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IT기업 소프트뱅크가 지난 6월 5일 발표한 인공지능 로봇 페퍼는 인간과 대화를 나누고 감정까지 느낀다. 손정의 회장은 어릴 적 만화영화 아톰을 보고 감정을 가진 로봇 개발을 꿈꿨다고 한다. 로이터/뉴시스
“여러분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페퍼라고 합니다. 손 회장님, 인사는 이 정도면 될까요?”
지난 6월 5일, 일본의 IT기업 소프트뱅크는 놀라운 제품을 발표했다. 인간과 대화를 나누고, 감정까지 느끼는 인공지능 로봇 ‘페퍼(pepper)’가 바로 그것이다. 이날 발표회장에서 페퍼는 무리 없이 사회를 진행했고,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웃자 “진심으로 웃는 것 같지 않다”며 농담도 건넸다. 사람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로봇, SF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동그란 얼굴형에 큰 눈이 인상적인 페퍼는 세계 최초의 감정 인식 로봇이다. 감정 엔진을 장착해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 표정을 살피고, 억양 변화로부터 마음을 유추한다. 이렇게 모으고 학습한 정보들은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페퍼를 계속 진화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시간이 지날수록 페퍼는 더 똑똑해진다는 뜻이다. 가령 페퍼가 춤추는 것을 보고 사람이 기뻐하면, 페퍼는 더 자주 춤을 춘다.
손정의 회장은 페퍼를 공개하면서 “어렸을 때 만화영화 <우주소년 아톰>을 봤다. 아톰처럼 감정을 가진 로봇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오랫동안 로봇 개발을 꿈꿔왔다”고 밝혔다. 또 “빠르면 내년 2월부터는 페퍼를 시중에 판매할 계획”이라고 한다. 가격은 우리 돈으로 198만 원 정도. 손 회장은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지능형 로봇보급 확대에 주력할 것”이라며 “이익은 나중에 거둬도 된다”고 말했다.
페퍼 이외에도 인간의 움직임을 표방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일본에서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가와다공업이 개발한 ‘넥스테이지(NEXTAGE)’가 대표적인 사례다. 넥스테이지는 기존 산업용 로봇과는 달리, 인간과의 공존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위화감이 들지 않도록 친근한 외형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어깨, 팔꿈치, 손목 등에는 관절을 만들어 2개의 팔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실제, 도쿄 인근의 한 공장에서는 넥스테이지가 사람과 함께 생산라인에 투입되고 있다. 한 라인에 4대의 넥스테이지가 줄을 서서 작업하고, 마지막 공정은 사람이 담당한다. 재미있는 점은 사람들이 넥스테이지를 종업원 대하듯 이름으로 부른다는 점이다. 그것도 로봇이 연상되는 이름이 아니라 여느 사람과 다름없는 이름이다. 기존 산업용 로봇이 ‘설비’였다면, 넥스테이지는 ‘동료’라는 개념에 한 발짝 더 다가간 셈이다.
지금까지 150대 이상 팔린 넥스테이지의 가격은 약 740만 원. 앞으로 가격인하가 예상되는 만큼 여러 공장에서 넥스테이지를 도입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만약 공존을 목표로 하는 넥스테이지의 도전이 성공한다면, 생산현장에서의 로봇 보급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아직은 로봇이 육체노동만을 대체하고 있지만, “곧 화이트칼라의 지적노동까지 대신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 국립정보학연구소는 인간과 같이 생각하고 대답을 이끌어내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목표는 2021년까지 도쿄대에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의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 작년 가을에는 대학입시 모의시험에 도전, “도쿄대 합격은 어려워도 사립대는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똑똑한 지능을 가진 로봇과 같이 근무하게 될 날도 그다지 머지않아 보인다.
인간의 움직임을 표방한 휴머노이드 넥스테이지.
한편, 일본 정부는 “인터넷에 이어 로봇이 산업혁명을 이끌 것”으로 예측하고, 로봇산업을 집중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5월 6일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회의 연설에서 “로봇에 의한 새로운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며 “일본이 로봇을 활용하는 선도국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로봇산업의 규모를 키워 경제 부활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2012년 기준, 일본 로봇 시장의 규모는 약 8조 6000억 원. 대부분이 제조용 로봇이다. 이에 아베 총리는 향후 서비스용 로봇산업의 발전을 지원하고, 2020년에는 로봇 시장 규모를 약 24조원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는 간병인이 환자를 쉽게 부축할 수 있도록 ‘입는 로봇’의 가격을 낮추고, 고령 농민들의 일손을 덜어주는 로봇을 개발한다. 현재 일본은 심각한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인해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 로봇의 대중화는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런데 ‘인간형 로봇’ 개발에 열심인 것은 비단 일본만은 아니라고 한다. 최근 <아사히신문>은 “미국 서해안 실리콘밸리가 로봇 기술에 대한 열기로 가득하다”고 보도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은 미국의 세계적인 IT기업 구글이다. 구글은 지난해 로봇 벤처기업 8곳을 한꺼번에 인수해 화제를 불러 모았었다.
구글이 인수한 8개사 중 특히 눈에 띄는 곳은 일본의 벤처기업 ‘샤프트’다. 샤프트의 휴머노이드는 미국 국방부가 주최한 로봇경진대회에서 사람처럼 자동차를 운전하고, 장애물을 제거하는 등의 묘기를 선보이며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샤프트 인수 소식에 가장 큰 충격에 빠진 건 일본 경제산업성이다. 미국 정부와 로봇기술 협력을 심화하려던 차에 일본의 전도유망한 기업이 미국으로 유출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구글은 샤프트 말고도 현재 일본 대학을 돌아다니며 벤처기업 인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벌써 경쟁력 있는 기술자를 포함해 도쿄대학 로봇 연구실 등에서 10명이 구글로 이직한 상태”라고 전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