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전당대회가 ‘서청원-김무성 양강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의 파트너십이 먼저냐, 당의 변화와 쇄신이 우선이냐가 두 후보가 만들어내는 프레임이다. 친박이냐 비박이냐의 계파구도는 선명하지 않지만 남은 며칠 동안 급격히 부각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친박계가 그리 적극적이지 않더라’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당내에서도 친박계 핵심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따갑다. 친박계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허심탄회한 말을 들려줬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왼쪽)와 재보선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은 윤상현 사무총장은 각각의 사정으로 전당대회에 나선 친박들의 지원을 대놓고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여권 핵심부에서는 서청원 의원 말고도 친박계 몇몇 다선 의원에게 전당대회 출마를 에둘러 요청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 말인즉 김무성 의원이 당대표가 되는 것은 정말 싫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면 친박에서도 소위 잘나가는 실세들이 세력의 결집을 도모하고, 의원들에게 읍소하고, 친박에서 당권을 잡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2안으로 친박계가 최고위원 진용을 장악해 당대표를 견제하자지만 지금 여론조사가 어디 그런가. 자기 정치만 하려하지 자기희생은 하려 하지 않는다.”
원내대표를 지내며 가장 ‘박심(朴心)’에 가깝다는 최경환 의원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지명돼 여의도 정가와 거리를 두고 있다.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경제와 관련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게다가 일부 언론에서 아들의 병역특혜 의혹을 제기하면서 측근들이 해명자료를 들고 국회 기자실을 찾기도 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상에서는 최 의원의 경제 관련 과거 발언을 검증하는 글들과 댓글이 터져 나오고 있다. 최 의원의 정치권에 대한 함구 모드는 어떻게든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현 정부의 실질적인 내각 수장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있다. 그러니 누구도 비판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여권 관계자가 전한 말을 들어보자.
“몇 주 전에는 최 의원이 국무총리 세평에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만큼 현 정부로선 박 대통령 지근거리에서 내각을 장악해 총지휘할 위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홍원 국무총리가 유임되면서 경제부총리가 경제 컨트롤타워이자 실세 총리로 자리할 가능성이 커졌다. 최 의원이 지난 정부에서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내며 청문회를 통과한 만큼 이번에는 무조건 통과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사명을 띠고 있다. 전당대회에 나선 친박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조금만 새어나와도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전당대회에서 친박계 주자들이 뜨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된다.”
최 의원의 여의도 부재로 눈은 윤상현 사무총장,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 등 친박계의 ‘허리’들에게 쏠린다. 하지만 윤상현 사무총장은 7·30 재·보궐 선거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아 그쪽에만 몰두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었다. 김재원 수석부대표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지역구(경북 군위·의성·청송) 인심을 잃었다는 관측 탓에 지역구 관리에 열을 올리는 한편, 각종 언론 인터뷰를 담당하면서 전당대회 정국에서는 슬쩍 비켜나 있다는 후문이다. 그 외 친박 핵심들은 있거나 세를 확장하는 매력을 갖추지 못해 서청원 의원 등 친박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친박 중진들은 서청원, 김무성 의원 모두와 과거에 인연이 있어 한쪽 손을 들어주기가 마뜩찮다는 표정을 짓는다. 특히 대구·경북(TK)에선 지역 출신 당권주자가 없어 1인 2표를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서청원 김무성 의원 모두에게 표를 던질 가능성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친박 핵심 외 ‘친박 언저리’ 의원들의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 자신은 친박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친박에선 그렇게 대우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는 한 초선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친박계에서 핵심 실세라는 분만 고속행진을 하고 있다. 다 같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뛰었고, 모두가 크고 작은 직책을 맡아 분투했는데 공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돌아가 권세를 누린다는 배앓이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또 많이 뛰어야 하는데 당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친박의 결집력이 모래알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전당대회를 코앞에 두고 친박계가 친노무현계나 친이명박계와 자꾸 비교되는 말들도 나온다. 친노에선 김근태 이해찬 유시민 김두관 등이 탄탄한 허리 역할을 하며 세력을 모았고, 친이에선 이재오 이방호 정두언 등이 청와대에 할 말 안 할 말 해가며 계파의 이익을 대변해 왔는데 친박은 그렇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다. “친박에선 김기춘 비서실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밖에 없다”는 자조의 목소리도 있다.
문창극 국무총리 내정자 사퇴와 정 총리 유임도 전당대회의 새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사퇴 총리의 유임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라는 비판적 보도가 나오자 새누리당 의원들과 당원들 사이에서 “멘탈이 붕괴될 지경”이라는 말을 해댔다. 한 친박계 의원실 관계자는 이렇게 일갈했다.
“정 총리가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 거의 두 달 가까이 지났는데 사람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이 정부가 얼마나 준비가 덜 돼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 인사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이라도 어떻게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인사가 가장 큰 문제라는 국민 여론을 돌리기 힘들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응이나 계속 이어지는 인사 잡음과 실패로 더 이상 친박계에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엿보인다”는 정보기관 관계자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여러 하마평에서 환영받을 만한 인물들이 거론됐음에도 정 총리를 유임시킨 것을 두고 “좋은 카드가 많았는데도 기권한 것과 같다”고 잘라 말한 여권 인사도 있었다.
이렇듯 당권은 김무성 의원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모습이다. 복병은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움직임이다. 현재 7·30 재보선 전략공천 가능성이 이야기되지만 공천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라면 전당대회로 우회할 수도 있다. 비박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김무성 의원으로선 표가 쪼개지는 결과를 안을 수 있는 것이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