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탈리아 마피아 본거지 중 하나인 칼라브리아 방문 때 주변 우려에도 불구하고 무개차를 이용했다.
소탈하고 파격적인 행보로 유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스스로 ‘보통사람’임을 자처한다. 역대 교황들이 이용해온 교황 전용 방탄차를 마다하고 일반차와 무개차(오픈카)를 타고 다닌다. 강화유리로 뒤덮인 방탄차에서는 “사람들과 인사할 수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느냐”는 게 교황의 반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에서 애용하는 차는 포드의 소형차인 ‘포커스’. 해외순방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브라질 방문 때엔 현지에서 생산되는 피아트의 소형 다목적 차량(MPV) ‘아이디어’(1600㏄)를 탔고, 지난 5월 중동 순방 때도 일반 차량과 무개차를 이용했다. 얼마 전 이탈리아 마피아의 본거지 중 하나인 칼라브리아에 찾아가 “마피아에 대한 파문”을 선언했을 때조차 주변의 우려에도 전용 방탄차를 거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러한 행보는 흔히 ‘포프모빌’(popemobile)이라 불리는 교황 전용차의 개념도 바꿔놓고 있다. 포프모빌이란 교황이 공적으로 외출할 때 사용하도록 특별히 제작된 의전차량을 의미한다.
포프모빌의 효시는 1930년 다임러 벤츠가 당시 교황 비오 11세를 위해 특별히 제작해 선물한 메르세데스 벤츠 뉘르브르크라고 할 수 있다. 벤츠 최초의 8기통 모델로 4622㏄ 엔진이 장착된 이 차는 실내 바닥에 실크 양탄자가 깔리고, 천정에는 비둘기 그림으로 장식돼 있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메르세데스 벤츠는 300D 랜덜렛(뒷좌석만 가변덮개가 있는 모델), 뒷좌석에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좌석이 배치된 600 풀만 리무진, 대형 세단 300 SEL 등을 제공하며 바티칸과 인연을 이어왔다.
그렇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승차 거부’를 한 교황 전용 방탄차량은 대체 언제 등장했을까. 1981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청 앞뜰에서 교인들을 접견하던 중 저격당한 후부터였다. 교황의 안위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바티칸은 방탄차량 도입을 서둘렀다. 건강을 회복한 요한 바오로 2세는 그 이듬해에 영국을 방문하는데, 이때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를 개조해 룸을 만들고 방탄유리 덮개를 씌운 차량을 이용했다.
2012년 다임러 벤츠가 베네딕토 16세에게 전달한 M클래스 포프모빌. 암살 위협에 대응해 오픈탑에 방탄유리가 적용됐다.
그후부터 포프모빌의 역사는 방탄차량의 진화와 궤를 같이한다. 1985년부터는 특수 제작돼 장갑 기능을 갖춘 메르세데스 벤츠 500 SEL이 전용차로 이용됐고, 2002년에는 완전 밀폐가 가능하고 방탄장갑 기능을 지닌 메르세데스 벤츠 ML430이 도입돼 포프모빌 역할을 했다. 2005년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으로 즉위한 뒤에는 빼어난 장갑 기능을 갖춘 벤츠 G500 등이 전용차로 이용됐다.
2012년 다임러 벤츠는 신형 M클래스 SUV를 기반으로 제작된 새로운 방탄 포프모빌을 베네딕토 16세에게 전달했다. 벤츠 측은 차의 안전 설비에 대해 함구했으나 해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시가 6억 6000만 원대로 추정되는 이 차는 방탄차량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교황이 탑승하는 캐빈(룸)에는 폭발에도 견딜 수 있는 방탄유리가 덮여 있고 생화학 공격에 대비한 공기정화장치, 산소공급 설비가 내장돼 있다고 한다. 또한 차의 바닥과 측면은 각각 장갑판과 방탄 경량 케브라로 보호된다. 바퀴는 런플랫 타이어로 펑크가 나도 시속 112㎞로 달릴 수 있다. 최고속도도 257㎞/h에 이른다(포프모빌은 공개행사에서 교황이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이용하는 차량인 만큼 평상시에는 약 9.7㎞/h의 속도를 유지하며 운전한다고 한다).
하지만 베네딕토 16세가 재임 중 진짜 원했던 포프모빌 1호는 전기자동차였다. 환경보호에 대한 강한 신념 때문에 ‘그린(Green) 교황’으로도 불렸던 그는 탄소배출이 없는 전기자동차를 교황 전용차로 이용하려 했다. 2012년 이탈리아 자동차 부품업체 ‘베르만’이 포프모빌의 새 모델 디자인 콘테스트를 열 때도 ‘친환경’을 기준으로 삼도록 했을 정도. 그러나 순수 전기차는 방전 위험이 있는 데다 긴급상황에서 속도를 낼 수 있는 힘이 휘발유 차에 비해 떨어진다는 경호단의 의견에 따라 뜻을 접었다고 한다. 대신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은 하이브리드 포프모빌이었다.
이정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