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우트들의 임무가 그만큼 막중하다. 프로야구 수준이 높아지면서 지명선수가 입단 첫 해부터 빛을 보는 사례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3∼4년 뒤의 장래성까지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고르고 골라 뽑은 선수가 1군에서 제 기량을 뽐내는 순간, 비로소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은 두 발을 뻗고 미소를 지으며 잠을 청한다. ‘잘해도 본전, 못하면 역적’이라 더 힘든 프로야구 스카우트들. 그들의 하루와 보람, 그리고 애환을 파헤쳐봤다.
한 스카우트가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1년 내내 전국 떠돌아
재일교포인 두산 송일수 감독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에서 스카우트로 활동했다. 그만큼 선수를 보는 눈이 남다르다. 감독감으로 인정받은 비결 가운데 하나다. 대부분의 구단은 은퇴한 선수들 가운데 시야가 넓은 인물들을 스카우트로 채용한다. 보통 구단마다 다섯 명 정도의 스카우트팀이 꾸려진다. 팀장급은 대부분 그 분야에서 10년 이상 잔뼈가 굵은 인물들. 현장에서 직접 유망주들을 지켜보고 육성해왔던 2군 감독 출신들도 많다.
스카우트들은 1년 내내 전국을 누벼야 한다. 전국 고교야구대회는 물론이고, 지역예선과 학교 연습경기까지 빠짐없이 챙겨본다.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 내후년을 대비해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해서다. 오늘은 부산, 내일은 광주, 모레는 대구로 이어지는 살인적 일정. 그러나 “어린 선수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과정을 눈으로 직접 봐야한다”는 이유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12월 한 달을 제외하면 늘 출장의 연속. 정작 자신의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은 지켜보지 못한다.
지난해 대한야구협회 집계 기준으로 야구부를 운영하는 대학교는 29개, 고등학교는 57개다. A 구단 스카우트는 “시즌 초에 모든 학교를 한 번씩 다 본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약팀부터 먼저 둘러보고 핵심 팀을 분류한다. 사실 저학년 때부터 선수들을 지켜봤기 때문에 지명 후보들도 어느 정도 결정돼있다”고 했다.
발품뿐만 아니라 정성도 필요하다. B 구단 스카우트팀장은 현재 마무리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수년 전 C 고교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훈련 때 배팅볼 투수를 자청했고, 전지훈련까지 따라갔다. 선수의 훈련이 끝나면 밥을 사주고 집에 데려다줬다. 선수의 아버지에게도 끊임없이 안부 전화를 건 것은 물론이다. 다행히 계약에 성공해 보람을 느꼈지만, 이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도 허다하다.
지명회의 시기가 다가오면 눈치싸움도 치열해진다. D 구단 스카우트는 “거짓정보도 많이 흘린다”고 고백했다. E 구단 스카우트는 “어차피 좋은 선수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우리 팀에 어떻게 데려올지를 고민한다”고 귀띔했다. ‘F 팀은 왼손투수가 부족하고, G 팀은 몇 년간 외야수를 뽑지 않았다’는 분석도 해놓아야 상대팀 카드를 예측할 수 있다. E 구단 스카우트는 “지명선수가 결정되면 일부러 학교에 찾아가지 않고 관심 없는 척한다. 그래서 스카우트들끼리는 진실을 말해도 서로 안 믿을 때가 많다”며 웃었다.
그렇게 애써 뽑은 선수가 펄펄 날아도 칭찬은 별로 못 받는다. 다들 “현장에서 잘 키운 덕분”이라고 해서다. 반대로 몇 년 간 성장하지 못하면 “잘못 뽑은 탓”이라고 한다. E 구단 스카우트는 “우리 팀에서 성장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지나쳤는데 타 팀에서 잘할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보람은 있다. D 구단 스카우트는 “지명된 뒤 부모님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어린 선수들을 보면서 나도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귀띔했다.
# 당장 성과를 내야 하기에 더 힘든 용병 스카우트
사실 한국 야구 경험이 없는 용병은 신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래를 보고 뽑는 신인들과 달리, 용병은 당장 핵심 전력으로 활약해줘야 한다. 일반 선수들보다 훨씬 많은 몸값도 투자한다. 그만큼 실패했을 때의 부담이 크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현대, LG, 넥센에서 8년간 용병 스카우트로 활약했다. 외국인선수를 살피고 고르고 영입하는 일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염 감독은 “5년은 해봐야 노하우가 생긴다. 시즌 중에 대체 외국인선수를 뽑는 일이 특히 더 어렵다”고 했다.
스카우트들은 구단 안팎의 인맥을 활용해 자체 외국인선수 후보 리스트를 작성한다. 당연히 같은 선수가 여러 구단의 리스트에서 이름을 올리는 일이 잦다. 트리플A 투수들 가운데 퀵모션, 평균 투구이닝, 이닝당 안타 허용률, 볼넷 대비 삼진 비율이 좋은 선수들이 주로 선택된다. 후보가 10여 명으로 압축되면 비행기에 오른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2∼3월), 트리플A 경기(7∼8월), 중남미 윈터리그(11∼12월)가 주로 찾는 시기다. 한 번만 보고 판단하면 실패 확률이 높다. 염 감독은 “일단 처음에는 60여 개의 마이너리그 팀을 꼼꼼하게 둘러봐야 한다. 리스트에 있는 선수를 보러 갔다가 다른 선수가 눈에 들어와 뽑는 일이 더 많다”고 했다. 가장 허탈한 경우는 꼭 직접 보려고 미국까지 찾아간 선수가 경기에 나오지 않을 때다. 염 감독은 “비행기 시간은 다가오는데, 에이전트가 아예 만나지도 못 하게 할 때도 있다”고 귀띔했다.
유력한 후보를 점찍은 후에도 할 일은 많다. 일단 그 선수가 소속된 팀의 메이저리그 40인 엔트리를 확인해야 한다. 실제 경기에 출전하는 25인 로스터에 들어있지 못해도, 40인 엔트리에 속한 선수는 언제든 빅리그로 콜업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잘 떠나려 하지 않아서다. 베테랑 용병 스카우트들은 그동안 에이전트나 구단과 쌓은 친분을 바탕으로 그 선수의 방출 예정 여부나 금전적인 문제를 몰래 전해 듣는 이점을 누리기도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성품과 자세다. 염 감독은 “외국인선수를 잘 뽑으려면 기량을 떠나 멘탈과 마인드가 중요하다.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겠다는 절실함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구단이 트레이드 머니를 너무 많이 요구하거나,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이 한눈에 보이는 선수들도 협상이 쉽지 않다. 용병 선수들을 감별하는 노하우도 구단별로 다르다. 예를 들어 넥센 김치현 과장은 현지에서 선수와 식사를 함께하면서 말투와 태도, 교양을 살핀다. 넥센의 용병들이 대부분 차분하고 팀에 잘 융화되는 이유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역대 핫한 스카우트 전쟁은 선동열 해태 입단 땐 프로-아마 극한대립 전설적인 투수 선동열(KIA 감독)은 해태 입단 스토리도 ‘레전드급’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프로와 아마의 감정대립이 심해지자 양측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계약을 깨는 선수는 2년간 징계한다’는 내용의 협정서를 만들었다. 그러나 해태가 선동열을 데려오기 위해 그 규정을 위반했다. 1985년 고려대를 졸업하고 한국화장품에 입단한 선동열은 3월 16일 한전과의 실업야구 개막전에 등판했다. 그러나 3월 25일 한국화장품 숙소에서 빠져나와 해태와 계약했다. 화가 난 대한야구협회는 프로경기 출전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자격무효 소송을 걸었다. 이 소송이 프로-아마 양대 기구의 협상으로 나중에 취하되면서, 선동열은 7월 이후에야 프로 선수로 출전할 수 있었다. ‘황금의 92학번’들이 대거 고교 졸업을 앞뒀던 1991년은 역대 가장 뜨거웠던 신경전이 벌어진 해로 꼽힌다. 특히 서울 연고의 LG와 OB는 초고교급 투수들인 임선동(휘문고), 조성민(신일고), 손경수(경기고)를 두고 치열한 눈치작전을 펼쳤다. 두 팀이 주사위 던지기로 1차지명 우선권을 가리던 때였다. ‘주사위 한 번만 잘 던져도 스카우트팀의 1년이 편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OB가 먼저 손경수를 만났다. 손경수를 미리 포섭해놓으면, 주사위 던지기에서 져도 조성민이나 임선동 중 한 명을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계약금 1억원에 합의도 끝냈다. 그런데 갑자기 손경수의 아버지가 도장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사인을 거부했다. 이후 OB 스카우트팀은 LG가 5000만 원을 더 주고 손경수와 계약했다는 첩보를 들었다. OB는 다시 임선동을 만나 현금 3억 원이 든 가방을 건넸다. 임선동도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3억 원만 주면 프로에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싶다”며 그 돈을 거부했다. 그 소식을 들은 LG는 임선동에게 1억 원을 더 얹은 4억 원을 제시했다. 주사위 던지기에서 이겨 우선권을 잡은 후에도 곧바로 임선동을 지목했다. 그러자 OB는 조성민과 손경수 사이에서 고민하다 LG와 몰래 계약했다는 손경수를 지명했다. 조성민을 찍으면 임선동과 손경수를 모두 LG에 뺏길 것 같아서였다. 결국 양 팀 모두 승자는 되지 못했다. 임선동은 결국 연세대로 갔고, 졸업 후에는 일본 다이에 호크스에 입단하겠다고 나섰다. LG의 1차지명권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방해한다고 주장하며 송사까지 벌였다. LG는 긴 공방 끝에 결국 계약금 7억 원에 임선동을 데려왔지만, ‘제2의 선동열’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OB로 간 손경수 역시 기대 이하의 성적을 올리고 은퇴했다. 반면 조성민은 두 팀의 눈치작전 끝에 서울 구단의 1차 지명을 피해 원하던 고려대로 진학했고, 4년 뒤 자유롭게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해 일본에 진출했다. [은] |
용병 농사에 울고 웃고 신생 NC 지각변동 ‘잘 뽑았다’ NC 중심타선에 가세한 테임즈는 팀에 완벽하게 적응한 모습이다. 올 시즌 프로야구는 외국인선수 보유수를 3명으로 확대했다. 지난해까지 두 명을 보유하고 두 명이 출전했다. 올해는 세 명을 보유하되 한 경기에 두 명까지만 출전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대신 모든 팀이 한 명 이상의 용병은 무조건 타자로 뽑아야 한다. 가장 큰 효과를 본 팀이 바로 NC다. NC는 올해까지 신생팀 혜택을 받아 용병 네 명 보유, 세 명 출전이 가능하다. 그런데 네 명의 외국인선수가 모두 실력과 팀 융화력을 두루 갖췄다. 지난해부터 뛰었던 찰리와 에릭은 물론, 새로 온 투수 웨버도 제 몫을 해주고 있다. 용병 원투스리 펀치가 흔들림 없이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니 거칠 게 없다. 중심타선에 가세한 테임즈도 베테랑 이호준, 신예 나성범과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고 있다. NC는 덕분에 1군 진입 두 번째 시즌 만에 상위권으로 훌쩍 뛰어 올랐다. 원래 강했던 삼성도 외국인선수들의 선전으로 더 무시무시한 팀이 됐다. 용병에이스 밴덴헐크와 1번타자 나바로는 삼성이 예년보다 빨리 선두로 치고 나가는 데 큰 힘을 보탰다. 롯데 역시 선발 원투펀치 옥스프링과 유먼의 활약에 거포 히메네스까지 터져 주면서 4강권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최하위 한화는 용병 농사부터 실패했다. 클레이는 일찌감치 퇴출됐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앨버스 역시 나갔다 하면 난타당하기 일쑤다. 타자용병 피에가 올스타 베스트10으로 뽑히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한화에게 진짜 필요한 건 많은 이닝을 던져줄 수 있는 선발투수 용병이다. SK 역시 빅리그 100홈런 타자인 스캇을 영입하고도 투자 대비 효과를 전혀 보지 못했다. 오히려 스캇이 팀 분위기를 해쳤다는 부정적인 평가만 들려온다. 한국무대 2년차 투수 레이예스도 이미 퇴출됐다. 그 파장은 팀 순위가 최하위권으로 하락하는 아픔으로 이어졌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