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재력가 송 아무개 씨가 살해당한 채 발견된 서울 강서구의 한 건물. 송 씨는 이 건물 증축 및 해당지역 용도변경을 위해 김형식 시의원(작은 사진)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추측된다.
검찰은 입수한 송 씨 장부와 주변 인물들의 계좌추적에 나서며 청탁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범행동기를 찾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도 가장 초점이 맞춰졌던 부분. 송 씨는 강서구 일대에 3000억 원대 재산을 소유한 지역 유지였고 김 의원은 지난 2010년 당선돼 정치권에 입문해 촉망받는 선량이었다.
경찰은 조사 초기 죽은 송 씨의 사무실에서 김 의원이 작성한 5억 2000만여 원의 차용증과 송 씨를 살해한 팽 아무개 씨(44)의 진술을 토대로 김 의원이 채무관계에 압박을 받아 송 씨를 살해했을 것이라 추정했다. 이후 김 의원이 송 씨 소유 건물 지역의 용도 변경과 관련한 조례를 발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단순 채무관계가 아닌 뇌물 쪽으로 경찰은 수사 방향을 틀었다.
이에 대해 김 의원 측 변호인은 법원에 낸 의견서에서 송 씨가 평소 김 의원의 술값 등을 대신 냈고 살해되기 이틀 전까지도 김 의원 부탁에 따라 산악회에 300장의 수건을 지원해줬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송 씨는 산악회 지원 외에도 김 의원 지역구 축제에 수건을 협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김 의원도 경찰 진술에서 지역구 행사 등에 송 씨가 지속적으로 후원을 해줬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축제는 1000명이 넘는 강서구민들이 참여할 정도로 유명하다. 지난해에 이어 김 의원이 구속된 최근까지도 송 씨의 웨딩홀 로고와 축제를 기념하는 문구가 찍힌 수건이 축제 참여자들에게 기념품으로 지급됐다.
강서구에서 활동하는 한 정치 관계자는 “몇 백 장이면 몰라도 수천 장은 적은 돈이 아닌데,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해당 축제를 관리하는 한 공무원은 “적어도 2012년부터는 그 웨딩홀에서 협찬을 해왔다”며 “아무래도 홍보 효과도 있고 동네에 인심도 쓰고 그러고 싶지 않았겠나 싶다. 김 의원과 송 씨가 관계돼 있다거나 그렇게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송 씨의 산악회와 축제 지원은 김 의원 측의 주장대로 피살 직전까지 송 씨와 김 의원의 관계에 문제가 없었다는 정황이 될 수 있다. 팽 씨의 경찰 진술에 따르면 지난 2012년 말 한 음식점에서 김 의원이 “송 씨에게 돈 빌린 것이 있는데 갚으라고 압박한다. 돈을 갚지 못하면 다음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며 송 씨를 살해하는 대신 팽 씨가 김 의원에게 빌린 돈 7000만 원을 감면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이후 두 사람은 1년여의 치밀한 계획 끝에 송 씨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적어도 김 의원과 송 씨의 사이가 틀어진 시기는 2012년 말 이전인 셈이다.
경찰은 송 씨가 죽기 전까지 김 의원을 지원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 같은 특수한 상황은 둘 사이에 단순한 친분이 아닌 청탁형 계약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피살 전까지 송 씨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애초 송 씨는 빌딩을 증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김 의원에게 돈을 건넸지만 여의치 않자 해당 지역을 상업지구로 용도변경을 하도록 추진했다.
송 씨는 용도변경 등 법안의 진행과정에 대해 거의 모르는 상태였다고 한다. 용도변경이 가능하도록 한 조례안이 시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했지만 이를 모르고 있던 송 씨는 가족에게 “지방 선거 전까지 증축이 되도록 손을 써 놨다. 이번에 잘 되면 현금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살해되기 2일 전인 3월 1일 현금 1억 원을 찾아 금고에 보관했다.
송 씨는 주변에 지인이 많지 않았다. 세입자들에게 권리금을 떼어 받는 등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아 지역에서 악명이 높았기 때문이다. 한 측근은 “송 씨는 남의 조언을 안 들었다. 지역에서 평판이 안 좋으니 고치라고 하면 ‘그런 사람들 말 다 들으면 못 산다’며 듣지 않았다”고 전했다.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송 씨는 피살 전까지도 그런 부분(김 의원에게 청탁한 일)에 대해 상의할 사람이 없었다. 결국 김 의원만 믿고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송 씨가 용도변경이 어렵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김 의원은 왜 2012년 말 이전부터 송 씨에게 압박을 느꼈을까. 경찰 조사에서 해당 빌딩의 증축 설계에 관여한 설계자는 서울시 홈페이지를 통해 이미 용도 변경 법안이 시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던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설계자가 이 사실을 송 씨에게는 전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경찰은 김 의원에게 청탁비를 건넨 송 씨가 용도변경에 기대를 걸며 수시로 김 의원을 압박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송 씨는 지난 2012년 12월 염창동에 위치한 스포츠센터 건물을 싼값에 낙찰 받았고 김 의원은 지난해 4월 해당 지역에 호텔 등을 지을 수 있는 조례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이 같은 정황을 바탕으로 경찰은 김 의원이 송 씨에게 지방선거 전까지 용도변경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을 인지하고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로 목적에 의한 관계였기 때문에 외부적으로는 두 사람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