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가로수에 연간 수천 리터의 농약을 뿌려 관리하고 있다. 여기엔 발암물질도 수두룩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들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꼭 농약을 써서 가로수를 관리해야 하는 걸까.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구청의 직원은 “특정 해충이 지나치게 번식하는 돌발해충이나, 나무에 치명적인 소나무재선충 같은 경우는 꼭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평소에는 벌레를 잡아달라는 민원들이 들어오기에 일상적으로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로수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에 벌레와 새의 쉼터가 된다. 그러나 도시에 공존하는 벌레를 반길 시민들이 많지 않기에 평소에 농약을 쳐 관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해충 관리 방식과 농약 선정에는 조금 더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각 구청이 공개한 약품목록에는 발암가능물질과 발암의심물질이 포함된 농약도 있었다. 발암가능물질이란 동물실험결과에서는 발암가능성이 증명됐으며 인간에게도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류된 물질이다.
강남구, 양천구, 금천구에서 사용하는 ‘다이센엠-45’는 발암의심물질 2등급으로 분류된 ‘만코제브’ 성분이 들어있다. 이밖에도 ‘디프록스’는 구로구, 용산구, 영등포구, 서초구 등 8개 구에서 사용했다. 같은 성분의 ‘디프’ 역시 양천구와 중구에서 쓰고 있었다. 서초구 역시 발암의심물질이 포함된 ‘섹큐어’라는 약품을 사용했다. 특히 약품들은 나무에 주사하는 방식이 아닌 분사하는 방식으로 쓰여 시민들이 노출될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약의 발암가능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지 강남구청에 물어봤다. 강남구 공원녹지과 한 관계자는 “주렁이 발암가능물질인 건 미처 몰랐다. 서울시에서 해충방제용 약품 관련 자료를 받아 확인하고 독성이 낮은 제품만 사용하기에 거기 특이사항이 적혀있지 않으면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저독성, 보통독성이라는 문구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저독성이라도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한 게 아니기 때문에 성분을 잘 살펴야 한다.
발암물질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사용한 자치구도 있었다. 서초구는 “‘섹큐어’와 ‘디프록스’가 발암물질로 분류된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사용지침에 따라 100배 정도 희석해서 사용하니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걸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농약전문가인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이윤근 박사는 “희석정도와 농약의 독성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시민들이 농민처럼 농약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건 아니니 가로수 농약사용과 암 발병률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이 박사는 “어린이의 경우 체구도 작고 예민하기에 소량의 독성에 노출돼도 영향이 갈 수 있다. 가로수를 방제할 때 유치원, 어린이집 인근은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 또 농약을 뿌릴 때 근처에 가는 걸 막는다든지 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로수 방제용 농약은 인간뿐 아니라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꿀벌은 식물 번식의 70%의 역할을 담당해 가장 중요한 곤충이다. 때문에 EU는 니코틴계 살충제인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이 든 농약 사용을 금지하고 나섰다. 이 성분은 여왕벌 수를 85% 감소시키고 꿀벌들의 건강을 해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25개 자치구 전체에서 사용하는 ‘어드마이어’는 이 성분이 포함된 대표적인 농약이다.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도심양봉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순적인 상황인 것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자치구에서는 “수간주사로 사용하니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수간주사란 나무 수액이 흐르는 길을 따라 농약을 공급해 효과를 발휘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어드마이어’는 전량 수간주사로 플라타너스 등의 나무에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살포방식과 생태교란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어차피 약효는 나무 전체를 통해 번지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얘기했다.
물고기에 영향을 미치는 어독성 1급의 농약도 다수 사용되고 있다. 이 약품들은 서대문구, 종로구, 금천구 등 17개 자치구에서 쓰고 있었다. 구로구, 동대문구, 성북구 등에서 사용하는 ‘다니톨’의 경우 생태독성이 가장 낮은 4급이지만, 어독성은 1급이다. 관악구의 방제 관련 담당자는 “하천 주변에는 사용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기한이 지난 약품을 사용하거나, 나무에 사용하지 않는 농약을 쓰는 곳도 있었다. 노원구의 경우 2011년 판매중단된 ‘디프록스’를 올해 3월까지도 2㎏가량 살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약품은 사용기한이 2년으로 전량 폐기했어야 했다. 딸기, 수박 등 작물에 사용해야 하는 농약을 가로수에 쓴 자치구도 있었다. 강남구, 구로구, 은평구 등은 사과, 감귤 등에 사용하는 ‘다니톨’을 플라타너스, 벚나무 등에 사용했다. 서초구에서 사용하는 ‘섹큐어’는 파, 오이 등을 기르는 데 사용하는 약품이다.
농촌진흥청 농약관리실의 임영주 주무관은 “농약에는 적용작물이 다 따로 있다. 이외의 대상에 사용하는 건 불법이다. 자치구에 안내공문을 보냈지만 협조가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농약관리법 시행령 제19조에 따르면 “적용대상 농작물에만 사용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더 큰 문제는 가로수에 농약을 사용하는지 모르는 시민들이 많다는 점이다. 송파구에 사는 이 아무개 씨(36)는 “가로수에도 농약을 치는지 몰랐다. 가로수는 관상용이 아니라 도시 공기 질 개선을 위한 목적도 있지 않느냐. 거기에 농약을 치면 사람한테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서초구에 사는 정 아무개 씨(30) 역시 “세금으로 농약 뿌리면서 시민들에게 제대로 고지도 안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약을 뿌렸다고 알리는 표지판을 한 번도 보지 못 했다. 발암물질까지 들었다니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분통이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약을 뿌린다는 걸 알고 있는 시민들도 걱정되긴 마찬가지다. 강남구에 사는 이 아무개 씨(33)는 “농약을 치는 건 알고 있었다. 아이가 세 살인데 지나가면서 나무와 꽃 만지는 걸 좋아한다. 찜찜해서 꼭 손을 닦아준다”고 말했다. 송파구에 사는 송 아무개 씨는 “가을에는 떨어진 은행열매 주워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농약 뿌렸다고 표시라도 해줘야지 않나”며 걱정을 표했다.
그렇다면 친환경적으로 가로수 해충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 이에 대해 이윤근 박사는 “친환경적 농약은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 방법으로는 페로몬을 사용한 방제다. 페로몬이란 곤충들 사이에 신호전달을 위해 사용되는 물질이다. 이를 이용해 특정 해충을 유인해 죽이는 방법이다. 또 친환경적인 미생물을 이용한 약품, 천연발효액 등을 뿌려 해충을 없애는 방식도 있다. 이 박사는 “조금만 더 노력을 기울인다면 환경과 시민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전국 가로수 관리 실태 꿀벌 죽이는 ‘생태숲’ 헉! ‘발암물질 농약’을 사용하는 곳은 서울뿐만이 아니다. 경기도 전 지역, 구미, 김천, 부산, 전남 광주 등에서도 발암물질이 포함된 농약을 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 지역에서도 용도에 맞지 않는 농약을 사용해 농약관리법을 위반했고, 어독성이 높은 농약도 다수 사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생태숲에서 꿀벌을 죽이는 원인으로 지목된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의 농약을 이용해 방충 작업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의회 최재연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42종의 농약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중 수원과 평택에서 사용한 ‘매머드’와 ‘베노밀’은 발암의심물질이 포함된 제품이었다. 24개 시군에서는 꿀벌을 죽이는 ‘3총사 농약(이미다클로프리드, 클로티아니딘, 티아메톡삼)’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독성 1급 제품인 ‘로맥틴’과 ‘응애단’ 역시 부천, 안양, 시흥, 이천, 의정부 등 7개 시군에서 사용했으며, 수목대상이 아닌 농약을 사용한 시군도 9개나 됐다. 최재연 의원은 지난 2011년에도 경기도 가로수에 발암물질 농약이 살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에는 맹독성 농약을 사용하는 시군도 있었다. 이후 맹독성 농약을 사용하는 시군은 사라졌지만 3년이 지나도 ‘발암농약’을 살포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김수민 구미시의원은 경북 구미시에서도 발암물질 농약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난 12월 공개했다. 발암가능물질로 이루어진 ‘만루포’ 등을 무궁화 진딧물 방제에 썼고, 어독성 1급 농약과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의 제품도 다수 사용했다. 특히 생태공원으로 유명한 산동 참생태숲에서는 물고기와 벌에 치명적인 약품들을 썼다. 경북 김천에서도 ‘아타라’, ‘스미치온’ 등의 발암물질 농약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시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부산에서는 시민들이 자주 찾는 도심공원에서 고독성 농약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시설공단에서 지난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4~8월에 걸쳐 진구 어린이대공원에 발암물질로 규정된 ‘다이센엠45’가 살포됐다. 또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사용중지를 권고한 ‘포스팜’도 가로수에 90리터 넘게 쓰였다. 광주광역시에서도 어독성 1급 농약을 수십 리터 사용했다. 또한 작물용 농약을 가로수에 뿌려 농약관리법을 위반하기도 했다. 언론의 연이은 지적에 광주시는 지난 17일 가로수에 사용된 농약의 인체 유해성을 분석하고 천연농약 사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