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과 배우가 연인 사이로 찍은 영화는 그 호흡이 남다르다. 내가 최고로 꼽는 <만추> 뒤에는 A 감독과 여주인공 B의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A 감독과 B는 서로 반했다. A 감독은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남자도 반할만한 카리스마와 매력을 지녔다. 그는 배우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었다.”
여배우 B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말했다.
“B는 서구적 얼굴이지만 천진난만하면서 조용한 전형적 한국 여인이었다. 약간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음성도 매력을 더했다. 여배우 중 노래를 가장 잘 불렀다.”
영화 <만추>를 찍으며 사랑에 빠진 남자 감독과 여배우, 당연히 최근 결혼을 발표한 기태용 감독과 탕웨이가 떠오르지만 사실 그 주인공은 이만희 감독(1931~ 1975)과 배우 문정숙(1931~2000)이다. 이젠 모두 고인이 된 이들은 영화 <만추>에서 호흡을 맞추며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이를 회상한 배우는 바로 신성일로 이 내용은 신성일의 책 <청춘은 맨발이다>에서 발췌한 것이다.
사실 이만희 감독과 문정숙은 영화 <만추>에서 처음 만난 것은 아니다. 문정숙은 이만희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라며 수많은 영화를 함께 찍었다. 그리고 이들이 사랑에 빠진 시점은 영화 <만추>를 찍던 1966년이 아닌 1964년 즈음이라고 한다.
역시 신성일의 증언이다. 다음은 신성일이 MBC <일요인터뷰> 출연 당시 들려준 얘기다.
“이 감독과 문정숙을 가장 잘 아는 배우 이해룡은 두 사람이 <검은 머리>(64)를 통해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추측한다. 아마도 이 감독이 그 영화에서 문정숙에게 푹 빠진 것으로 본다.”
문제는 당시 이들에게 각각 배우자와 아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신성일의 회고다.
“일각에선 두 사람의 관계를 좋지 않게 보았지만, 아무도 두 사람을 말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동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데이트할 장소가 마땅히 없었다. 그들은 당시 뚝섬에 신혼살림을 차린 배우 이해룡의 집을 빌려 간간이 데이트했다.”
이후 문정숙은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와 함께 살았다. 이혼했다고 이만희 감독과 함께 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정숙은 이만희 감독과의 사랑보다는 어머니로서의 책임감을 선택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고 1978년 이만희 감독이 간질환으로 사망한다. 신성일은 이들의 관계에 대해 아내 엄앵란의 입을 빌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 표현했다.
“문정숙과 누구보다 친했던 엄앵란은 그들을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영화 <만추>의 원작 감독과 배우인 이만희 감독과 문정숙의 사랑은 슬픈 결말에 이르고 만다. 이후 <만추>응 세 차례 리메이크 된다. 문정숙의 역할은 김지미, 김혜자로 이어졌고 최근작에선 홍콩 배우 탕웨이가 맡았다.
원작과 달리 배경을 미국 시애틀로 바꾸면서 새로운 배경과 시선으로 완성된 2010년작 <만추>는 다시 감독과 여배우의 사랑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가 만났고 이들은 결혼을 한다. 한국 영화사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프린트와 네거필름 모두 사라져버려 다시는 볼 수 없는 영화가 된 1966년 작 <만추>가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이 된 데 반해 미국 시애틀로 배경을 옮겨 촬영된 2010년 작 <만추>는 현실에서 ‘국경을 초월한 아름다운 사랑’으로 완성됐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