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전 장관
원외 거물급 인사들은 하나같이 손사래를 친다. 수원 지역 출마를 시도했던 나경원 전 의원은 결국 재보선과 7·14 전당대회 모두 불출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동작을 출마설이 반짝 떠올랐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 역시 7월 말 아프리카 르완다로 자문활동에 나선다. 김황식 전 총리는 국회 입성보다 주중대사 같은 자리를 원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직 불씨가 살아있는 카드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임태희 전 노동부 장관 정도다. 당 지도부에서는 김 전 지사를 이번 재보선 핵심 지역인 서울 동작을에 ‘선 전략공천, 후 설득’ 중이다. 선거를 총괄하는 윤상현 사무총장은 지난 3일 “스토킹을 해서라고 김 전 지사를 잡을 것”이라며 김 전 지사를 만나러 대구까지 내려가 ‘뻗치기’를 시도했다. 이날 만남에서 김 전 지사는 “비단길이라도 안 가겠다”며 거듭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현재 여권에서는 김 전 지사의 출마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고 있다. 불출마 의지가 강하더라도 당의 전방위 ‘읍소’에 결국 나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지난 1일 평택을 공천에서 떨어진 임태희 전 장관은 당의 수원정(영통구) 출마 제의를 받고 지난 6일 장고 끝에 수락했다. 윤상현 사무총장은 “수원정은 경제 전문가가 필요한 경제 선거구”라며 “임태희 후보만 한 새누리당 간판 스타적 경제 전문가는 없다”라며 한껏 추켜세웠다.
출마 당사자 입장에서는 당 지도부의 이 같은 ‘읍소’의 진짜 속내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동작을이나 수원정 모두 여당이 이기기 결코 쉽지 않은 지역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앞서의 새누리당 당직자는 “솔직히 윤 사무총장이 기자들까지 대동하고 김 전 지사를 쫓아 다닌 것은 ‘누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는 식이나 다름없었다. 조용히 협상해야지, 나가서 지면 본인 정치 인생에 치명타를 입는 선거인데, 당 지도부에서는 ‘당신이 안 나와서 졌다’는 식으로 패배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그는 임태희 전 장관의 수원정 차출에 관해서도 “수원정은 당력을 총동원해도 이기기가 결코 쉽지 않은 지역이다. 당 지도부 진짜 속내가 뭐냐는 이야기도 있다”라며 “비박 진영에서는 애초에 임태희 전 실장이 처음에 지원했던 평택을 공천을 안 주는 이유(도농복합지역이라 지역일꾼 대상 심사)였다면, 마찬가지로 서청원 의원도 안 돼야 했던 것 아니냐는 냉철한 이야기도 들린다”라고 덧붙였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김문수 전 지사를 동작을에 ‘선 전략공천, 후 설득’ 중이다.
반면 야권은 주요 재보선 지역구에 후보가 차고 넘쳐서 고역이다. 바깥에는 전략공천을 바라는 거물급 정치인들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지난 3일 새정치민주연합은 최고위원회를 통해 서울 동작을, 경기 수원 3곳(을·병·정), 광주 광산을 선거구를 전략공천 하기로 의결하고 첫 번째 전략공천으로 서울 동작을에 박원순 서울시장 최측근인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선택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공천이었다. 당초 기동민 전 부시장은 광주 광산을에 공천을 신청한 뒤 3일 오전까지도 광주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설상가상 이날 박원순 서울시장은 광주 지역을 방문하면서 우회적으로 기 전 부시장 선거 지원에 나섰다. 동작을은 안철수 공동대표 최측근인 금태섭 전 대변인을 비롯해 허동준 동작을 지역위원장, 장진영 변호사 등 이미 6명이 공천을 신청한 상태였지만 이들은 당 지도부의 느닷없는 ‘와일드카드’로 ‘한강 오리알’이 됐다.
이 가운데 허동준 지역위원장은 “패륜 정당”이라며 극렬 반발하며 무소속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에서는 “기 전 부시장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봤다”는 점을 공천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당 깊숙한 곳에서는 야권의 고질적인 계파 간 다툼, 그리고 당 지도부의 여론조사 맹신 등이 빚은 촌극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특히 희비가 엇갈린 것은 공천을 앞둔 지난 6월 마지막 주말 사이 비공개로 실시된 여론조사였다고 한다. 새정치연합 한 핵심 관계자는 “지난 주말 당 지도부에서 비공개 여론조사를 돌린 결과, 동작을은 김문수 지사와의 양자 대결에서 모든 공천 신청자들이 지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어느 후보는 김 전 지사와 40%포인트까지 차이가 나 지도부에서 크게 당황했다”며 “당 지도부에서는 발상의 전환으로 결국 ‘김문수 대 박원순’이라는 대결 구도를 짠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론조사업체 대표는 “새정치연합 전략가들이 언젠가부터 비공개 여론조사 데이터를 신봉하는 경향이 생겼다”면서 “특정 지역구에 한정한 여론조사는 정교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동작에 어떤 야권 후보를 붙여도 김문수 전 지사에게 인지도로 밀릴 수밖에 없다. 가상대결이 아니라 야권 후보들 가운데 누가 적합했는가를 기준으로 여론청취 및 심사를 했어야 했다”라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허동준 동작을 지역위원장이 지난 3일 기동민 전 정무부시장(작은 사진)을 전략공천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한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라며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안철수 대표 측은 해당 여론조사 수치를 확인한 이후 ‘금태섭 카드’를 접은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여론조사기관 대표는 “안철수 대표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자기 사람을 공천했다가 졌을 경우 그 후폭풍이 감당이 안 됐을 것이다. 자기 식구를 공천함으로써 다른 계파로부터 지역구 배분 요구와도 직면했을 것”이라며 “여기에 정의당의 노회찬 전 의원 출마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던 것 같다. 안 대표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번에 금태섭 전 대변인이나 이태규 사무부총장을 한 차례 물리면서 ‘양보의 정치인’이라는 프레임을 강화하려는 시도도 읽힌다”라고 풀이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이번 ‘기동민 카드’는 안철수 대표의 ‘중진급 선당후사’ 요구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뜻을 보탠 결과물이라는 측면에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앞서의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기동민 전 부시장은 박원순 시장의 대리인 성격으로 나오는 만큼 낙천자들이 무소속으로 나오는 것을 방지하는 묘책이기도 하다”라며 “특히 기 전 부시장은 허동준 지역위원장과 ‘20년 친구’ 사이다. 금태섭 전 대변인을 공천하는 것보다야 이쪽이 훨씬 무소속 출마 저지가 쉽다. 여기서 원칙이 서면 다른 지역에서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새정치연합 지도부에서는 이번 기동민 전략공천을 계기로 남은 지역구 역시 ‘중진 배제 및 신진세력 기용’이라는 원칙을 더욱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내심 동작을 전략공천을 바랐던 정동영 상임고문은 출마 자체가 불투명해졌고, 광주 광산을 역시 신진 정치인을 기용하려는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의 의지가 강해 자연스럽게 천정배 전 법무장관이 배제되는 분위기다. 벌써 이 지역은 김한길 대표와 가까운 박광온 대변인과 지난 대선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중심에 섰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다만 김포에 직접 공천을 신청한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경선에 참여하면서 일단 ‘생존’했고, 손학규 상임고문과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의 경우 수원 지역구 전략공천이 유력시되고 있다. 손 고문의 한 측근은 “수원병에서 나경원 전 의원과 싸우든, 수원정에서 임태희 전 장관과 싸우든 각오가 돼 있다”라며 “본인 공천 여부를 당 지도부에 위임한 만큼 다른 전략공천지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손 고문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