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대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의 피해자 김태완 군(당시 6세)의 부모가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수사를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7월 4일 김 군의 부모는 대구지검에 용의자를 상대로 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공소시효 만료가 단 3일 남은 시점이었다. 대구지검은 이에 불기소처분을 내렸고, 김 군의 부모는 곧바로 대구고법에 재정신청을 내 공소시효가 극적으로 정지됐다. 누가 어떤 이유로 6살 태완이에게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열렸다.
30도를 웃도는 기온도 공소시효 만료를 마주한 태완이 어머니 박정숙 씨(50)의 애끓는 모정에 비할 바 아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이른바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 재수사에 나섰던 대구동부경찰서는 지난 2일 오후 이 사건을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공소시효를 5일 남긴 시점이었다.
태완이 어머니 박 씨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1인 시위였다. 박 씨는 “1인 시위를 하려고 한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지난 4일에는 태완이의 아버지가 태완이의 생전 진술과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유가족들이 유력 용의자로 지목해온 A 씨를 대구지검에 고소했다. 대구지검은 용의자에 대해 제출한 고소장에 혐의 없다는 불기소 처분을 내렸지만 태완 군의 부모는 곧바로 대구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내 공소시효가 정지됐다.
재정신청이 접수될 경우 고등법원은 3개월 이내에 해당 사건에 대한 공소제기 또는 기각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는 중지된다. 결국 최대 90일까지 공소시효를 벌게 된 것이다. 영구미제로 남을 뻔한 이번 사건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태완이는 씩씩하고 똘똘한 아이였다. 그랬던 태완이는 이유도 모른 채 누군가 부은 황산에 온몸에 3도 화상을 입고 시력을 잃어야 했다. 생존율은 5%. 온몸을 붕대로 감은 어린 태완이에게 병원치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태완이는 49일간 기적적으로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다. 병원에서도 의지가 강한 아이라고 했다. 병상에서도 집에 혼자 있을 형을 걱정하고 어머니의 밥을 챙기는 태완이를 보며 박 씨는 혼자 가슴을 치며 울음을 삼켜야 했다.
고 김태완 군
태완이는 온 몸을 붕대로 휘감고 있었다. 눈과 코, 입 안까지 모두 녹아내려 호흡도 힘겨운 상황이었다. 말은 조금씩 했지만 혀는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태완이가 힘겨운 치료를 받으면서도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박 씨는 독해 질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병상의 아이가 힘겹게 말하는 것을 어르고 달래면서 태완이의 육성을 기록했다. 하지만 사건발생 49일 만인 그해 7월 8일 태완이는 눈을 감고 말았다.
병상에서 태완이는 일관되게 한 사람을 봤고, 목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이웃 아저씨 A 씨였다. 초동수사에서는 끝내 범인을 검거하지 못했다.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이웃 아저씨 A 씨가 황산을 구입한 사실이 있는지, 집에 황산을 은닉하고 있는지 등의 수사도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A 씨를 사건현장에서 목격했다는 태완이 친구의 진술도 묵살됐다. 언어장애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사건발생 전 골목에서 A 씨를 봤다는 목격자가 나타났지만 이 마저도 A 씨의 알리바이가 있다는 이유로 묻혀버렸다. 2005년에는 수사팀도 해체됐다.
하지만 박 씨는 포기할 수 없었다. 14년이 지난 지난해 11월 대구 참여연대와 변호사 단체가 대구지검에 재수사를 청원했다. 대구동부경찰서는 7개월간 재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재수사는 제자리 걸음이었다.
박 씨는 “재수사 청원 할 때 태완이가 말한 사람이 범인이 아니라면, 아닌 것을 입증해달라 했다”며 “우리가 생각하는 미비한 점, 의문점들이 재수사를 하면서 하나도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고 털어놨다. 공소시효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박 씨에게 하루는 1초처럼 흘러갔다.
태완이의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태완이를 어르고 달래며 기록해놓은 육성녹음 분석을 위해 직접 전문가들을 찾았다. 그리고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태완이의 음성분석을 위해 모인 12명의 전문가들은 태완이가 일관되게 동네 한 주민을 지목하는 등 태완이의 진술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음성분석 전문가로 참여했던 경기대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용의자 A씨의 진술에 따르면 사실 자신은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라며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누구의 목소리를 들었느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태완이는 ‘눈이 안보였지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당시에 용의자 A의 목소리를 제일 먼저 들었다’고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완이는 용의자 A 씨를 처음에 봤다고 일관되게 말했지만, A 씨는 처음에 자신은 그 장소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완이와 용의자 A 씨의 진술 간에 상이한 점이 발견된 것이다.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 관련 MBC ‘시사매거진 2580’ 방송화면 캡처.
하지만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재수사에서 태완이의 증언은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99년 당시 현장을 목격했지만 언어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진술이 묵살된 태완이 친구와 사건 직전 한 남자를 목격한 또 한명의 다른 목격자의 진술도 마찬가지였다.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미비한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검토했다. (A 씨에 대한) 심증은 있어도 아무 증거가 없었다”고 말했다.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태완이의 음성 분석결과 내용 중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며 “태완이는 일관되게 한 사람을 언급했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봤다. 이것이 핵심이었지만 재수사 과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은 공소시효 5일을 남겨두고 ‘기소중지’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은 그렇게 또 하나의 ‘살인의 추억’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태완이 아버지가 지난 4일 용의자 A 씨를 검찰에 고소하고, 재정신청을 내면서 극적으로 공소시효가 중지됐다.
일단 유가족은 법원의 공소시효 중지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끝까지 진실을 밝히는 데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박 씨는 “태완이한테 ‘나쁜 짓 한 사람 잡아서 혼내주고 사과하게 해줄게’라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공소시효 중지로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한 마지막 반전의 계기가 마련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재 점화된 공소시효 제도는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또 다시 불거진 공소시효 논란 살인범에 면죄부? 유가족 어찌 살아가라고… 이 때문에 공소시효 제도에 대한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지고 있다. 태완이의 가족이 참담한 심정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국가가 피의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과연 합당하느냐는 지적이다. 공소시효는 어떤 범죄가 발생한 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형벌을 할 수 없게 하는 제도다. 공소시효 제도의 목적은 시간경과에 따라 징벌의 사회적 효과가 줄어들고, 증거확보가 어려워지며, 이미 범죄자가 도피 중에 상당한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도 감안된다. 국내에서도 공소시효제도 유지에 대한 비판이 일자 2007년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를 15년에서 25년으로 늘렸다. 하지만 이는 2007년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외국의 경우 살인 등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애는 추세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살인죄에 관한 공소시효를 없애는 주가 많다. 영국과 독일의 경우 중대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없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에도 2004년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15년에서 25년으로 늘렸다가 2010년 4월에는 살인과 강도살인 등 12가지 중대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했다. 공소시효가 끝난 살인범들이 잇따라 자수하는 황당한 경우가 벌어진 것이 계기가 된 것이다. 이와 관련, 김익태 변호사는 “공소시효의 본질은 훼손하지 않으면서 너무 교묘하고 치밀한, 하지만 너무 중대한 그런 범죄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