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주·예나래 저축은행을 인수한 러시앤캐시는 지난 7일부터 ‘OK저축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내심 마땅한 인수 후보자가 없어 고민하던 금융당국으로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러시앤캐시의 적극성이 싫을 리 만무했다. 당국은 지난 2일 정례회의를 열고 “러시앤캐시 측이 제출한 ‘저축은행 건전경영 및 이해상충방지계획’의 충실한 이행과 이행 여부 보고를 부대조건으로 인수를 승인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러시앤캐시는 지난 7일부터 ‘OK저축은행’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갔다.
특이한 점은 OK저축은행 대표이사를 최윤 회장이 직접 맡았다는 것이다. 곧 대표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러시앤캐시 계열사 가운데 이런 경우는 OK저축은행이 유일하다. 최 회장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러시앤캐시는 국내 대부업계 부동의 1위에다, 해외진출까지 성공하는 등 잘나가는 회사다. 그런데도 최 회장이 이를 버리고 ‘한물 간’ 업종으로 평가되는 저축은행에 목을 맨 이유는 도대체 뭘까?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해답을 최윤 회장의 ‘혈통’에서 찾는다. 최 회장의 본명(?)은 ‘야마 준’이다. 하지만 최 회장은 한국으로 건너온 뒤 공개석상에서 한 번도 이 이름을 사용한 적이 없다. 대신 그는 “나는 일본에서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한국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일본인이 아닌 재일교포 3세라는 것이다. 러시앤캐시 역시 “한국인 돈으로 만든 국내 대부업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한국인이 한국에 있는 회사를 인수했는데도 일본계로 오해받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다소 억울해한다.
최 회장의 설명은 대부분 맞는 말이다. 그는 귀화를 거부하고 한국 국적을 고집한 탓에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최 회장은 음식점 창업에 나섰고, 일본 전 지역에 지점을 보유한 프랜차이즈로 키워냈다.
그가 대부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0년 전인 지난 2004년의 일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대부업이 몰락하면서 문을 닫는 업체가 속출했다. 최 회장은 평소 눈여겨보던 A&O라는 업체가 부도로 쓰러지자 이를 인수했고, 한국으로 근거지를 옮겨 대부업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세간에서 최 회장과 러시앤캐시를 규정짓는 단어는 여전히 ‘일본계 대부업체’다. 최 회장의 불편한 감정은 바로 이런 인식에 기인한다. 그는 인종차별을 감수하고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켰고, 타국에서 성공해 고국에 돌아온 사업가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배구단 창단에 대학생 장학금 지원까지 사회공헌에도 열심인데도 소비자와 대중은 ‘일본계 대부업체’이라는 인식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는 같은 이유로 자신을 은근히 제도권 밖의 금융사처럼 대하는 금융당국에도 서운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계 대부업체’라며 저축은행 인수를 허용하지 않는 금융당국을 찾아가 “우리는 일본계가 아니다”라고 항변도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러시앤캐시는 저축은행 인수가 번번이 좌절되자 당국을 찾아 자신들을 일본계로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국이 들이댄 근거에 러시앤캐시 측은 머쓱해졌다는 후문이다. 러시앤캐시의 설명을 듣던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난 1998년 산업통상자원부에 신고 된 서류를 꺼내왔다. 이 서류에는 러시앤캐시가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설립된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분류돼 있었다.
최 회장은 한국에 진출할 때 스스로 외국인이라고 신고했고, 러시앤캐시도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등록했던 것이다. 일본에서 그토록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켰던 최 회장이었지만, 우리 정부가 외국인 투자기업에 부여하는 각종 혜택은 포기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적어도 법적으로 그는 ‘최윤’이 아닌 ‘야마 준’이며 러시앤캐시 역시 일본계 대부업체가 분명했던 셈이다.
그런 그에게 저축은행 인수는 현행 법에 따라 스스로 붙여 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꼬리표를 뗄 수 있는 탈출구였다. ‘서민을 위한 금융사’인 저축은행을 인수하면 ‘대부업자’라는 주홍글씨를 지울 수 있는데다, 순수 국내법인을 세워 지분을 보유토록 하면 ‘일본계’라는 편견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 회장은 ‘외국인 회사’인 에이앤피파이낸셜 대신 ‘아프로서비스그룹대부’라는 순수 국내 법인을 새로 설립, ‘사내이사 최윤’으로 등재하고 OK저축은행 지분 98%를 보유토록 했다. 이로써 최 회장은 염원하던 제도권 진입과 한국인으로서의 기업활동을 본격화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남은 과제는 인수한 부실 저축은행을 정상화하는 작업이다. 직접 CEO(최고경영자)까지 맡은 최 회장이 하락세인 저축은행 사업을 성장궤도에 올려놓을지 주목된다.
이영복 언론인
저축은행 삼킨 러시앤캐시 향후 행보는? 중국으로 동남아로 해외 진출에 ‘올인’ 러시앤캐시는 저축은행 인수 조건으로 내건 ‘이해상충 방지계획’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국내 대부영업을 폐쇄해야 한다. 국내 시장에서 철수해야 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아예 대부업을 안한다는 것은 아니다. ‘국내’를 폐쇄한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러시앤캐시는 국내 사업을 접는 대신 중국 등 해외 진출에 집중할 방침이다. 실제로 러시앤캐시는 지난 5월 중국 충칭(重慶)에 세 번째 법인을 설립하는 등 중국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남아 시장 진출도 곧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전망이다. 러시앤캐시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7개국을 대상으로 대부업 시장 전반에 대한 조사를 마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저축은행 추가 인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얼마 전 “고객을 직접 찾아가는 ‘관계형 영업’을 할 생각인데, 이를 위해서는 지점이 많이 필요하다”며 “이번에 인수한 저축은행은 영남이나 강원도 등에는 영업점이 없기 때문에 추가로 저축은행을 인수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