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고려대와의 결승전에서 연세대 정재근 감독이 판정에 항의하던 중 심판의 얼굴을 들이받아 심판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국제대회 결승전에서 심판얼굴을 머리로 들이받아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선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2014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대회가 벌어졌다. 대한농구협회에서는 ‘한국 남자 농구 및 프로농구의 근간인 대학농구의 세계적 경쟁력을 제고하고 세계 우수대학 팀들과 교류를 통한 대학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이번 대회를 개최한다’는 거창한 취지를 밝혔지만 중국, 대만, 필리핀, 미국 등 7개국에서 모인 대학팀들의 수준은 기대 이하였다.
이 대회에서 A조에는 고려대가 B조에 연세대가 포함됐고, 두 팀은 조별예선전을 치른 끝에 결승전에 맞붙게 되었다. 친선대회라 성적에 신경 쓰지 않고 ‘몸풀기’ 차원으로 대회에 임했던 두 팀은 공교롭게도 결승전에서 붙는 바람에 더 이상 친선전이 아닌 라이벌전이 되고 만 것.
경기는 결승전답게 연장전까지 벌이며 명승부가 펼쳐졌다. 그러나 연장 종료 2분을 남기고, 앞서 나가던 연세대가 고려대와 동점을 이뤘고, 승부가 뒤집어지는 상황에서 정재근 감독이 심판이 파울을 불지 않는다며 코트에 난입, 심판을 때리려는 제스처를 취했고, 다른 심판한테는 머리를 들이받는 충격적인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다. 해당 심판은 즉각 정 감독의 퇴장을 명령했다. 하지만 분이 풀리지 않은 정 감독은 심판에게 폭언을 내뱉었고, 작전시간 중 고려대의 추격을 허용한 선수들에게 심한 욕설을 내뱉는 장면이 지상파 중계를 통해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달되었다.
결국 정 감독은 연세대 체육위원회로부터 직무 정지 조치를 당했지만, 방송을 통해 사건을 접한 농구 팬들은 이성을 잃은 정 감독의 행동에 엄청난 비난을 퍼붓고 있다.
정 감독은 왜 이렇게 흥분을 하게 됐을까. 그의 측근은 “상대가 라이벌 팀 고려대였고, 한 번은 꼭 이기고 싶었던 정 감독의 욕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감독을 맡은 지 3년 동안 정 감독은 고려대를 단 한 번도 이기질 못했다. 대학농구보다 더 중요시했던 연고전에서도 번번이 패했고, 각종 대회에서 고려대를 만나면 꼬리를 내려야 했다.
그런 가운데 아시아 퍼시픽 대학농구 결승전에서 고려대와 다시 붙게 된 정 감독으로선 이 경기만큼은 어떻게 해서라도 잡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앞서의 정 감독 측근은 “이 대회 이후로 대학농구 플레이오프도 남았고, 연세대와 고려대의 정기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번 경기에서 이기면 자신감을 갖고 다음 대회에 임할 수 있다는 생각이 한몫했을 것이다. 정 감독으로선 그 어느 때보다 승리가 절실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 감독이 지적한 파울은 파울이 아니었다. 정 감독이 파울이라고 착각을 했던 것이다. 그걸 파울이라고 우기며 심판을 향해 달려들었고, 박치기 사건까지 저지른 정 감독은 지도자 인생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정 감독과 친분을 유지하며 고려대를 정상에 올려놓은 이민형 감독은 이번 정 감독의 일과 관련해 “안타깝기 그지없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지난 11일 연세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여드려서는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잘못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나 자신도 실망스러웠고 모든 책임을 통감한다. 어떠한 질책도 달게 받겠다. 황인태 심판에게 죄송하다”며 이어 “연세대 감독직을 사임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정재근 감독은 직무정지 상태다. 그가 실제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기 위해서는 연세대 인사위원회의 후속결정이 뒤따라야 한다. 정 감독은 기자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측근을 통해서만 “순간적으로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죄송하다.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을 전달해왔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