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난사 사건으로 숨진 장병들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성남 국군수도병원 모습. 연합뉴스
먼저 국방부의 임 병장 유서공개 입장 번복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국방부는 임 병장이 자살 기도 직전 작성한 A4용지 3분의 1 분량의 메모(유서) 전문을 25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가 정작 25일이 되자 이를 돌연 ‘비공개’로 전환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측은 “유족들이 메모가 공개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유족들이 이를 반박하면서 부대에서 발생했던 부조리가 외부에 공개될 것을 우려한 일부 군 지휘관들이 이를 막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임 병장이 유서로 생각했던 메모에는 임 병장이 마지막 심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상관이나 동료들의 이름을 직접 적어 넣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메모에는 임 병장이 자신의 가족과 유족들에 대한 사과의 뜻과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추상적 표현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병장이 작성한 메모에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 ‘벌레를 밟으면 얼마나 아프겠나’, ‘나 같은 상황이었으면 누구라도 힘들었을 것’과 같은 자신의 범행 동기를 암시하는 듯한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대 내 구성원 간 갈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임 병장의 범행 동기를 일차적이고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인 메모가 공개되지는 않고 있지만, 여러 정황상 임 병장이 이 같은 참혹한 범행을 저지른 데에는 일정 부분 집단 따돌림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군 수사 기관은 임 병장이 지난 26일 국군강릉병원으로 이송됨에 따라 임 병장에 대한 조사를 본격화 하고 있다. 변호인 입회하에 진행된 군 수사 당국의 조사에서 임 병장은 “초소에 나를 놀리고 비하하는 내용의 글과 해골모양의 그림이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해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범행을 저질렀다”는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료들은 물론 부대 간부들까지 임 병장을 괴롭혔던 것으로 드러났다. 임 병장은 “간부들이 뒤통수를 때리거나 조그만 돌을 집어 던지기도 했다. 4주 동안 하루 16시간씩 근무를 서기도 했다”는 등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총기 난사 사건 발생 2개월 전인 지난 4월 중순께 원래 GOP 소초장(소위)이 감시 장비 분실과 소초 시설물 훼손 등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문책성 보직 해임된 건과 이번 사건이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방부 출입기자단 소속 한 매체 기자는 “범행 동기로는 왕따가 유력하게 추정되는 상황이다”며 “해당 소초장은 임 병장과 같이 전입을 해 온 인물”이라고 말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임 병장 왕따’ 발언을 했다가 유족들의 항의를 받고 사과성명을 냈다. 이종현 기자
즉 원래 소초장은 임 병장과 부대 ‘전입 동기’였던 것이다. 실제 해당 소초장은 임 병장을 부분대장으로 임명하는 등 임 병장을 다소간 배려해 준 인물이라는 점을 미뤄 볼 때 임 병장은 소초장이 떠난 상황에서 이전보다 내무 생활 등에서 더욱 소외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 겸 국가안보실장도 지난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보고에서 “(탈영은) 이등병 때 주로 사고가 나는데 병장에게서 사고가 난 것은 집단 따돌림이라는 현상이 군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원인이 그것뿐이냐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다”며 집단 따돌림이 이번 범행의 동기 중 하나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희생 장병 유가족들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장례식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발표하자 김 장관은 27일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사과했다. 유족들이 이를 받아 들여 희생 장병 5명의 합동영결식은 28일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육군 제22보병사단장으로 거행됐다.
또한 관심병사 선정과 관리 과정의 허점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어 제도 쇄신 등의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관심병사들이 정서 불안 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더라도 이들을 상담하고 안정시켜 줄 전문상담인력이 태부족할 뿐만 아니라 이들의 군대 적응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그린캠프’에서는 또 다른 가혹 행위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집이 가난하다거나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관심병사로 지정되는 일도 발생하는 등 관심병사 제도 자체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특히 관심병사 관리는 비공개로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나 군 생활 중 자연스레 이런 사실이 알려지게 되고 ‘낙인’이 찍히게 되면서 집단 따돌림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군 인권 관련 비정부기구(NGO)인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지휘관과 해당 관심병사 이외에는 관심병사 지정 사실이 공개돼서는 안 되지만 행정병 등 여러 통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왕따가 발생하게 된다는 게 문제다”라며 “왕따를 당하게 되는 관심병사는 자신의 후임병들로부터 경례 등 기본적인 예의나 배려도 기대할 수 없게 돼 소외감이 점차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총기 사고가 발생한 22사단은 지난 1984년 조 아무개 일병이 내무실에 총을 쏴 병사 15명이 숨지는 사건을 시작으로 수차례 총기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곳이다. 인근 다른 사단들에 비해 담당해야 할 총경계선(97㎞)의 범위가 워낙 방대하고 이에 따라 병사들의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도 높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처럼 유독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22사단은 소위 사단장(소장)들의 무덤으로 불리고 있다. 이번 사고도 책임이 특히 강조되는 군 조직 특성상 소대장에서부터 사단장까지 직속 지휘라인의 문책이 불가피할 전망이어서 이 같은 악명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