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 소유로 알려진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건물. 최 씨는 수백억 원대 부동산을 보유한 자산가다. 작은 사진은 정윤회 씨의 딸이 마장마술 시합을 하는 모습(사진제공=시사저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최 씨는 서울가정법원에 신청서를 내기 직전인 지난 2월 이름을 ‘서원’으로 바꿨다. 또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신사동 빌딩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같은 달 은행으로부터 3억 원가량의 돈을 빌렸다. 이 돈은 특별한 수입원이 없는 정 씨의 생활비 명목으로 건네진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상 위자료인 셈이다. 정 씨 부부는 법원을 통해 두 달간 이혼 조건을 논의했고 결국 5월 이혼했다. 이 과정에서 정 씨는 한 차례 법원에 나왔지만 최 씨는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최 씨와 결혼 후 제과점과 일식집을 운영하던 정 씨는 1998년 박 대통령이 재·보궐 선거에 출마할 당시 입법보조원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2002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 총재로 취임했을 때는 공식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2004년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2012년 대선 캠프 때 박 대통령 비선 조직을 이끌고 있다는 의심을 받았다. 논란이 끊이지 않던 정 씨에 대해 박 대통령은 “최 목사 사위란 것을 알았다. 1998년 선거 때 정 씨가 돕겠다고 해서 순수한 인연이 된 것이다. 이후 입법보조원으로서 도와준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2004년 이후 정 씨 흔적은 여의도 주변에서 간혹 포착되곤 했다. 정 씨가 여전히 정치권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정 씨 부인 최 씨 목격담은 드물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정 씨 부부가 거주하던 신사동 빌딩의 한 관리인은 기자에게 “최 씨는 거의 보지 못한다. 정 씨가 빌딩 관리를 맡고 있다. 둘이 같이 다니는 것은 한 번도 못 봤다”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대통령 친인척 및 주요 인사를 관리하는 청와대 사정라인 관계자와 여권 핵심부 인사들 말을 종합해보면 정 씨 부부 사이는 3~4년 전부터 다소 틀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대선을 앞에 두고 정 씨가 정치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최 씨가 못마땅해 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또 승마 선수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중학생 딸의 진로를 놓고서도 부부는 이견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씨가 지인들에게 “부인과 관계 회복이 잘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는 말도 들린다.
최 씨가 이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 역시 강남의 한 고등학교로 진학해 승마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딸 문제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딸의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는 언론 보도와 야당 의원 폭로가 나오자 충격을 받고 정 씨와 헤어지기로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사정라인의 한 관계자는 “정 씨 부부가 이혼을 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나름대로 사정을 알아 봤다”며 “최 씨는 아직 학생인 딸이 언론에 오르내리자 더 이상 정 씨와 살기 힘들다고 마음먹은 것 같다. 승마협회 업무에 부당하게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던 정 씨 때문에 딸까지 고통을 받았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 씨 부부가 이혼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세간의 관심은 이혼 조건에 쏠렸다. 딸 양육권은 최 씨가 갖고, 정 씨는 재산분할 및 위자료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일방적으로 정 씨에게 불리한 조건이다. 정 씨는 평소 승마업계에서 ‘딸 바보’로 불릴 만큼 딸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딸이 출전하는 경기는 물론, 소속돼 있는 훈련장에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정 씨와 친분이 있는 승마업계 고위 관계자는 “딸의 양육권을 포기했다는 것은 그만큼 정 씨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씨가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최 씨는 강남구 신사동 7층 빌딩을 포함해 수백억 원대 가치의 부동산을 갖고 있다. 모두 최 씨 명의로 돼 있고, 정 씨 것은 없다. 정 씨는 강원도 평창 일대의 부동산을 최 씨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었지만 지난 2011년 딸에게 전부 증여했다. 이처럼 일정한 소득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정 씨가 부인에게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은 점을 놓고 호사가들은 이혼 귀책사유가 정 씨에게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이혼조건 중 가장 특이한 것은 ‘결혼 기간 중 있었던 일을 누설하지 않기로 하고, 이혼한 뒤 서로 비난하지 말자’는 조항이다. 이는 주로 할리우드 스타 커플들이 이혼할 때 맺는 계약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정 씨가 양육권과 재산권을 포기한 것과 맞물릴 것이란 관측이다. 즉, 정 씨가 중대한 실수를 저질러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이를 함구해달고 요구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사정당국 주변에선 정 씨의 부적절한 사생활과 관련된 몇몇 소문들이 나돌고 있다.
정치권에선 오히려 최 씨가 정 씨에게 이러한 조건을 내걸었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오래전부터 정 씨와 알고 지냈던 친박계의 한 인사는 “정 씨는 정치적 감각이 상당히 뛰어나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적으로 만들어선 절대 안 되는 사람”이라며 “최 씨의 경우 박 대통령과 인간적인 교감을 갖고 있지만 정 씨는 조금 다르다. 정 씨는 최 씨를 통해 박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만났을 뿐이다. 최 씨 입장에서는 이혼한 정 씨가 결혼 생활에서 알았던 박 대통령 비밀들을 폭로하는 것이 가장 염려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정 씨 부부가 정략적으로 이혼을 선택했을 것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정 씨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비선에서 자신과 가까운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을 통해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막후 비서실장’이라고 불렸다. 이에 대해 정 씨는 “박 대통령과는 2004년 이후 거리를 두고 있다”며 부인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최근엔 ‘만만회(이재만·박지만·정윤회)’로 꼽히며 부실 인사 장본인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정 씨와 박 대통령 간 연결고리는 바로 최 씨다. 최 씨는 정치에 첫 발을 내딛는 박 대통령에게 자신의 남편을 소개해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정 씨가 이혼을 하게 되면 박 대통령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끈은 사라지게 된다. 끊임없는 논란에 휩싸였던 정 씨로서는 이혼을 한 번쯤 떠올려봄직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앞서의 친박 인사는 “정 씨가 농담조로 ‘이민을 가든 이혼을 하든 해야지…’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본인도 좀 홀가분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면서 “정 씨 부부는 지난 2007년 대선 경선을 앞두고 아예 외국으로 나가 있었던 적이 있다. 당시 박 대통령에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계속해서 정 씨가 도마에 오르자 아예 이혼을 통해 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지우려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7년 이후 ‘국회의원 박근혜’ 비서실장을 그만두고 야인으로 생활하는데 생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는 질문에 “아내가 강남에 빌딩을 갖고 있어 그 수입으로 생활한다”고 답한 바 있다. 이미 이혼이 성립됐고, 또 별다른 재산도 받지 못한 정 씨의 상황과는 다소 배치되는 답이다. 위장이혼설은 정 씨가 딸의 양육권 및 재산권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포기했다는 것과 맞물려 점차 확산되는 기류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