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랜드 트럭을 개조한 특수차량. 뒷부분에 대형 방탄 유리방을 설치, 무게가 무려 24톤에 달했다.
‘순례자 교황’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던 바오로 6세(1963~1978년 재위)는 6개 대륙을 방문한 최초의 교황이다. 바오로 6세는 1964년 인도 방문 때 의전차량으로 링컨 콘티넨탈을 이용했는데, 이 차와 테레사 수녀에 얽힌 일화는 유명하다. 테레사 수녀의 헌신적인 봉사에 감동한 바오로 6세는 현지에서 자신이 타던 링컨 콘티넨탈을 테레사 수녀에게 기증했고, 테레사 수녀는 이 차를 이용해 복권을 발행해 기금을 모으게 된다. 그 돈으로 설립된 나병 환자들을 위한 재활 기관이 바로 세계인을 감동시킨 ‘평화의 마을’이다.
1965년 바오로 6세가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의전차량으로 사용된 차는 ‘맞춤형’ 링컨 콘티넨탈이었다. 1964년형 링컨 콘티넨탈은 캐딜락 코치빌더(Coach Builder:차체 전문 제작사)로 유명한 레만 페더슨이 개조한 리무진으로 길이가 약 6m에 달했다. 뒷좌석은 오픈된 형태로, 탑승자의 모습이 잘 보이도록 좌석의 높이를 30㎝가량 올릴 수 있는 장치가 달렸고, 차량 지붕에 25㎝ 높이의 투명 유리 스크린을 설치해 탑승자를 보호하도록 돼 있었다. 야간 행렬을 위한 조명장치도 갖춰진 전천후 퍼레이드용 차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바오로 6세는 이 맞춤형 링컨 콘티넨탈을 타고 뉴욕을 방문했고, 3년 후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를 방문하던 때도 역시 같은 차를 이용했다. 이 차는 훗날 퍼레이드용 차량으로 쓰이게 되는데, 1969년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하고 돌아온 뒤에 퍼레이드 때 타기도 했다.
바오로 6세의 뒤를 이어 1978년 즉위한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장 많은 해외순방을 기록한 교황이다. 27년여의 재위 기간 동안 100여 차례에 걸쳐 119개국을 방문했으며, 해외순방 거리만도 200만㎞에 이른다. 지구를 50바퀴 이상 돈 셈이니, 요한 바오로 2세와 순방 때 의전차량에 얽힌 이야깃거리도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요한 바오로 2세가 1979년 조국인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이용한 FCS 스타가 유독 눈길을 끈다. FCS 스타는 폴란드 제조업체 이름이자 이 회사가 생산하는 산업용 트럭 브랜드.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트럭을 개조한 차량을 조국 방문 때 임시 ‘포프모빌’로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각별한 마음을 나타냈다.
지난호에서 밝혔듯이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저격 사건을 겪으면서 뒷자리에 방탄유리로 둘러싸인 캐빈(룸)을 설치한 의전차량이 해외 순방에도 쓰이게 된다. 같은 해에 요한 바오로 2세가 프랑스를 방문하던 때엔 사각형의 방탄유리로 덮인 캐빈이 설치된 푸조 504가 의전차량으로 이용됐고, 이듬해 스코틀랜드 방문 때에는 레이랜드 트럭을 개조한 특수차량을 의전차량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뒷부분에 대형 방탄 유리방을 설치한 이 트럭은 무게가 무려 24톤이었다고 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교황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첫 방한이 이뤄진 때는 1984년 5월 3일. 그렇다면 당시 교황이 이용한 의전차량은 어떤 것이었을까.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교황이 외국을 방문할 때 방문 국가에서 교황이 사용할 승용차를 주문해왔으나… 한국 방문에는 바티칸이 보유하고 있는 전용차를 비행기로 실어왔다.’ 당시 바티칸 측이 국내로 공수한 의전차량은 특수 제작된 랜드로버형 포프모빌로 무개차와 방탄유리로 싸인 캐빈형 차량 2종류였다. 이 차량들을 프랑크푸르트에서 서울까지 왕복 수송하는 데 든 비용이 10만 달러(당시 원화로 8000만 원)가 넘었다고 한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2005~2013년 재위)의 경우 고령의 나이에 교황으로 즉위한 데다 재위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해외순방이 잦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18개국을 사목 방문했는데, 의전차량으로 자주 이용된 차량은 벤츠 모델이었다. 베네딕토 16세가 2010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탄 의전차량은 메르세데스 벤츠 M 클래스를 개조한 방탄차량. 독일 다임러 그룹은 2012년 교황을 위해 벤츠 신형 M 클래스를 기반으로 특별히 제작한 고성능 포프모빌을 전달했으나, 이듬해 교황이 사임함으로써 해외순방에는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정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