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유리 외벽에 비친 하나은행 본점의 모습.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가 ‘카드통합’ 등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이 일을 두고 재계 고위 인사는 “지주사와 외환은행의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잘라 말했다. 일반 기업에서도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검찰 고발 등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외환은행 노조는 이어 지난 19일 이 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금융위원회에도 제출했다. 또 하나금융이 추진하고 있는 외환카드 분사·하나SK카드와 통합 작업을 규탄한 바 있다.
하나금융은 금융위의 외환카드 분사 승인 이후 하나SK카드와 외환카드를 통합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카드사의 경우 독립경영과 관련 없다”면서 “인수합병 당시 카드사 합병을 이미 예고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외환은행 노조 측은 이 같은 통합은 연평균 143억 원의 적자를 낸 하나SK카드의 부실을 연평균 1403억 원의 흑자를 기록하는 외환카드로 메우려 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노조는 지난 5월 19일 성명서를 통해 “카드 통합(외환카드와 하나SK카드) 시도는 외환은행에 대한 하나지주의 일방적인 자산 강탈 이외 그 어떤 목적도, 그 어떤 효과나 시너지도 없다”며 금융위를 향해 “하나지주만을 위한 특혜성 조치”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최근 KB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대형 금융지주사들이 대내외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하나금융마저 곳곳에서 갈등이 표출되자 금융권 분위기는 급랭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요즘처럼 금융지주사가 전부 마찰을 일으키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내부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 더 걱정스럽다”고 전했다.
하나금융은 금융지주사 중 정부 입김에서 그나마 자유롭다고 알려져 있다. 하나금융은 4대 금융지주 중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가장 적다. 지난 5월 26일 김제남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퇴직공직자 취업심사내역 및 심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이후 하나금융은 4대 금융지주(KB·우리·신한·하나) 중 ‘관피아 낙하산 인사’가 17명으로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주회장과 은행장이 자주 바뀐 다른 금융지주사와 달리 김승유 전 회장이 10년 이상 하나금융과 하나은행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도 하나금융이 다른 금융지주사와 달리 정부와 금융당국의 입김에 크게 휘둘리지 않은 이유였다는 의견이 많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이 지난 4월 저축은행 부당 지원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문책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받았음에도 “임기를 채우겠다”며 버틸 수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사실상 김 행장의 사퇴를 압박한 것으로 해석했지만 김 행장은 물러나지 않았다. 김승유 전 회장도 “금감원이 그렇게 한가한 조직인가”라며 김 행장을 압박하는 금감원에 노골적인 불만을 쏟아낸 바 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지난 19일 “행장님의 거취에 대해서는 변함없다”고 밝혔다.
앞서의 금융권 관계자의 말마따나 하나금융의 더 큰 문제는 금융당국과 갈등이라기보다 내부 갈등과 마찰이 자꾸 외부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특히 2012년 1월 금융당국으로부터 외환은행의 자회사 편입을 승인받은 이후 외환은행과 마찰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김근용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공동교육이나 인사발령 등에서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면서 “독립경영이란 외환은행을 가만 놔두고 존중하겠다는 것인데 하나금융과 끊임없이 섞으려 하고 감성적으로 동화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취임 이후 줄곧 직원들과 소통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면서 “행장 이전에 선배 입장에서 외환은행 후배들과 융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외환은행 일부 직원들은 김한조 외환은행장에 대한 불만도 토로하고 있다. 지난 3월 윤용로 전 행장에 이어 외환은행장에 취임한 김 행장은 당초 외환은행 직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5년간 독립경영 약속’이 훼손되고 있다고 본 외환은행 직원들은 외환은행 일선 지점의 사원으로 출발해 지점장 등을 거쳐 행장에 오른 정통 외환은행 출신인 김 행장에 기대를 걸었던 것.
그러나 김 행장이 취임 이후 외환은행보다 하나금융 쪽 의견을 대변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외환은행의 한 직원은 “직원들 사이에서 행장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얘기가 종종 들린다”고 전했다. 김근용 위원장은 “전임 행장과 현 행장을 겪어보니 내·외부 출신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서 “그보다는 직원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행장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밖에서는 하나금융이 잦은 마찰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하나금융 생각은 다르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외환은행이) 자회사이니만큼 화합 차원에서 융합하려 하는 것이지 강제로 동화시키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면서 “지주사와 하나은행, 외환은행 직원들 모두 맡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며 마찰이나 갈등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했다.
김정태 회장, 김종준 하나은행장, 김한조 외환은행장, 이들 ‘3김’이 하나금융의 내우외환을 어떻게 돌파할지 주목된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