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가운데 상당수의 기업이 구인난으로 문을 닫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사진은 도쿄 신주쿠 거리.
당초 일본의 일손 부족은 동일본 대지진 복구공사를 담당하는 건설업에서 시작됐다. 재해 지역 복구를 위한 대규모 토목공사가 줄을 잇는 데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수도권의 건설 특수가 겹친 탓이다. 거푸집 기능사, 철근공, 현장 감독을 할 수 있는 인재 등이 부족해 사업 자체가 무산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러던 것이 경기회복 징조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인력난은 점차 외식업과 소매업으로 파급. 지금은 업종을 초월해 상당수의 기업이 일손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외식업체는 아르바이트 시급을 1500엔(약 1만 5000원)대까지 올려도 사람이 모이지 않아 울상이고, 운전수 부족으로 기업의 물류비용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또 기술자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IT업계는 개발 일정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결국 일손 부족은 기업의 도산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도쿄상공리서치의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사람을 구할 수 없어 도산한 기업이 10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인건비 상승이 원인이 돼 도산한 기업도 10개에 달한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젊은 층의 인구감소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저출산과 장기 디플레이션이 누적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경기호황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은 심각한 불황으로 인해 ‘노동인구 감소’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지만, 경기가 호전되면서 표면화됐다는 것이다. 덧붙여 <아사히신문>은 “젊은 층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업종일수록 치열한 ‘인력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그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올해 일본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32년 만에 8000만 명을 밑돈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지난 10년간 20대 일꾼은 300만 명이나 줄어든 반면, 65세 이상 노년층은 161만 명 증가했다.
2013년 기준으로 일본의 인구는 약 1억 2730만 명. 현재 속도대로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될 경우 2060년에는 인구수가 8600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생산가능인구 역시 급격히 감소해 일본의 인력 부족은 갈수록 심각해질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호경기를 맞아 인력난이 발생하면, 기업들은 근로조건 개선에 노력을 기울인다. 덕분에 임금이 오르고, 물가도 덩달아 상승한다. 어쩌면 이러한 연쇄 효과는 일본 경제를 장기침체로 이끈 주범인 ‘물가하락(디플레이션)’으로부터 벗어나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일본의 일손 부족은 “호경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인구 문제로 발생한 것”이라는 견해가 더 많다. 일각에서는 “저출산에 따른 일손 부족이 일본 경제성장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물가상승이 임금상승을 크게 웃돌아 소비가 억제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일본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지난 6월, 아베 정부는 여성과 외국인 노동력을 적극 활용하는 정책을 새로운 성장전략에 포함시켰다. 우선, 개발도상국의 인재들이 일본에서 일하면서 기술을 배우는 ‘외국인 기능실습제도’를 개편한다. 대상 업종을 간병 등으로 확대하고, 체류기간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한다는 게 골자다. 특히 인력 부족이 심각한 건설업과 조선업은 그 기간을 5~6년으로 한다. 또 여성 인력의 취업을 촉진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도 대폭 검토할 예정이다.
기업들도 일손을 붙잡기 위해 여러 가지 자구책을 모색 중이다. 그중에서도 계약직 사원을 정규직화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스타벅스재팬은 이미 계약직 사원 800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유니클로도 시간제 및 단기 근로자 1만 6000여 명을 2~3년 내에 정규직화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항공사 전일본공수(ANA)도 1995년 도입한 승무원 계약직 채용제도를 폐지, 올해부터는 승무원 전원을 정규직으로 뽑는다.
독자적인 대책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계약기간이 한정된 근로자가 3~6개월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면 특별 수당을 준다. 숙련 근로자를 붙잡겠다는 것이다. 또 최근 일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타미는 아르바이트생이 자동차로 통근하는 것을 인정하고 주차 요금 등을 보조할지를 검토 중이다.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노인대국’이 된 일본. 그동안 말로만 우려했던 인구감소 문제가 이제 현실로 바짝 다가서고 있다. 사실상 일본 경제의 운명은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