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대표가 재보선 전략공천 과정에서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동지’들이 하나둘 떠난 데다 김한길 대표와도 사실상 파경 상태라는 소문이 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또 당했다.”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동작을 전략공천에 대해 안철수 대표의 한 측근은 김한길 대표의 수읽기에 말렸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광주에서 선거를 준비하던 기 전 부시장을 재보선 최대 승부처인 동작을로 차출한 것을 놓고 안 대표 본인도 납득을 못하는 눈치였다. 금태섭 전 대변인으로 정리되는 줄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김 대표가 안 대표를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김 대표가 금 전 대변인을 동작을보다 승산이 높은 지역으로 밀어주겠다며 안 대표에게 기 전 부시장 공천 찬성을 요구했다는 얘기가 우리 쪽에선 정설로 통한다.”
즉 김 대표가 어떤 의도를 갖고 기 전 부시장의 동작을 전략공천을 먼저 제안했고, 이를 안 대표가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기 전 부시장 공천 직후 허동준 전 지역위원장이 대표실을 점거하는 등 당 안팎에서 논란이 확산되자 안 대표는 주변 지인들에게 “뭔가 잘 못 돼가고 있는 것 같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한다. 특히 안 대표는 허 전 위원장과 기 전 부시장이 운동권 시절부터 20년 이상 친구였던 것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치권에선 둘의 막역한 관계를 거론하며 ‘패륜공천’이라는 말까지 나온 상황이었다.
앞서의 안 대표 측근은 “안 대표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기 전 시장 전략공천이 이렇게까지 큰 후폭풍을 몰고 올진 몰랐을 것”이라면서 “윤장현 광주시장 공천 때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지난 6·4 지방선거 당시 윤 시장 전략공천이 도마에 오르자 안 대표 측은 김 대표가 먼저 제의해 이에 응한 것이었을 뿐이라며 안타까워한 적이 있었다.
안 대표 입장에서 더욱 곤혹스러운 점은 전략공천 책임론을 떠안았을 뿐만 아니라 지지 세력 이탈이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금태섭 전 대변인 공천 탈락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금 전 대변인은 이번 재보선에서 일찌감치 안 대표 몫의 전략공천 영순위로 꼽혔던 인사다. 안 대표 정치 입문 때부터 곁을 지킨 금 전 대변인은 공천 탈락 후 사실상 안 대표와의 관계 정리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동작을 선거를 준비해왔던 금 전 대변인은 공천 무산에 대해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안 대표의 첫 수석보좌관을 지낸 이수봉 전 민주노총 정책연구소장도 출사표를 던졌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자 공천신청을 철회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안 대표가 윤장현 전략공천 후유증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이번 재보선에서 자기 사람을 챙기는 데 실패했고, 이로 인해 정치적 기반이 급격히 흔들릴 것이란 평을 내놓고 있다.
안 대표는 송호창 의원을 제외하곤 원내 세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미니 총선’으로 불리며 15곳에서 치러지는 재보선을 통해 당내 입지를 다지고자 했다. 그러나 두 차례 선거에서 윤장현 광주시장을 당선시키는 데 그쳤고, 이마저도 ‘상처뿐인 영광’이 됐다. 내년 3월까지가 임기인 안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선거는 이제 없다. 차기 당권, 더 나아가 대권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당내 우군 양성에 사실상 실패한 셈이다.
반면 김한길 대표는 안 대표와 손을 잡은 이후 정치적으로 남는 장사를 했다는 게 정가의 중론이다. 제1야당 대표로서 존재감이 미미하기만 했던 김 대표가 유력 대권주자 안 대표와 한 배를 타면서 당내 주류 친노와 겨룰 수 있는 동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안 대표가 전략공천 등으로 인해 지지율을 까먹고 있는 동안 김 대표는 주요 당직에 자신의 계파를 임명하는 등 실속을 챙겼다. 안 대표 측에서 “더 이상 김 대표를 믿지 못 하겠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윤호석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는 안 대표와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활로를 뚫으려 했고, 안 대표를 충분히 잘 활용해온 것 같다”며 “그런데 지금 안 대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김 대표가 언제까지나 이런 스탠스를 유지할지는 모르겠다. 또 내공을 쌓은 안 대표도 더 이상 호락호락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지방선거 직후 안 대표 주변에선 “김 대표로부터 용도 폐기되기 전에 갈라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동작을 전략공천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풀이하기도 한다. 김 대표가 ‘안철수의 남자’ 금 전 대변인 대신 ‘박원순의 남자’ 기 전 부시장 공천을 밀어붙인 것 자체가 안 대표와의 관계 청산에 나선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새정치연합의 한 중진 의원 역시 “김 대표는 킹메이커를 하고 싶어 한다. 지금 박 시장이 야권 대선주자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면서 “(동작을 공천은) 김 대표 속내가 박 시장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추정해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선 벼랑 끝에 몰린 안 대표가 대응책을 내놓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점친다. 그만큼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여기엔 그동안 안 대표가 보여준 정치력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포함돼 있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안 대표는 최대 자산인 지지율에서조차 다른 야권 주자들에게 밀리고 있다. 그렇다고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를 알기 때문에 친노 등에서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하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안 대표는 그냥 일개 초선 의원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안 대표를 돕고 있는 한 원로 인사는 “지금 안 대표가 어려운 처지인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2011년 안철수 신드롬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산전수전 겪은 안 대표가 본격적으로 새정치 행보를 한다면 지지율이라는 건 언제든 다시 치고 올라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