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대회가 끝나고 한 교수와 몇몇 선수들이 어울렸다. 호주 바둑계의 산 증인 한 교수가 호주 바둑꾼들의 얘기를 들려주었고, 젊은 선수들이 모두 즐거워했다. 이기고 지고 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던 한 교수의 기인열전 몇 대목을 옮겨본다.
“호주에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바둑광들(Go Freaks)이 있다. 가령 이런 사람들, 톰 포인튼(Tom Poynton). 백만장자이며 불어교수인데, 일본어를 계속 공부해 일본어교수로 자리를 바꾸었다. 바둑은 7급. 일본어와 한국어가 문법은 같다고 하자 이제부터는 한국어를 공부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 후 그가 독학으로 한국말이 어느 수준에 오른 걸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는 한국말 실습과 바둑을 두기 위해 한국에 다섯 번이나 찾아왔고, 한 번은 권갑룡 도장에서 몇 달 동안 바둑공부를 하기도 했다. 또 언젠가는 종로 2가 근처 여관에 몇 달간 묵으면서 매일 탑골 공원에 나가 노인들과 바둑을 두었다. 나이도 비슷하고 바둑 실력도 비슷해 좋았단다. 점심 때면 서울시에서 나오는 트럭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다가 공짜 국수를 얻어먹는다. 누가 그를 대학교수에 백만장자라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아마 외국 거지 정도로 알지 않았을까. 이렇게 30년을 노력한 톰은 지금 1~2단 정도다. 서양 바둑광은 우리와 차원을 달리 한다. 하는 짓이 대책이 없다. 톰은 지금 80이 넘은 노인인데 요즘은 안영길 사범과 가까이 지내고 있다. 두 사람의 성분을 보아 앞으로 더 많이 가까워질 것 같다.
돈 포터(Don Potter)라는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이 사람이 바둑 기인 중 세계 랭킹 1위 후보라고 생각한다. 그는 동양학을 전공했고 박사 학위가 있는 사람이 바둑으로 석사논문을 또 쓴 사람이다. 피아노는 전공자보다 실력이 좋아 어려운 오페라 아리아도 초견(初見)으로 반주를 한다. 그가 20년 전쯤 타스마니아(Tasmania) 섬에 500만 평이 넘는 목장을 샀다. 목장 일을 모르는 사람이 그 먼 곳에 목장을 왜 샀는지 그것조차 엉뚱하다. 다만 타스마니아에 사는 에반스 2단과 친분이 있어 그랬을지 모른다고 짐작할 뿐이었는데, 그가 거기에서 무언가 이상한 일을 벌일 거라는 나의 예감은 적중했다. 그는 목동을 뽑을 때 응모자들에게, ‘목장 일이 끝나고 두 시간쯤 바둑을 배우겠다’는 서약서를 요구했다. 포터는 목동들에게 바둑이 두뇌를 개발시켜 준다고 설득하고 가르쳐 고용인 전체가 바둑을 둘 수 있게 만들었고, 3년쯤 지나 그 중 17세 소년이 2단이 되어 호주 청소년대표로 세계대회에 출전한다. 그는 또 목장을 팔고 시드니에 팜(Palm)비치라는 부자동네로 이사를 갔는데, 집에 가 봤더니 동네 아이들 40여 명이 몰려와 바둑을 두고 있다. ‘바둑을 두어 이긴 아이에게는 2달러씩을 준다. 이 중에 벌써 바둑에 호기심을 보이는 애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2달러씩 받은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집으로 뛰어간다. 그가 창안한 독특한 바둑보급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