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자동차 연비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정동희 국무조정실 산업통산미래정책관(왼쪽에서 두 번째)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2년 미국에서 현대차의 연비 과장 논란이 불거지자 국내에서도 거센 비난 여론이 있었다. “자동차 업체와 산업부가 결탁해 연비를 뻥튀기 했고 그것이 결국 소비자의 피해로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자동차 누적등록대수가 국민 5명 중 2명꼴인 1977만 대(6월말 현재)에 이르고 있는 자동차 선진국인 상황에서 지금까지 나눠먹기식으로 이뤄지던 연비에 대해서도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거셌다. 미국에서는 현대차의 연비 과장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되는데 국내는 단 한 건의 연비과장 조사결과가 없었던 것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상당히 거셌다. 결국 국토부는 자동차관리법을 개정해 ‘승용차 연비 사후 검증’ 작업에 나섰고 이른바 ‘뻥 연비’ 논란이 시작됐다.
이는 지금까지 산업부가 해오던 자동차 연비의 사후 규제 권한이 국토부로 넘어가게 되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그동안 ‘산피아’의 그늘에서 잘 지내왔던 산업부와 자동차 업체 간의 ‘연대’에 심각한 균열이 생긴 것은 당연지사. 산업부는 자동차 업체에 대한 규제 권한을 사실상 국토부에 뺏기게 된 셈이다. 이 같은 배경에 대해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산업부가 그동안 자동차 업체의 로비에 밀려 너무 업계 위주로 정책을 펴 왔는데, 이제 그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니겠느냐. 더 이상 자동차 업체 봐주기는 안 된다는 시각이 강하다. 국민들의 자동차 문화 의식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 정부가 산업부의 행태를 보다 못해 국토부로 (연비 측정) 권한을 넘긴 것도 결국은 소비자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추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양 부처 간의 갈등 속에서 ‘거짓 연비’ 논란이 시작됐다. 국토부는 지난해 4월 ‘작심하고’ 산하기관을 통해 14종의 차종을 사 연비를 측정했다. 이후 현대차의 싼타페 DM R2.0 이륜구동모델(이하 싼타페) 등 2종의 연비가 측정연비인 리터(L)당 14.4㎞보다 8.3% 낮아 허용오차 범위인 5%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후 연비 관리 전담기관이었던 산업부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우리가 측정한 연비에는 문제가 없다’며 자동차 제작사의 편을 들었다.
결국 두 부처의 입장이 달라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가 중재에 나섰고 그 결과 산업부는 사후 연비 측정 권한을 국토부에 뺏기게 됐다. 이 말은 산업부가 그동안 ‘산피아’를 내세워 자동차 업체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을 정부가 인정한 셈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폐해가 소비자들의 집단행동과 높아진 문화수준 등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할 수 없이 국토부로 연비 검증 기관이 넘어간 것이다.
여기에는 산업부의 안일한 자세도 한 몫했다. 자신들의 큰 덩어리를 떼어 주면서도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던 것에는 연비에 대한 관리감독이 소홀했던 점도 있었다. 산업부가 사후 연비 관리를 담당하기 시작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자동차 표시연비가 실제연비보다 높다는 부적합 판정을 내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러니 산업부의 연비 인증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고 결국 국토부가 그 짐을 떠안게 된 것이다.
국토부 역시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자신들의 입지를 넓혀나갔다. 올해 2월 대통령 업무보고에 연비 조사를 강화하겠다며 ‘국민 알 권리’를 명분으로 ‘연비 인증 교체’ 업무를 진행했고 산업부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산업부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기득권 챙기기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산업부는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아우디 A4, 폴크스바겐 티구안, 크라이슬러 그랜드체로키, BMW 미니의 연비가 부적합했다고 ‘뒷북’ 발표를 하며 맞섰다. 국토부가 내놓은 국내 자동차 연비 검사 결과와도 상반된 자료를 내놓으며 갈등을 일으켰다. 국토부가 싼타페와 코란도스포츠의 연비가 실제보다 8~10%p가량 낮았다는 결과를 내놓자 산업부는 각각 4.2%와 4.5%라는 합격점을 내놓은 것이다.
이런 꼴사나운 부처 이기주의가 반복되자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도 ‘열’이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연비 재검증 과정에서 국토부와 산업부가 각각 다른 결과를 발표해 혼선을 야기한 것과 관련, “부처 간 고질적 영역 다툼이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없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입장은 명확하지 않다. 기획재정부와 경제부총리까지 나서 부랴부랴 중재를 시도, 국토부가 향후 사후검증을 하는 것으로 조율했다. 하지만 두 부처의 검사 결과에 대해서는 ‘두 부처 연비측정 결과가 모두 맞다’라는 애매한 판정을 내렸다. 사실상 각 부처의 판단이 다르니 최종 결정은 법원에 문의해 보라는 식의 무책임한 발표에 부처 간 불협화음 논란은 더욱 커졌다.
현대차와 쌍용차 대리점. 연합뉴스
이런 정부의 불명확한 입장과 맞물려 소비자들도 들고 일어났다. 자동차 구입자 1000여 명이 ‘연비 부풀리기’로 적발된 이들 자동차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에 나서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더욱이 연비 검증을 중재한 기획재정부는 구체적인 대책이나 소비자 피해 구제에 대해 “절차상 의무가 없다”며 발뺌하고 있다.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해야 할 국무조정실 역시 조정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조율되지 않은 정책으로 정부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행동에 대해서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기로 한다”라는 대증요법만 내놓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애매한 태도를 취하자 향후 소송도 상당히 복잡해질 전망이다. 소비자 중 상당수는 싼타페와 코란도스포츠의 연비가 과장됐다고 한 국토부 발표를 근거로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는 두 차의 연비가 과장되지 않았다는 산업부 발표를 근거로 방어에 나설 전망이다. 이렇게 연비에 대한 정부의 기준이 2가지나 되다 보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갈 전망이다.
앞서의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두 부처가 발표한 연비에 대해 정부가 어느 한 쪽에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다. ‘둘 다 맞다’는 애매한 입장을 내놓았다. ‘우리도 모르겠으니 법원에 가서 물어보라’는 얘기다. 하지만 어떤 판사가 정부의 공신력 있는 자료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겠는가. 작심하고 소비자 편을 들어주는 판사를 만나지 않는 이상, 소비자들이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렇게 연비에 대해 2가지 입장을 모두 인정하는 것 자체가 아직도 자동차 업체의 눈치를 보거나 로비에 휘둘려 올바른 정책판단을 하지 못한 결과”라며 비판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가자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은 “자동차 연비 검증은 미국 환경청과 동일하게 배출가스 테스트를 맡고 있는 환경부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업부는 여전히 ‘산피아’ 논란에 휩싸여 있다. 국내 자동차 업체 5개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의 회장이나 부회장을 산피아가 20년간 독차지하고 있다. 김용근 현 회장은 산업자원부 차관보(산업정책본부장) 출신이다. 전임 권영수 회장도 산업부 국장 출신이다. 또한 ‘산피아’는 1995년부터 한 차례도 놓치지 않고 협회 상근 부회장 자리를 도맡아왔다.
국토부도 차량연비 검증권한을 놓고 부처 간 밥그릇 싸움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그 신뢰성을 회복하기 어렵고 ‘제2의 산피아’에 지배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바에야 아예 자동차 업체와 관련이 없는, 또는 ‘적대적’ 관계라고도 할 수 있는 환경부가 연비검증 등을 맡아야 제대로 된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경부가 연비검증을 맡게 되면 자동차 업체에게는 ‘재앙’과도 같다. 자동차 매연 등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는 환경부의 ‘기준’에 맞추려면 업계의 타산성에 심각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정부가 일단 국토부로 연비 검증을 이관하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는 한국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 업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정부정책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 2000만 대 시대를 앞둔 지금, 정부의 시각이 이제는 소비의 주체인 ‘국민’에게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제조사들 이중적 태도 해외선 ‘팔 걷고’ 국내선 ‘팔짱’ 2012년 미국 소비자들은 현대·기아차가 현지에서 판매해온 일부 모델의 연비 표기가 실제보다 과장됐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미국 전역에서 소송이 제기되자 현대·기아차는 적극적으로 나서 이듬해 12월 이들에게 총 3억 9500만 달러(약 4187억 원)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보상 대상 차종은 미국에서 판매된 현대차 60만 대와 기아차 30만 대에 이르렀다. 하지만 국내에서 제기된 연비 소송은 전혀 딴판이었다. 제조사들은 합의에 나서기는커녕 줄곧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소송 결과도 소비자들의 ‘참패’였다. 지난해 12월 현대차 ‘아반떼’와 ‘i30’ 운전자 2명이 제기한 200여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으며 올 2월에도 기아자동차 ‘K5’ 하이브리드 운전자가 유류비 등 230만 원을 배상하라고 낸 소송에 대해 똑같은 판결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무엇보다 ‘집단소송제’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캐나다 소비자들이 제기한 집단소송은 징벌적인 성격이 크다. 집단소송제 판단은 배심원제를 이용하기에 아무래도 소비자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또한 더욱이 집단소송의 파장은 어마어마하다. 소비자 중 한두 명만 제기해도 그 판결의 영향이 모든 소비자들에게 미쳐 자칫 합의를 보지 못하고 끝까지 재판이 이어질 경우 천문학적인 보상을 해야 할 지경에 처할 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해외에서 집단소송이 제기되면 소비자들과 합의를 하거나 자발적 보상에 임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증권을 제외한 일반 소비자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 집단소송제가 도입되지 않았다. 지난 7일 제기된 연비 소송 역시 말만 ‘집단소송’일 뿐 정확한 명칭은 ‘공동소송’일 뿐이다. 공동소송은 그 판결이 소송을 제기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칠 뿐 모든 소비자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박] |
연비 소송 얼마나 받을까 오차범위 넘는 부분만 준다고? 지난 7일 자동차 연비 부적합 판정을 받은 차종 구입자 1700여 명이 서울울중앙지법에 제조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승소할 경우 받을 수 있는 보상금 규모는 얼마나 될까. 미국에서처럼 수천억 원대의 보상금 규모가 형성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와 달리 전체 소비자들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소송에 참여한 사람들만 해당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앞으로 소송 규모가 커지면 보상금액도 달라지겠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약 30억 원의 보상금을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소비자들이 청구한 금액을 합산한 것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현대차 ‘싼타페 DM R2.0 2WD’ 소유자 1517명이 각 150만 원을, 쌍용차 ‘코란도스포츠 CW7 4WD’ 소유자 234명이 각 250만 원을 청구했다. 외제차의 경우 BMW ‘미니쿠퍼D 컨트리맨’ 소유자 7명이 각 90만 원을, 크라이슬러 ‘지프 그랜드체로키 2013’ 소유자 3명이 각 300만 원을, 아우디 ‘A4 2.0TDI’ 소유자 6명이 90만 원을, 폭스바겐 ‘티구안 2.0TDI’ 소유자 18명이 각 90만 원씩을 청구금액으로 제시했다. 물론 이번 소송의 결과에 따라 나머지 소비자들이 줄줄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제조사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런 사태가 발생할 경우 보상금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우 2012년 5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싼타페 DM R2.0 2WD’ 차종만도 8만 9500대를 판매했다. 만약 이번 소송에서 패소해 싼타페 전 소비자들이 보상을 요구하고 나서면 1000억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토해내야 할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행 자동차관리법에는 연비 과장과 관련한 보상 규정이 모호해 전체 소비자가 보상을 받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제조사들은 소송 결과에 따라 보상 판정이 내려진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원하는 모든 금액을 줄 순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실제 연비와 표시 연비보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고지를 했으며 공식적인 허용 오차범위도 5%이기 때문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논리다. 즉 실제 연비가 표시 연비보다 6%가 낮아도 오차범위를 초과한 절반인 1%만큼만 보상하는 게 옳다는 설명이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