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홈쇼핑 납품·횡령 비리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사진은 2013 대한민국 행복교육기부박람회. 사진출처=롯데홈쇼핑
검찰은 지난 6월 23일 롯데홈쇼핑 납품·횡령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 신헌 전 롯데쇼핑 대표 등 롯데홈쇼핑 임직원 7명을 구속 기소하고 전·현직 상품기획자(MD)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또 이들의 비리에 가담한 중개·납품업체 대표 14명도 각각 구속·불구속·약식 기소했다.
검찰 수사 결과 롯데홈쇼핑의 비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수법이 다양했으며 말단부터 임원까지 온통 비리투성이었다. 무엇보다 대표이사가 비리의 맨 앞에 있었다는 사실이 할 말을 잃게 했다. 구속된 신헌 전 대표는 롯데 유통부문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런 인물조차 비리를 저지르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것.
재계 5위 그룹에다 유통공룡으로 통하는 롯데에서 온갖 악랄한 수법을 동원한 비리와 갑의 횡포가 드러나자 비난 여론이 거세다. 가뜩이나 롯데마트 롯데슈퍼 세븐일레븐 등 유통부문에서 롯데는 말썽이 잦은 터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이튿날인 24일 그룹 사장단회의에서 “롯데홈쇼핑 사건은 충격과 실망 그 자체였다”며 “온 정성을 다해 쌓아왔던 공든 탑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개탄했다. 그동안 공들여왔던 롯데의 이미지와 홈쇼핑에 대한 애착·정성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는 의미다.
신 회장으로서는 그럴 만도 했다. 신 회장은 2004년부터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면서 인수·합병(M&A)을 주도하며 몸집을 불려왔다. 지난 10년간 신 회장은 약 30곳을 인수하며 롯데그룹 자산을 3.5배나 불렸다. 덕분에 2004년 재계 7위였던 롯데는 10년 후인 현재 재계 5위로 올라섰다. 신 회장이 추진한 M&A 중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바로 2006년 인수한 롯데홈쇼핑(옛 우리홈쇼핑)이다. 인수금액도 4667억 원으로 손에 꼽을 만한 거액이었다.
일부 롯데홈쇼핑 임직원들은 그런 기대를 철저하게 짓밟았다. 지난 3월 17일 롯데홈쇼핑 사무실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3개월에 걸쳐 진행된 검찰 수사 결과, 롯데홈쇼핑 임직원들이 벌인 ‘갑질’과 비리는 어마어마했다.
기소된 롯데홈쇼핑 임직원들은 상품 론칭, 방송 편성과 횟수 등 우월적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중개·납품업체 관계자들로부터 금품을 건네받았다. 이 가운데는 이혼한 전처의 계좌로 매달 300만 원씩 부칠 것을 요구한 임원도 있었다. 생활·패션부문장 등 홈쇼핑 요직을 거친 이 아무개 씨는 2009년 8월부터 2012년 말까지 무려 3년 넘게 2곳의 납품업체로부터 이혼한 전처의 계좌로 매달 300만 원을 입금하도록 했다. 본인이 지급해야 할 전처의 생활비를 납품업체에 떠안긴 것. 특히 이 씨는 제 날짜에 입금이 되지 않으면 업체들에 직접 전화를 걸어 “빨리 입금하라”며 독촉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버지의 도박 빚을 대신 갚으라고 한 사람도 있다. MD로 일하던 정 아무개 씨는 건강식품 구매담당자로 일하던 2007년 7월부터 바이오업체 박 아무개 대표에게 “아버지의 도박 빚을 해결해달라”면서 세 차례에 걸쳐 1억 5000만 원을 뜯어냈다. 정 씨는 또 방송시간 편성을 유리하게 해준다는 조건으로 박 대표에게 2800만 원 상당의 승용차를 받는 등 모두 2억 28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KBS 뉴스 캡처
팀장급 수석MD였던 하 아무개 씨는 납품 중개업자로부터 주식 정보를 받아 투자했지만 손실을 보자 정보를 준 중개업자에게 되레 비싼 값에 주식을 넘겨 수천만 원을 챙기기도 했다. 하 씨는 또 요리방송 출연 청탁과 함께 요리사 김 아무개 씨에게 1500만 원을 받았으며 납품업체 부인 명의 통장을 건네받는 방식으로도 뇌물을 받는 등 모두 1억 4000만여 원을 챙겼다. 하 씨는 심지어 뇌물수수 사실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내연녀의 동생 계좌로 돈을 받기도 했다. 말단 사원인 이 아무개 씨마저 1400만 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이쯤 되면 롯데홈쇼핑 내에서 이 같은 일이 이미 일상화돼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비리의 정점은 신헌 전 대표다. 그는 롯데쇼핑 상품본부장 시절부터 한 패션의류업체 대표로부터 꾸준히 돈을 받아왔다. 지난 2월까지 신 전 대표가 패션업체 대표에게 받은 돈은 4300만 원. 홈쇼핑 대표 재직 시절에는 한 주방업체로부터 7000만 원을 받았으며 카탈로그 출판업체로부터는 2000만 원 상당의 이왈종 화가의 <제주생활의 중도>란 그림을 받았다.
신 전 대표는 비자금도 조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양평동 사옥 인테리어 공사비를 부풀려 과다 지급하고 이를 돌려받는 수법으로 3억 272만 원을 횡령했다. 이 가운데 2억 2599만 원은 개인적인 용도에 사용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롯데홈쇼핑의 비리와 횡포는 2007년부터 공공연하게 자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대표이사로 부임한 신 전 대표는 이 같은 ‘갑질’과 비리를 뿌리 뽑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웠던 것이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 서영민 부장검사는 “(밝혀진 액수는) 빙산의 일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이 각자 남모르게 받아 챙긴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검찰 수사 결과 지하주차장 등에서 직접 돈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롯데홈쇼핑의 충격적인 비리는 다른 홈쇼핑업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소비자들의 인식이 나빠지고 날카로워졌다고 토로하는 관계자가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홈쇼핑 때문에 홈쇼핑업계 전체 분위기가 망가졌다”면서 “다른 업체들까지 도매금으로 처리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신동빈 회장이 격노한 롯데 분위기도 침울하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번 일로 회장께서 상심이 매우 크다”며 “쇄신과 자정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