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래 효성 회장(왼쪽)이 재판을 받고 있는 등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형제의 난’이 2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다. 효성그룹 본사 전경. 구윤성 기자
최근 효성그룹에는 좋지 않은 일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지난 6월 26일 금융감독원은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효성캐피탈과 효성 임원들에게 징계를 내렸다. 조현준 사장 등 효성 임원들이 2004년부터 2010년까지 효성캐피탈에서 4300억 원을 부당 대출받았다는 이유에서다. 조 사장 등 효성 임원들이 효성캐피탈을 마치 사금고처럼 이용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효성캐피탈의 전·현직 대표이사 2명에게 문책경고를, 조현준 사장·조현상 부사장·조현문 전 부사장에겐 주의적 경고를, 효성캐피탈엔 기관경고를 내렸다. 아들 3형제에 이어 조석래 회장도 지난 9일 증선위의 해임권고 조치를 받았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집안싸움’이다. 잠잠했던 형제간 다툼이 재발한 것이다. 조 회장이 증선위의 해임권고 조치를 받은 날인 지난 9일 재계에는 조 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이 지난 6월 이미 효성 계열사인 트리니티에셋과 신동진의 최 아무개 대표를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트리니티에셋이 효성의 또 다른 계열사인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에 자금을 지원하고 이를 출자전환하면서 회사에 66억 원가량의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또 트리니티에셋이 해외 페이퍼컴퍼니가 인수한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의 신주를 매입하는 과정에서도 42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했다. 조현준 사장이 최대주주인 트리니티에셋에서만 100억 원이 넘는 배임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의 최대주주 역시 조현준 사장이다.
조 전 부사장은 또 그룹의 부동산 관리를 담당하는 계열사인 신동진이 부실 계열사를 인수하면서 수십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효성그룹에서 나온 후 보유하고 있던 효성 지분 7%를 대부분 매도했으나 트리니티에셋 지분 10%와 신동진의 지분 10%는 남겨뒀다. 조 전 부사장은 “그룹을 떠나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려 했지만 상상할 수도 없는 음해와 모욕을 당해왔다”며 “모든 불법행위들을 바로잡기 위해 고발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비록 두 회사의 대표를 고발하긴 했지만 속내는 형과 동생을 고발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트리니티에셋과 신동진의 최대주주가 각각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이기 때문이다. 조 전 부사장 측은 두 회사의 횡령·배임이 조 사장과 조 부사장의 지시·묵인 아래 이뤄진 일로 결국 두 사람이 이득을 취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석래 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데다 오너 일가가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는 등 가뜩이나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효성은 조 전 부사장의 검찰 고발에 발끈했다. 효성 측은 “적법한 경영판단에 따라 이루어진 계열사의 정상적인 투자활동으로 향후 검찰 조사 과정에서 적법하다는 것이 소명될 것”이라고 밝혔다. 효성 관계자는 “지난해 계열사 가처분 소송에서도 당사가 대부분 승소했는데 또 다시 같은 내용으로 형사고소까지 했다”며 “이사로서 경영에 전반적으로 참여했던 사람이 자세히 내용을 알고 있을 텐데 퇴직하고 나서 몸담고 있던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계속하는 것은 불순한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효성도요타, 더클래스효성, 트리니티에셋, 신동진 등의 회계장부 열람 가처분 소송을 낸 바 있다. 효성 측은 “대부분 승소했다”고 밝혔지만 조 전 부사장 역시 ‘일부 열람 결정’을 받았으며 이번 검찰 고발은 일부 열람 결정을 받은 이후 회계장부를 분석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조 전 부사장은 “등기이사로 이름만 올라 있었을 뿐 경영에서 배제돼 있었다”며 “어떠한 의사결정에 참여한 바 없으며 이사회 회의록에 내 도장이 찍혀 있다면 허위이며 추가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효성가 3형제의 법적 다툼이 또 다시 불거지자 재계에서는 효성의 ‘형제의 난’이 2라운드에 접어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효성의 형제의 난이 본격화한 것은 지난해 2월 조현문 전 부사장이 효성에서 나오면서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대부분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로 6.2~9.7% 할인된 가격에 기관투자자에 매각하면서다.
조석래 회장이 효성 지분 10%가량을 보유한 가운데 세 아들, 즉 조현준 사장·조현문 전 부사장·조현상 부사장이 나란히 7%씩 지분을 나눠 갖고 있던 상태에서 조 전 부사장이 회사에서 나가자마자 보유 지분을 친인척이 아닌 다른 쪽에 한꺼번에 넘겼다는 것은 회사 내에서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이는 또 조 전 부사장이 형제간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조 전 부사장의 블록딜 매각은 이에 대한 보복 형식으로 보이기도 했다.
무려 7%의 지분이 한꺼번에 빠져나가자 효성 오너 일가의 지분율은 33%에서 26%로 확 줄어들었다. 경영권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증권가에서는 효성그룹 지배구조 문제가 부각됐다. 효성 오너 일가는 경영권 안정을 위해 지분 매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인 조 회장을 비롯해 효성 오너 일가에서는 조 전 부사장의 행동을 ‘도발’로 여기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이 서로 장내매수를 통해 앞 다퉈 지분 매입에 나선 결과 지난 2일 현재 조 사장이 10.33%, 조 부사장의 지분이 10.05%로 늘어났다. 지난 1년여 동안 각각 3%포인트(p)씩 지분을 확대한 것. 효성 오너 일가는 또 아직 미성년인 어린 4세들까지 동원해 지분을 늘려나갔다. 그 결과 지난해 조 전 부사장이 매각한 지분을 대부분 만회했다.
지분 매입 과정에서 또 다른 대목이 흥미를 끌었다. 장남 조 사장과 삼남 조 부사장이 후계구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지분 매입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 효성 측이 “차남의 지분을 회수한다는 차원에서 두 형제가 협의 하에 매입하고 있다”고 거듭 밝혔음에도 재계에서는 두 사람의 경쟁구도를 허물지 않고 있다. 지난 2일 효성은 공시를 통해 최대주주가 조석래 회장에서 조현준 사장으로 변경됐다고 밝혔다. 조 사장의 지분이 조 회장(10.32%)보다 0.01%p 많아졌기 때문이다.
효성의 ‘형제의 난’이 불거진 지난해 2~3월까지만 해도 막내인 조 부사장보다 지분이 적었던 조 사장이 효성의 최대주주로 올라서자 재계 일부에서는 효성의 후계구도가 대략 정리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재계 고위 인사는 “조 회장이 건강 문제도 있고 해서 조만간 후계 승계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장남인 조현준 사장에 무게중심이 쏠린 상태에서 조현상 부사장이 현재 맡고 있는 사업부를 떼어내 가지 않겠느냐”며 향후 계열분리를 점쳤다. 조 부사장은 효성의 산업자재PG(부문)장을 맡고 있다.
올해로 만 79세인 조 회장은 전립선암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0년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 자리에서도 물러난 조 회장이 또 다시 건강상 문제가 생기자 효성의 후계 승계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현재 차남인 조현문 전 부사장은 효성 후계 구도에서 멀어진 상태다. 지난해 이미 퇴사한 데다 보유 지분마저 모두 매각한 탓이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이 계속 형과 동생을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조 전 부사장은 앞서 설명했듯 효성 계열사인 트리니티에셋과 신동진의 지분 10%씩은 보유하고 있는 상태다. 또 효성 지분을 매각하면서 1200억 원가량의 현금도 마련했다. 이러한 점들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