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대표팀이 알제리 축구계의 화합과 대동단결을 이끌어냈으니 말이다. 현장에서 실감한 건 알제리 기자들과 자국 대표팀 할릴호지치 감독의 관계가 상당히 틀어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한국과 알제리의 경기 전날 FIFA가 주관하는 공식 기자회견 때도 그랬다. 알제리 기자들의 날선 질문이 쏟아졌고, 할릴호지치 감독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기자들은 우리 대표팀이 잘하는 꼴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일부는 거짓말을 하고, 말도 안 되는 허위 루머를 흘린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FIFA 관계자가 쓴웃음을 지을 정도로 약 30여 분간의 질의응답 중 10여 분 이상이 서로의 험담을 주고받는데 할애됐다. 사실 러시아 기자들도 “모두가 비밀, 또 비밀이다. 훈련 내용도 알려주지 않고, 선수들의 인터뷰 내용까지 통제하려 든다”면서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비난하기 바빴는데 그 정도는 애교 수준이었다.
그런데 한국을 4-2로 격침시키자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 말미에 의기양양해하는 할릴호지치 감독을 향해 알제리 기자들 가운데 가장 베테랑인 듯한 한 기자가 질문 기회를 잡았다. 그의 첫 코멘트가 놀라웠다. “모든 알제리 기자들이 당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범했던) 모든 잘못을 사과한다. 이제부터는 당신을 위해, 대표팀을 위해 모든 힘을 실어주겠다. 당신이 하는 게 옳았다.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지지하겠다.” 할릴호지치 감독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취재진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전날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태들을 모두 지켜본 FIFA 관계자의 눈도 휘둥그레질 정도로 완벽한 변화였다. 그 덕에 축구대표팀 ‘홍명보호’에 모든 지지와 응원을 아끼지 않던 한국 취재진은 아주 민망해졌다. 언론과 대표팀 감독간의 적당한 긴장관계가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가 알제리였다.
방송사들의 지나친 경쟁도 문제로 남았다. 특히 축구 취재와 별 관계없는 온갖 연예 프로그램 제작진이 미디어센터를 들락거려 기자들의 원성을 샀다. 몇몇 연예인들은 전 세계에서 모인 기자들이 운집한 경기장 미디어센터(스타디움미디어센터, SMC)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존재와 얼굴을 알리기 바빴다. 분위기가 흐려진 건 당연지사. 그 중 생각 없는 몇몇은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AD카드에 딸려 발급되는 위치별 출입카드를 주고받으면서까지 경기장 필드에 접근하는 등 상식 밖 태도를 보였다.
이 무렵 한 공중파 방송사가 AD카드 주고받기 문제를 일으키자 해당 방송사가 “우린 아니다”라는 공식 발표를 따로 할 정도로 낯 뜨거운 행동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 방송사는 참석 연예인에게 여성 아나운서가 피치 사이드(그라운드 접근 가능한 권한을 의미하는 허가증) 출입증을 내줬다. 피치 사이드 출입증은 신분 자체를 알리는 AD카드처럼 민감한 건 아니지만 아무에나 양도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물의를 일으킨 것은 피차일반이었던 셈이다.
러시아 유력 통신사의 한 기자는 한국 연예인 무리를 보곤, “대체 저 무리가 누구냐”고 물었다가 기자의 답을 듣고는 “저 사람도 기사를 쓰느냐. 그렇다면 어느 매체에 속했느냐”고 되물었다. 그리고는 4년에 한 번 열혈 축구광이 되는 한국 연예 매체의 특성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실제로 러시아 연예인이, 벨기에 연예인이, 또 알제리 연예인이 현란한 치장을 하고 취재 기자들과 언론 종사자들의 공간인 미디어센터를 출입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발견할 수 없었다. 오직 한국만의 씁쓸한 문화였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