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하면 한방에 훅~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수억 원에 달하는 고액 강연료 등으로 ‘부자 논란’에 휩싸였다. 이러한 가운데 <데일리비스트>는 브라질월드컵을 통해 힐러리가 배워야 할 다섯 가지 교훈을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합성. AP/연합뉴스
이번 월드컵이 미국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지는 우선 시청률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비해 최고 50%까지 올랐으며, 특히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2차전 시청률은 역대 축구 중계 가운데 최고를 기록했다. 무려 2470만 명이 지켜봤으며, 이는 NBA 결승전보다 높은 수치였다.
이렇게 많은 미국인이 월드컵에 들떠있던 와중에도 좌불안석인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바로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거침없이 대권을 향해 순항하고 있던 클린턴 앞에 나타난 암초는 다름 아닌 ‘부자 논란’이었다.
논란은 지난달 10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시작됐다. 당시 사회자는 클린턴 부부가 고액 강연료를 받는 이유에 대해 물었고, 이에 클린턴은 “우리 부부는 2001년 퇴임할 당시 소송비용 때문에 거의 빈털터리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변호사 비용으로 수백만 달러의 빚더미에 앉은 상태였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때문에 나는 강연을 통해 적게는 20만 달러(약 2억 원)에서 많게는 50만 달러(약 5억 원)까지 벌어들여야 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현재 클린턴 부부의 주된 수입원은 강연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빌 클린턴의 경우에는 회당 75만 달러(약 7억 5000만 원)를,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에는 20만~30만 달러(약 2억~3억 원)가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지난 3월 UCLA에서 받았던 강연료는 30만 달러(약 3억 원)였으며, 오는 10월 라스베이거스 네바다대학에서 열리는 강연회에서는 22만 5000달러(약 2억 2000만 원)를 받을 예정이다.
이밖에 클린턴 부부는 두둑한 출판 인세로도 돈방석에 앉았다. 빌 클린턴은 2004년 출간한 자서전 <마이 라이프>로 1500만 달러(약 150억 원)의 선인세를 받았는가 하면, 힐러리 클린턴은 최근 출간한 자서전 <힘든 선택들>로 1400만 달러(약 141억 원)의 선인세를 받았다.
이처럼 클린턴 부부의 재산이 새삼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클린턴이 지난달 22일 영국 매체 <가디언>과 가졌던 인터뷰 내용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클린턴은 “나는 다른 진짜 부자들과는 다르다. 나는 소득세를 정상적으로 내고 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는가 하면, “우리 부부는 열심히 일한 대가로 부를 일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자본주의를 추앙하는 미국 사회라고 할지라도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히고 있는 후보가 이런 발언을 한다면 밉상이게 마련. 아니나 다를까 곧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부자 클린턴’에 대한 반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서민과 너무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부자인 클린턴이 과연 보통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궁지에 몰린 클린턴이 월드컵에서 배울 수 있는 점들로는 무엇이 있을까. <데일리비스트>의 네이선 대슐리는 클린턴이 보다 존경받는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서 배워야 할 교훈들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남미 대륙 특유의 푹푹 찌는 더위와 숨 막히는 습도가 변수로 떠올랐었다. 실제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선수들이 살인적인 더위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 결국 형편없는 성적표를 들고 조기 귀국한 팀도 많았다. 일례로 조별예선에서 탈락했던 잉글랜드는 이탈리아와 맞붙었던 1차전에서 패배한 후 공개적으로 ‘높은 습도 때문에 졌다’라고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더위와 습도는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의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환경을 탓할 게 아니라 빨리 적응하는 팀이 결국 유리했다는 것이다.
정치판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대슐리는 말했다. 그는 오늘날 미국의 정치환경은 클린턴이 처음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던 2008년과는 또 다르게 변했다고 지적했다. 6년 전에는 반(反)부시 감정으로 인해 많은 미국인들이 ‘변화’를 열렬히 갈망하고 있던 때였다. 때문에 선거 메시지는 대체적으로 간결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오바마의 선거 캐치프레이즈 역시 ‘변화(CHANGE)’였고, 실제 이는 적중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우선 한쪽으로 치우쳐 비난을 받고 있는 인물이 없다. 대신 미국 유권자들은 민주 공화 양당 모두에 대한 실망감으로 가득 차 있으며, 빠르게 바뀌는 첨단기술 시대에 길들여진 많은 사람들은 밑도 끝도 없는 ‘충성’보다는 ‘변화’를 선호한다.
이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표현할 줄 알아야 하고,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선견지명이 있어야 하며, 또한 진실해야 한다고 대슐리는 말했다. 이런 후보야말로 차가워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때로는 불굴의 투지가 과거의 유산을 이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즉, 아무리 선두주자라고 해도 결코 자만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최고의 이변이라고 하면 단연 코스타리카의 돌풍을 꼽을 수 있다. 죽음의 조였던 D조에서 2승 1무라는 걸출한 성적으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던 코스타리카의 선전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같은 조에 속했던 잉글랜드,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 횟수만 합해도 다섯 번이었던 만큼 피파 랭킹 28위인 코스타리카의 16강 진출은 아무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클린턴을 월드컵 본선 진출팀에 비유하자면 아마도 잉글랜드,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일 것이다. 클린턴은 정치적 능력이 뛰어나고 경험이 풍부한 명실상부한 정치 베테랑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클린턴은 지금까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선두주자였다.
힐러리 클린턴은 출판 인세로 벌어들이는 수입도 막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출판한 회고록 <힘든 선택들> 사인회 모습. 로이터/뉴시스
하지만 유력한 1등 후보라는 지위는 축복이면서 동시에 저주가 될 수 있다. 미국인들은 강력한 우승 후보인 유명인들에게 싫증을 느끼고 있으며, 이는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대다수는 클린턴-부시의 대결구도로 이뤄지는 선거에 흥미를 잃고 있으며, 이는 순전히 그동안 지겹게 들은 식상한 이름 때문이기도 하다. 더욱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약자에게 더 호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잠재적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메릴랜드 주지사인 마틴 오맬리와 같이 카리스마 있는 경쟁자에게는 클린턴의 이런 식상함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셋째, 골과 골 사이에는 수많은 액션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마 다른 스포츠에 비해서 점수가 잘 안 나는 축구를 보면서 답답해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골을 넣는 장면만 본다면 그라운드 위에서 벌어지는 다른 위대한 장면들은 놓치게 된다. 0 대 0 무승부 접전 끝에 연장전까지 갔던 브라질과 칠레의 120분 경기 동안 얼마나 흥미진진한 모습들이 연출됐는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언론이 ‘힐러리가 출마할까, 안 할까’를 두고 시끄러운 사이, 다른 후보들 가령 오맬리, 조 바이든 부통령, 데벌 패트릭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조용히 인맥을 쌓아 나가면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런 후보들이 클린턴만큼 주목을 받지 않고 있다고 해서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출마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아직도 클린턴 외에 수많은 정치적 거물들이 잠재적 후보로 남아 있고, 가능성 있는 후보들은 도처에 존재한다. 이 가운데는 4년(혹은 8년)을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출중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 후보들도 많다.
넷째, 결과는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 포르투갈과의 조별 예선에서 미국팀은 후반 주어진 추가 시간에 극적으로 터진 바렐라의 동점골 때문에 결국 조 2위에 머물러야 했다. 당시 터졌던 골은 경기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호각이 울리기 직전에 터졌고, 이 골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늦게 터진 골로 기록됐다. 미국에게 이 골은 마치 복부에 펀치를 맞은 듯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최근 불거진 클린턴의 재산 문제 역시 어쩌면 클린턴을 쓰러뜨릴 수 있는 ‘한방’이 될지도 모른다. 부자 논란에 대해 해명하는 클린턴의 태도를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클린턴이 이렇게 서툴게 대응하는 모습은 정치인으로서 늘 노련한 모습을 보였던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나는 진짜 부자와 다르다’라는 해명은 대다수 미국인들 사이에서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이다. 계속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클린턴은 아마 본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기회를 잃을 수 있다.
다섯째, 거짓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축구 경기를 하다 보면 할리우드 액션으로 그라운드에 나뒹굴거나 뻗는 선수들을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선수들이 팬들 눈에 곱게 보일 리는 만무하다.
이런 점에서 클린턴 역시 진실하게 행동할 때 비로소 유권자들의 마음을 살 수 있다고 대슐리는 충고했다. 특히 오늘날 미국의 유권자들은 진실함을 갈망하고 있으며, 감언이설과 거짓을 들었을 때 더할 나위 없는 모욕감을 느낀다.
따라서 클린턴이 최근 불거진 재산 문제에 대해서 가장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그저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클린턴 부부가 부자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를 쌓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면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다른 모든 미국인들이 자신처럼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면 자신이 이룬 성공을 축소하거나 사과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클린턴처럼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잠룡으로 꼽혔던 정치인은 없었다. 하지만 6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클린턴의 정치 능력은 분명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클린턴에게 필요한 충고는 1. 새로운 정치 환경에 순응할 것 2. 안주하지 말고 활력을 되찾을 것 3. 경쟁 후보들을 꼼꼼히 살피고 돌아가는 정치판에서 눈을 떼지 말 것 4. 그저 진실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대슐리는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