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에게 ‘떡값’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검찰간부들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 | ||
삼성과 검찰의 유착 의혹을 보도한 모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부장검사는 “요즘 검사들은 ‘유리병 속의 존재’처럼 감시받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제는 떡값 수수 관행이 검사 사회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일이 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같은 때 검찰이 떡값 때문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죽어 가는’ 떡값 관행이 ‘살아 있는’ 검찰을 잡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실명을 폭로한 X파일의 떡값 검사 파문은 점점 증폭되고 있다. 사실 검찰은 물론 대부분의 언론사는 MBC가 X파일 내용을 보도한 지난 7월22일 직후 이미 도청테이프에 언급된 떡값 의혹 검사들의 실명을 모두 확인했다.
그러나 당시는 MBC는 물론, 어느 언론사도 이를 실명으로 보도하지 못했다. X파일의 핵심 주제가 삼성과 정치권의 커넥션이어서 곁가지인 떡값 검사 문제는 관심에서 밀려난 것도 이유였지만, 검사들이 돈을 받은 것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명을 보도하는 것이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감무쌍한’ 노회찬 의원은 결국 “나에게 수갑을 채우라”고 공언하며 지난주에 낱낱이 실명을 공개했고 이에 일부 언론이 이를 받아쓰는 형식으로 실명이 보도된 것이다.
노 의원의 폭로와 언론의 보도 직후 실명이 거론된 김상희 법무 차관은 강한 항변과 함께 즉각 사표를 내고 말았다. 시민단체들은 연일 “검찰의 ‘삼성 장학생’ 실체가 드러났다”며 전면 수사를 촉구하며 검찰을 상대로 공세를 높였다. 정치권과 언론도 잇따라 삼성과 검찰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반면 실명이 공개된 전직 고위 검찰 간부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노 의원에 대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파문이 커지자 대검 감찰부는 결국 지난 8월25일 소장검사들에게 삼성의 떡값 전달 통로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홍석조 광주고검장을 조사하겠다는 발표를 하게 됐다.
X파일 파문으로 정통으로 한 대를 얻어맞은 검찰은 이번에는 전방위 로비스트 홍아무개씨가 현직 부장검사 2명과 전직 부장검사 1명, 검찰 직원 등에게 금품을 뿌렸다는 의혹이 폭로되면서 뒤통수까지 맞은 꼴이 됐다.
특히 국민들에게 검사들이 아직도 으레 떡값을 받고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켜 검찰의 타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떡값 검사’라는 말이 보통명사처럼 회자될 정도가 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한 중견 검사는 “요즘 떡값을 받는 검사들은 설령 있다 해도 극히 일부일 텐데 검찰 전체가 매도되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렇다면 요즘과 과거 검찰의 떡값 실태는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이 같은 변화는 검사들의 술자리 문화도 바꾸어놓고 있다. 6∼7년 전만 해도 부장검사 정도 되면 ‘스폰서’라고 불리는 업자들이 몇 명 있어, 이들로부터 정기적으로 ‘떡값’을 받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수하에 있는 검사, 직원들과 함께 회식을 하는 데 상당량을 썼다. 심지어 부서 술자리에 스폰서나 지역 변호사 등을 직접 불러 계산을 맡기는 경우도 있었다. 회식도 1주일에 몇 차례가 넘었고 룸살롱 등으로 2차, 3차까지 이어지곤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떡값이나 스폰서 관행이 거의 없어지면서 부장검사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회식 자리가 줄어드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재경 지검의 한 평검사는 “요즘은 부장이 주재하는 회식이 한 달에 한 번꼴도 안 되고 회식을 해도 삼겹살에 소주나 맥주 등을 가볍게 마실 뿐 룸살롱을 간다거나 폭탄주를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신세대 검사들과 직원들에게 오히려 환영을 받고 있다고 이 검사는 덧붙였다.
하지만 과거에는 상당수 검사들에게 떡값 수수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도 과거 검사 시절 지역 유지들이 가져오는 적게는 10만∼20만원, 많게는 50만원의 ‘용돈’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우선 각 검찰청 산하에 있는 청소년선도위원회나 범죄방지위원회 등이 명절 떡값의 안정적인 ‘공급처’였다. 주로 건설업자 등 지역유지인 이들 위원회의 위원들은 추석이나 설날 등에 정기적으로 부장검사는 물론 평검사들에게도 떡값을 건넸다. 떡값은 보통 1백만원에서 20만원까지 직급에 따라 액수가 다르게 제공됐다.
검찰청 내 주요 부서에 이른바 ‘총무’로 불리는 검사나 직원이 있어 지방 유지들이 가져오는 떡값을 모아 관리하며 회식비나 수사격려비 등으로 썼던 것도 오래 전 관행이었다. 지역유지가 부장검사에게 떡값을 주려고 검찰청에 들렸으나 부장이 없을 때는 그저 ‘총무’를 찾아가 맡기고 가면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검사들에게는 매년 인사로 자리를 옮길 때마다 좀 더 덩치가 큰 ‘전별금’이 별도로 전해졌다.
이 정도는 관행이었다고 봐줄 수 있다 해도 그야말로 뇌물 수준의 떡값을 받은 검사들도 일부 있었다. 실제 지난해에는 특수부 출신의 모 검사가 사건 관계인으로부터 수천만원의 돈을 받았다가 변호사가 되고 난 뒤 사법처리되기도 했다. 사건 브로커 등으로부터 ‘꽁짓돈’을 받아 함께 도박을 한 검사가 있었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지역유지나 업자들과 달리 대기업들은 과거 일선 청이 아닌 대검 등에 주로 떡값을 전달했고 사건과 연루된 검사들에게 돈을 건네곤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결국 과거 검사들에게 떡값의 유혹은 전방위적이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검찰은 떡값 검사로 매도되는 것이 분하겠지만 결국 자신들의 과거 ‘업보’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