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고기와 아이’ | ||
이 사건이 특히 주목받는 것은 이 화백의 유족들이 ‘진품’이라며 경매에 내놓은 작품을 전문가집단인 감정협회가 ‘위작’ 판정을 내렸다는 점 때문이다. 이 화백의 유족들은 “가족들이 50여년간 보관해온 것”이라며 여전히 진품임을 주장하고 있고, 감정협회 역시 “필선 등으로 보아 위작이 분명하다”고 맞서고 있어 결국 ‘진실’은 법정에서나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과연 진품보다 더 진품 같은 ‘짝퉁’이 존재하는 걸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미술계의 위작 실태를 살펴본다.
감정전문가들에 따르면 위작은 유형별로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위작의 대상작품을 그대로 모사하는 방법인 ‘완전모작’. 완전모작은 ‘위작전문가’들에게는 일종의 훈련과정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실제 시중에 완전모작한 위작도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최근 슬라이드와 빔프로젝터 등 영상매체의 발달로 더욱 쉽게 완전모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두 번째는 ‘부분모작’. 대상작품을 상당부분 모작하지만 부분적으로 자신의 창작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방법이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상당 수준의 기술이 필요한 ‘모자익기법 모작’과 ‘창작적 위작’이 있다. 모자익기법 모작은 위작 대상작가의 여러 작품을 한 곳에 적당히 배치해 각 부분만을 모사하는 방법이다. 물론 상당한 수준의 안목과 위작 기술이 필요해 이 단계부터는 ‘전문가’로 불린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창작적 위작’이란 말 그대로 위작자가 위작 대상작가의 화풍 그대로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다. 이는 위작자가 대상작가의 표현기법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연습한 뒤 위작자 스스로 창작적인 구도와 소재를 개발해 제작하는 방식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식견을 갖춘 전문가들도 ‘새로 발굴된 아무개 화백의 작품’으로 오해할 정도라고.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미술시장이 형성된 70년대부터 위작은 존재해왔다. 위작의 주 대상작가들도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이상범 등 인기 작가들로 소위 ‘돈이 될 만한’ 작가나 작품엔 늘 위작이 따라다녔다. 특히 작고한 인기 작가일수록 위작이 많은 편이라는 게 감정가들의 얘기다.
위작의 전통과 역사가 오래된 한국화 분야에서는 그 기법과 수준이 정교해 원작 뺨치는 ‘짝퉁’이 적지 않다고 한다. 예전에는 한지에 그림을 그린 뒤 젖은 채로 뜨거운 장판 밑에 두어 곰팡이가 피면 이를 다시 지워내 연대감 있어 보이게 하는 식으로 위작을 만들었다. 그러나 위작의 기술도 날로 발전하고 분야도 세분화돼 현재는 한 작가의 그림, 글씨, 낙관 등 각 부분만을 따로 연구하는 ‘전문가’들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경희대 최병식 교수(50·미술평론·감정학)는 “최근 들어 위작에 갖은 방법들이 동원돼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대표적으로 원작의 낙관을 동판으로 떠서 사용하거나 작가의 드로잉을 사다 그 위에 유화를 그리는 방법이 있다. 또 유명작가의 작품을 슬라이드나 빔프로젝터로 실물과 똑같은 크기로 만들어 그대로 복사한 듯한 위작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전했다.
그럼 위작을 만드는 사람들의 수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감정협회의 한 관계자는 “위작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과정이 워낙 은밀하게 진행돼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30여 명의 수준급 위작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중에는 미전에서 수상하는 등 상당한 수준의 실력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다만 그들에게는 작가로서의 지명도와 창작 능력이 없을 뿐이라는 것이다.
유명 작가의 일부 제자가 위작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작가에게 사사를 받은 제자들이 스승의 터치, 선, 색감 등을 그대로 베끼거나 스승의 드로잉을 구해 자신이 색깔을 입히는 방식으로 위작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위작들이 전문 감정가의 눈을 속이기는 쉽지 않다. 감정가들은 전문가로서의 안목, 적외선 검사나 탄소측정 등의 과학적 기법 등을 통해 위작 여부를 판별한다. 한국화의 경우 제작된 시기가 중요한 감정요소이므로 제작년도를 추정하기 위해 탄소 측정, 적외선 촬영 등의 과학적 기법이 주로 사용된다. 그 외에도 작품이 탄생한 시기의 시대풍격과 작가의 개인풍격으로 감정하기도 한다.
현대화의 경우 과학적 기법보다는 감정가의 안목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감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화와는 달리 현대화는 모작의 역사가 짧고 모작의 수법도 서툰 편이라고 한다. 해당 작가의 삶과 작품론, 평소의 다양한 습관까지도 면밀히 파악된 경우에는 감정가가 그림을 한번 보는 것만으로 정확한 감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간혹 진위를 구분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등장하는데 이 경우에는 감정가들이 ‘감정불능’ 판정을 내리기도 한다. 감정불능 판정을 받은 작품이 만약 위작이라면 말 그대로 ‘진짜와 똑같은 가짜’인 셈이다.
인사동에서 만난 한 감정가는 “최근 들어 미술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미술 애호가들이 많아지면서 위작이 많이 유통되는 것 같다”면서 “일부 수요자들은 위작인 것을 알면서도 잘 그린 가짜 하나를 가지고 싶어 싼 값에 사들이는 경우도 있다. 명품을 갖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싼 값에 ‘짝퉁’을 구입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라고 말했다. 이 감정가는 공인된 기관을 통해 미술품을 구입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며 주위에 ‘이민을 간다’거나 ‘급전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미술품을 내놓는 사람들은 일단 의심해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