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보호단체인 사단법인 탁틴내일이 6월 2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한국 남성들의 잘못된 성문화에서 비롯된 코피노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출처=탁틴내일
평생 필리핀을 떠나본 적이 없던 A 씨는 2012년 사진 한 장을 품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아들 둘을 떼어놓고 떠나는 마음이 편할 리 없었지만 무리해서 한국을 찾는 이유도 오직 아이들 때문이었다. A 씨는 돌아오겠다는 약속만 남긴 채 떠나버린 아이들의 아버지를 어떻게든 찾고 싶었다.
A 씨와 아이들의 한국인 아버지 B 씨의 만남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리핀에서 회사를 운영하던 사업가 B 씨는 현지에서 A 씨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당시 B 씨는 나이도 많은데다 한국에서 결혼해 자녀들까지 낳은 유부남이었으나 동거에 거리낌이 없었다. 두 사람은 부부처럼 한 집에서 생활했고 그 결과 2000년 첫째 아들 C 군이 태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 아들 D 군까지 낳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A 씨는 다가올 비극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2004년 두 아들이 뛰어놀기 시작할 무렵 B 씨는 갑작스럽게 한국에 들어가겠노라 선포했다. “다시 돌아오겠다. 기다리고 있어라.” B 씨가 남긴 한 마디에 A 씨는 두 아들을 돌보며 힘겹게 생활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한국에 돌아간 B 씨는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렸고 그렇게 A 씨와 두 아들은 그렇게 필리핀에 버려졌다.
하지만 A 씨는 맘껏 슬퍼할 여유도 없었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의 상처를 달래기는커녕 당장 생계부터가 막막했기 때문이다.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B 씨가 아무런 지원을 해주지 않아 한창 자라는 아이들을 먹여 살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틈틈이 B 씨를 찾으려 노력도 해봤으나 필리핀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깨달을 뿐이었다.
절망적인 나날이었지만 어쨌든 시간은 흘러 두 아들은 아버지를 닮은 얼굴로 성장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A 씨는 2012년 큰 결심을 하게 된다. 한국에 가면 어떻게든 A 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필리핀을 떠나기로 한 것.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겨우 자신만이 한국을 찾게 됐는데 사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
한국어에 능하지 못했던 A 씨는 직접 B 씨를 찾는 것은 불가능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단체와 기관들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다녔다. 하지만 A 씨가 가진 정보는 너무 빈약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곤 B 씨의 이름과 사진 한 장뿐이었던 것. 가는 곳마다 “죄송하다”는 답변만 돌아왔고 A 씨는 절망에 빠져들었다.
“A 씨를 만난 적은 있으나 성관계를 한 적도 없고 동거도 하지 않았다. C 군과 D 군이 내 자식이 아니다. 증거를 대라.”
B 씨는 10여 년 만에 A 씨와 아이들의 소식을 접하고도 시종일관 뻔뻔한 태도를 취했다. 혹여나 국내 가정에 해가 될까 재판에도 비협조적이었다. 친자관계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까지 거부했는데 이에 법원은 B 씨에게 강제수검 명령과 함께 과태료를 고지하는 등 매번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법정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A 씨와 B 씨 사이에는 냉기만 흐를 뿐 도저히 아이를 낳아 기른 사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아이들과 생이별을 감수하고 낯선 이국땅에서 식당일을 하며 어렵게 재판을 이어나가던 A 씨를 보고도 단 한 번도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더욱이 B 씨는 재판이 끝나면 조용히 A 씨를 찾아가 “포기하라”며 협박을 일삼았으며 변호사에게도 “그만 손 떼라”고 으름장을 놨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던 재판은 1년 6개월을 넘기고서야 마침내 6월 22일 판결이 났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단독 권양희 판사는 필리핀에 사는 C 군과 D 군이 B 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친생자임을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필리핀에서 작성된 아이들 출생증명서에 B 씨가 아버지로 기재된 점과 유전자 검사 결과 혈연관계가 인정된 점을 바탕으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로써 C 군과 D 군은 한국 국적 취득은 물론이고 B 씨에게 양육비 등을 청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A 씨를 무료 변론한 조동식 변호사는 “통역을 통해 재판 결과를 들은 A 씨가 수없이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A 씨는 소송을 통해 단순히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두 아들을 B 씨의 호적에 편입시켜 한국에서 키우고 싶어 한다”며 “아마 무사히 일이 진행되면 C 군과 D 군을 한국으로 데려와 키울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은 B 씨의 심경 변화가 없는 이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B 씨는 여전히 C 군과 D 군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