을 넣고 다니던 가방이다. 박 의원이 변호사 비용으로 2000만 원 더 넣은 것이어서 2000만 원인지 3000만 원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라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높다.
때문에 관심의 초점은 의문의 3000만 원이 결국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박 의원에게 흘러간 ‘공천헌금’ 아니겠느냐로 쏠려 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다른 지역보다 유독 인천 지역, 특히 박 의원의 지역구에서 공천헌금이 오고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귀띔했다. 해당 관계자는 “이곳 지역구를 맡았던 서상섭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의원도 공천헌금 혐의로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항만이 몰려 있는 인천의 핵심 지역구이고 살고 있는 주민의 연령대가 높아 여권색이 강하기 때문에 아무나 꽂아도 사실 당선이 된다. 그만큼 공천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고 그것이 관행처럼 이어져왔다”라고 전했다.
서상섭 전 의원은 지난 2006년 구의원 후보로부터 2000달러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서 벌금 300만 원과 추징금 188만 원이 선고된 바 있다. 당시 서 전 의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승용차 트렁크에서 미화 5000달러와 엔화 45만 엔, 현금 100여 만 원이 발견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상은 의원의 차량에서 돈 가방이 발견되고, 검찰이 압수수색한 박 의원의 아들 집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미화와 엔화, 현금이 발견된 점을 볼 때 당시 공천헌금 사건의 ‘데자뷔’가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 것이다.
공천에 탈락한 한 인사는 박 의원에게 ‘수상한 언질’을 받기도 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해당 인사는 “공천을 앞두고 박 의원이 계속해서 ‘이번에는 좀 힘들 텐데’라고 계속 얘기하더라. 돈을 달라는 얘기로 들려 2000만~3000만 원 정도 주고 확 공천 받아볼까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 그만뒀다. 결국 이번 일이 터지는 것을 보고 그때 돈을 냈으면 큰일 났겠구나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박 의원 측은 공천헌금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는 상황이다. 박 의원은 지난 16일 당직자 모임에 참석해 “공천헌금이라는 의혹은 말도 안 된다. 돈 안 받고 깨끗한 공천을 했으며 선거 기간에도 내 돈 썼지 누구의 돈도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공천헌금에 대한 의혹이 전면적으로 퍼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의문의 3000만 원이 해운비리와 연관된 ‘뇌물’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검찰에서는 돈 가방 속 5만 원 권이 묶여 있는 은행 띠지를 파악, 자금의 출처를 확인하는 한편 박 의원의 소환 일정을 조율 중이다. 의문의 돈의 실체가 파악될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