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지난해 12월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말 가운데 `It’s never been a good bet to bet against America`를 둘러싸고 국내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로 번역해 헤드라인 뉴스로 보도하면서 마치 미국이 박대통령의 친중국 외교에 경고를 보낸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 말의 정확한 뜻은 “(한국은) 미국이 한 말을 어길 것으로 베팅하는 것은 좋지 않다”라는 의미다. 즉 “(한국은) 미국이 한 말을 불신해서는(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bet against는 구어체로 ‘반대편에 투자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하지않을 것으로 내기하다’ 즉, ‘~에 대해 불신하다’, ‘~에 대해 희망을 접다’, ‘~에 대해 신뢰하지 않다’라는 뜻이다.
지난해 교과서, 문학 및 학술서적, 영화, 가요, 외교문서, 언론보도 등 우리 주변에서 발견되는 광범한 오역사례를 정리한 ‘오역의 제국-그 거짓과 왜곡의 세계’를 펴낸 언론인 출신 서옥식(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전 연합뉴스 편집국장)씨가 새로운 오역사례들을 추가하고 내용의 일부를 수정, 보완한 개정판을 내놓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국내에서의 오역 수준과 범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말한다. 교과서는 물론 각종 서적, 영화, 가요, 외교문서, 언론보도 등에 적지 않은 오역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이나 대학입시를 위해 외우던 프랑스혁명 3대 정신중 하나라는 ‘박애’(博愛)는 실제로는 내 편과 네 편, 적과 동지를 갈랐던 자기들끼리의 차별적인 사랑 즉, 형제애, 동지애를 뜻하는 불어 fraternité(영어 fraternity)의 오역이지만 아직도 교과서 등 각종 학습서에 ‘전 인류를 인종, 국가, 성별, 종교, 계급의 차별 없이 사랑함’이란 의미로 설명돼 있다.
피겨 퀸 김연아가 소치 올림픽에서 아쉽게 은메달을 차지한 것은 심판들이 러시아 피겨 선수에게 점수를 몰아줬기 때문이라는 보도는 모두 오역이 부른 촌극이었음을 개정판은 지적한다. 또한 국내 천주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를 결정적인 대목에서 오역, 출간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 ‘이방인’(L‘etranger)을 둘러싸고 번역문학계와 출판계, 서점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오역 논쟁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승객과 배를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한 이준석 선장과는 달리 침몰하는 배와 함께 최후를 마친 영국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의 에드워드 스미스(Edward John Smith)선장이 국내외 언론에서 조명 받고 있지만 정작 스미스 선장의 구조 지시가 오역되는 바람에 구조율이 저조한 사례를 지적하고 있다.
도서출판 도리, 2만5000원, 664쪽
주성남 기자 ilyo11@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