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주석이 4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에 참석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양국의 많은 경제인들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재벌 총수들이 시진핑 주석을 ‘알현’할 수 있는 첫 기회는 지난 3일 저녁 국빈만찬이었다. 당초 이 자리에 기업 총수들은 초청 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GS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그룹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만 초청하는 쪽으로 준비됐다. 하지만 단체장직을 겸하고 있는 인사들만 덕을 보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면서 참석 대상이 넓어졌다.
이 자리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도 참석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조율 과정에 관여했던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대기업 회장들의 경우 4일 한중 비즈니스포럼에 앞서 열리는 VIP 티타임에서 시 주석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중국 측에서 주요 경제사절단들도 참석하기로 하는 바람에 대기업 총수들이 포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벌총수들 간 가장 신경전을 벌인 자리는 4일 오후 한중 비즈니스 포럼보다 20분 전에 열리는 VIP 티타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 주석이 참석하는 자리다. 당초엔 전경련, 대한상의, 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장들과 4대 그룹 총수, 즉 정몽구 구본무 회장, 김창근 의장, 이재용 부회장만이 초청 대상이었다. 또 다시 여기서 제외된 기업들의 민원이 쏟아졌다. 한중 비즈니스포럼에서 시 주석을 만날 수는 있지만, 420명의 기업들이 운집한 자리에서 존재를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 VIP 대접을 요구하는 총수들이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결국 신동빈 롯데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서병문 비엠금속 대표 등 15명이 추가돼 최종 참석자가 확정됐다. 사실상 한중 비즈니스포럼을 준비한 코트라의 오영호 사장을 비롯해 박병원 은행연합회 회장, 신태용 수입업협회 회장, 김순옥 한국여성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도 포함됐다. 입원 중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대신해 참석하는 이재용 부회장은 회장급만 참석하는 자리에 나서기가 민망해 막판까지 고심하다 참석하는 쪽으로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은 당초 시 주석의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방문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일정은 취소됐고, 4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한 뒤 호텔 내 마련된 삼성전자 전시관에서 시 주석을 안내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시 주석이 삼성전자 사업장을 방문할 경우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막판에 취소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시 주석은 지난 2005년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을 방문한 바 있다. 2007년에는 중국 쑤저우(蘇州)에 있는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 5월 시 주석의 고향인 시안(西安)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완공됐다. 이러한 인연을 감안하면 이번 시 주석의 방한이 중국이 주력 제품의 최대 소비시장이자 생산거점으로 굳어진 경영환경에서 사업 확대 협력을 이끌어내는 최적의 기회였던 셈이다. 삼성그룹은 현재 중국 내 23개 계열사가 166개 지점·법인(고용인력 12만여 명)을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TV 등 생활가전의 최대 소비시장이어서 판매·유통망 확대를 가로막고 있는 각종 규제도 현안이다.
이처럼 재벌 총수들이 시 주석과의 만남에 목을 매는 이유는 현안 해결이다. 현대차그룹도 중국이 최대 고객이다. 중국은 지난 2009년부터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했다. 현대차는 이번 시 주석의 방한이 중국 충칭(重慶)의 제4공장 건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 지난 3월 정몽구 회장이 직접 충칭을 방문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아직 중국 정부의 최종 인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002년 중국 진출 이후 베이징(北京)에 1~3공장을 건설했으나 시장점유율이 앞서 있는 독일 폴크스바겐, 미국 GM을 추월하려면 중서부 지역 생산시설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LG그룹은 삼성전자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 시 주석의 숙소인 신라호텔에 별도의 전시관 설치를 추진해 결국 성공했다. 당초 계획에도 없었던 시 주석만을 위한 특별전시관이 2개나 생긴 것이다. LG그룹은 1993년 LG전자가 생산법인을 처음 설립한 이후 6개 계열사에서 34개 법인을 운영 중이다. LG화학이 2일 난징(南京)에 배터리 생산공장을 짓기로 하는 성과를 냈지만, LG디스플레이는 광저우(廣州)에 8세대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라인을 가동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톈진(天津)에도 자동차부품 소재공장을 세우는 등 중국 사업 확대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예 드러내놓고 시 주석과의 인연을 홍보한 기업들도 많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표적이다. 시 주석 방한에 맞춰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국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측 인사들과 탄탄한 인맥을 갖춘 재계 인사로 꼽힌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그 덕분에 VIP 티타임에 참석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박 회장은 2005년부터 한국과 중국 간의 민간 외교 사절 역할을 하는 한중우호협회 회장을 맡아왔다. 그룹 내 계열사들도 중국에서 활발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현재 중국의 생산 공장 4곳에서 연간 해외 타이어 생산량(6500만 개)의 90%를 생산하고 있다. 또 금호타이어는 중국 현지에 맞는 제품 개발을 위해 중국 톈진에 기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역시 최근 중국 선양(瀋陽)에 롯데백화점의 중국 5호점 오픈행사에 다녀왔다. 롯데그룹 7개 계열사가 참여하는 총 투자비 3조 원 규모의 롯데월드 선양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다목적의 포석으로 시 주석과의 면담 자리에 참석하려 애쓴 것이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