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민들과 만나는 모습.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빈과 겸손의 대명사로 통한다. 로이터/뉴시스
그날, 성 베드로 광장은 우산을 쓴 사람들로 가득했다. 비가 오는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의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이윽고 시스티나 성당의 청동 굴뚝에서 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하얀 연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군중들은 환호했다. 새로운 교황이 누구인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던 순간이었다.
“매우 기쁜 소식을 발표하겠습니다. 새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 지극히 탁월하고 공경 받으실 분, 거룩한 로마 교회의 추기경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이십니다. 이 분은 자신을 프란치스코라 이름 지었습니다.”
장루이 토랑 선임 추기경의 발표가 이어지자 사람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일부 사람들은 낯선 교황의 이름에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까지 그래왔듯 이탈리아계 교황을 예상했지만 새로운 교황은 저 멀리 떨어진 남반구, 아르헨티나에서 온 사람이었다. 저자인 안드레아 토르니엘리 바티칸 전문 기자는 당시 상황을 보며 “‘요한 바오로 2세’가 새 교황으로 추대됐던 1978년 10월 16일 저녁 때와 비슷하다”고 언급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폴란드 출생)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비이탈리아계의 생소한 교황이었다. 그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지난 3월 13일은 바티칸의 변화와 전환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날로 여겨졌다.
‘프란치스코’ 역시 공식 교황명으로는 처음 사용되는 이름이다. 이탈리아 중부 아시시에서 출생한 프란치스코 성인은 ‘청빈과 겸손, 헌신의 삶’의 대명사로 꼽힌다. 취임 직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통상 교황이 입는 모피가 달린 붉은 예복이나 어깨에 두르는 영대를 생략했다. 가슴의 십자가도 금이나 보석이 아닌 평범한 금속으로 만든 십자가를 멨다. 경호 인력 역시 최소화했다. 청빈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그대로 본받는 셈이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바티칸 대변인은 “확실히 이번 교황은 바티칸 보안에 전례 없는 문제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보안 관계자들은 교황을 잘 보필하고, 그의 스타일에 맞춰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며 새롭게 등장한 교황의 스타일을 언급했다.
<따뜻한 리더, 교황 프란치스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과거 성장과정들도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교황이 태어나기(1936년생) 전인 1929년 그의 가족들은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떠나왔다. 교황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1932년 대공황으로 모든 것을 잃었어요. 가족 묏자리까지 팔아야 했지요. 종조부님이 사장이었는데 암으로 돌아가시고, 둘째 할아버지께서 사업을 계속해 재건에 성공하셨죠. 막내 할아버지는 브라질로 가셨고요. 할아버지는 2000페소를 대출해 가게를 사셨어요. 아버지는 도로 포장재 회사에서 회계 담당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배달하고 집안일을 도왔죠. 이것이 아마도 우리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교황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뜯어진 셔츠, 닳아빠진 바지로 옷을 만들었다. 베르고글리오(교황의 본명)의 친동생들은 교황의 검소한 정신이 여기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평범했던 베르고글리오가 신앙적 영감을 얻은 시점은 그가 17세 되던 해다. 봄이 막 시작된 시기에 친구들과 ‘학생의 날’ 기념 준비를 하던 베르고글리오는 별다른 목적 없이 간 ‘산호세 데 플로레스’의 본당 교회에서 한 사제를 만나게 된다. 사제에게 고해를 받던 베르고글리오는 종교적 소명과 깊은 영성을 느끼게 된다. 그 자리에서 사제가 되고자 결심한 베르고글리오는 ‘학생의 날’에 참석하기 위해 기차역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순간을 교황은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꿔 놨다. 그건 무방비 상태에서 깜짝 놀란 듯한 느낌이었다”고 회상한다.
2000년 4월 부에노스아이레스 빈민가에서 부활절을 맞아 그곳 아이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은 지난 5월 이스라엘을 방문한 교황이 유대교 랍비·무슬림 지도자와 함께 포옹하는 모습.
책에 숨겨진 한 가지 에피소드는 베르고글리오가 당시 마음에 품고 있던 한 젊은 여성에게 청혼을 하려던 시기에 이러한 깨달음을 얻어 청혼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베르고글리오의 여동생은 “9월 21일 봄날, 오빠가 그녀에게 고백하려 했다. 이 이야기를 계속하면 오빠는 제 얼굴을 보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깜짝 폭로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사제가 된 베르고글리오는 2001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선임된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베르고글리오는 가장 인기가 많은 대주교였다. 베르고글리오는 언제나 신부들을 빈민촌에 보내 훈련시키고 지원하고 독려했다. 2008년 성주간 때는 오가르 데크리스토 마약 재활 센터에서 젊은이 12명의 발을 씻겨주었다. 그만큼 베르고글리오는 빈민촌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봉장 역할을 했다.
2013년 3월 13일. 드디어 베르고글리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되어 바티칸에 입성한다. 저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해를 구분 짓는 특징으로 그의 겸손함과 친밀함, 기독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자세, 적극적인 복음화를 꼽는다. 그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의 철학이 지지부진한 바티칸 개혁의 시발점이 되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도 높다. 2013년 5월 성령강림절 전야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밖으로 나오면 가난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추위에 얼어 죽은 여인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뉴스도 아니지요.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정말 심각해요! 우리는 이런 일을 도저히 견딜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렇지요. 우리는 냉정한 기독교인,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차를 마시며 신학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잘난 기독교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안 됩니다. 용감한 기독교인이 되어 그리스도의 살로 이루어진 백성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외침은 오늘날 교계가 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는 듯하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프란치스코 신드롬 왜? 교황석 점령 아이 향해 ‘아빠 미소’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포춘>은 ‘2013년 올해의 인물’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정하는 등 그의 영향력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교황청 난입 아이가 교황석에 앉아 태연히 연설을 듣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민 교황’으로도 불리는데 대표적으로 지난해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가정의 날 축하 행사’의 일화가 회자된다. 당시 교황석에 앉아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다가가자 교황은 귀엽다는 듯이 남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무대에서 한동안 내려가지 않던 남자아이는 급기야 교황이 연설을 하는 사이 교황석에 태연히 앉아 연설을 듣는다. 교황은 아이의 교황석 ‘점령’을 그대로 둔다. 그 모습에 많은 군중들은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 이후 아픈 사람과 장애인들이 교황이 가장 잘 보이는 좌석에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바티칸에서는 어떤 종교를 가졌는가에 상관없이 교황에 대한 인기가 하늘을 치솟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국 각국에서 교황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로 인해 바티칸 주변 상점들은 덩달아 매출이 오르는 특수를 누리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파격적인 행보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최근 마피아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 대표적이다. 교황은 “악행을 중단하지 않으면 마피아는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마피아가 교황을 노리고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교황은 교회를 개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을 마피아로 지목하고 있어 당분한 마피아와 맞서는 모습을 보일 예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피 묻은 돈은 받을 수 없다”며 마약 거래나 돈 세탁 등으로 조성된 자금이 바티칸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지도 보이고 있다. ‘서민 교황’과 ‘정의로운 교황’의 모습을 지닌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 세계인들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환] |
한국 방문 일정 가장 작은 국산차 타고 위안부 할머니 만난다 지난달 30일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서울대교구청 별관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예정대로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한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은 잇따라 대외활동을 취소하는 등 ‘건강이상설’이 불거져 방한이 취소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준비위 측은 “이상 징후가 있으면 교황청에서 바로 메시지가 오겠지만 연락받은 게 전혀 없다”며 교황의 방한 일정에 별 다른 이상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에 있어서 평소 지향하는 것처럼 꼭 필요한 행사만 중점적으로 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동을 할 때는 헬기를 탈 것으로 전해졌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장 작은 국산차를 이용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허영엽 신부는 “교통수단은 교황청의 요구로 경호를 맡은 정부와 협의해 정한다”며 “바티칸에서 차량을 가져오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비용 문제도 있어 특별히 국산차를 요구한 교황의 뜻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8월 1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에 도착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울 종로의 주한 교황 대사관에 여장을 풀 예정이다. 정부는 교황에게 국빈 방문에 준하는 예우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교황은 청와대를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하고 주요 공직자들을 만나 연설을 할 계획이다. 이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한국 주교단과 공식적으로 만날 예정이다. 방한 둘째 날인 15일에는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다. 특히 이 미사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초대돼 교황이 어떤 위로의 메시지를 보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오후에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한 아시아 청년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친교를 나눈다. 이 자리에는 교구장 주교를 포함해 20명의 아시아 젊은이들이 참석한다. 16일 오후에는 충북 음성 꽃동네 희망의 집으로 이동해 이곳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을 만나 위로한다. 교황은 이곳에서 장애인과의 만남을 갖고 생명을 위한 기도를 할 예정이다. 이어 한국 천주교 수도자들과의 만남과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지도자들과의 만남도 가질 계획이다. 이어 17일에는 충남 서산 해미순교성지(대전교구)에서 아시아 주교들과 오찬을 같이 한 뒤, 오후에 해미읍성에서 거행되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할 예정이다. 방한 마지막 날인 18일에는 서울대교구청에서 한국 종교 지도자들과 만난다. 염수정 추기경은 교황 방한에 앞서 7대 종단 지도자들과 오찬을 갖고, 교황과의 만남과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초청했다. 종교 지도자들은 지난 9일 교황 방한 환영 메시지를 발표하는 등 화합의 모습을 보였다. 또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초청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교황은 미사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황의 이번 방한은 지난 1984년과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방한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아시아 국가로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는 국가는 한국이 최초다. 그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아시아 각국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