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이미 세계인의 축제다. 지구촌은 내로라하는 축구 스타들의 골에 웃고 울고 분노하고 실망하고 기뻐한다. 그 열망과 실망, 기대와 저주, 그리고 함성이 죽 끓듯 하는 그곳이 어떤 축구인에게는 천국이고, 어떤 축구인에게는 지옥일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감정이 투사되어 빛이 되기도 하고 튀김이 되기도 하는 그곳, 그곳이 월드컵이 만드는 지구촌이다.
운동장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축구가 아니니 화면으로 볼 수밖에 없고, 화면을 고를 때는 아무래도 누가 해설하는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노련한 차범근도 좋고, 재미있는 안정환도 나쁘지 않지만 나는 이영표가 좋다. 그의 해설에는 수비수의 매력이 물씬 묻어난다.
그가 스페인이 몰락할 거라고 하면 스페인이 몰락하고, 이근호 선수를 주목하라고 하면 이근호 선수가 골을 넣고, 손흥민이 기대된다고 하면 손흥민이 골을 넣었다. 그는 더 이상 대표선수는 아니었으나 ‘이영표 예언’이란 검색어가 계속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올라와 있을 만큼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돋보였던 축구인이었다. 그의 변신은 아름다웠고, 그만큼 성공적이었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예언할 수 있었을까? 그가 믿는 하나님이 알려주시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평생 축구를 했던 그는 축구를 할 때나 남의 경기를 볼 때는 하나님까지도 지워버리는 집중력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기대하게 되면 투사하게 되고, 실망하게 되지만, 사랑하게 되면 관찰하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고, 집중하게 되고, 알게 된다. 그러면 길이 보인다. 이영표가 말한다.
“축구를 했고, 축구를 알고, 양 팀의 장단점을 알고, 선수들의 특성을 알고 지금 분위기를 알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그러니까 예언이 아니라 예측이라는 것이었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지만 그게 어찌 ‘누구나’이겠는가. 그 누구나는 축구를 알고, 사랑하고, 기대를 접을 줄 알고, 적을 알고, 선수들의 특성을 알고, 지금 분위기를 아는 소수 중의 소수인데.
우리가 2 대 4로 진 알제리전 이전에 그는 손흥민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과연 손흥민이 골을 넣었다. 그가 말했다.
“알제리는 역습이 좋으면서도 한번 나올 때 너무 많은 숫자를 동원하기 때문에 오히려 역습을 당할 수도 있다. 역습을 할 가장 빠른 타이밍에 스피디하게 잘 들어갈 수 있는 친구는 손흥민뿐이다. 한 방이 있는 친구다.”
나는 그의 관찰력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오랜 수비 경험으로 선입견과 편견 없이 선수 하나하나를 관찰해본 수비수의 힘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16강에 들지 못했다. 그래도 홍명보호를 격려하고 싶다. K리그에는 관심도 두지 않으면서 월드컵에서 왜 그리 준비가 덜 됐냐고 비난하는 건 그야말로 우물에서 숭늉 찾는 조급함이므로.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