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에는 대학생 커플들이 그들만의 사랑을 나누는 ‘비밀 장소’가 곳곳에 있었다. 영화 <화려한 외출>.
캠퍼스가 넓고 크고, 작은 숲이 많기로 유명한 서울의 A 대학 ‘성지’ 순례는 짜증 섞인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작됐다. 아무 생각 없이 발길을 내디딘 곳에서 여자친구와 열정적으로 키스를 나누던 남자와 눈이 마주친 것. 비가 오락가락하는 흐린 날씨 탓인지 주변이 어두워 서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해 일어난 불상사였다. 허둥지둥 치마를 손으로 끌어내리는 여자를 뒤로하고 재빨리 자리를 옮겼다.
알고 보니 그 장소는 과거부터 캠퍼스 커플의 명소로 이름난 곳이었다. A 대학 교직원 박 아무개 씨(여·42)는 “출근할 때마다 그곳을 지나쳐오는데 한 번은 여자 속옷이 있어 깜짝 놀랐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니 휴지에 콘돔 흔적까지,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가더라”며 “한 번은 야근을 하는데 수위 아저씨가 화가 잔뜩 난 채 캠퍼스 커플을 학생처에 데려왔었다. 얘길 들어보니 그 커플은 학교 ‘명소’뿐만 아니라 교내 곳곳에서 성관계를 하다 여러 차례 걸렸나보더라. 주의를 줘도 말을 안 듣자 결국 학생처까지 데려온 것이었다”고 말했다.
발길을 옮겨 기숙사 인근에 도착하니 한산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과거와 달리 외국인 유학생들이 증가하면서 만들어낸 새로운 풍경이었다. 이들은 방학에도 기숙사에 거주하는 등 캠퍼스를 멀리 떠나지 않았는데 상당히 자유로운 차림새로 학교를 활보하고 있었다. 캠퍼스에서의 음주가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한손에는 맥주병이 들린 채 사람이 지나가든 말든 키스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나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숙사 경비업체 직원은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된다. 밤에 순찰을 돌다 몇 번이나 밖에서 섹스를 하는 유학생들을 봤다. 남녀가 한 방을 쓰지 못하니 밖에서 하나본데 이를 적발하면 한국말을 모르는 척 외면해버리니 방법이 없다. 한 번은 여자친구 방에 몰래 들어가 성관계를 하다 결국 퇴실당한 일도 있었다. 자신들은 성인인데 왜 간섭하느냐 오히려 뻔뻔하게 따지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며 혀를 찼다.
이튿날 또 다른 캠퍼스를 찾아 ‘성지’ 순례에 나섰다. 방학이라 그런지 강의실 대부분은 잠겨 있어 캠퍼스 커플들은 야외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밝은 곳에서 더위를 쫓는 주민들과 달리 캠퍼스 커플들은 온갖 벌레의 공격 속에서도 꿋꿋하게 어두운 수풀 속에서 서로의 애정을 키우고 있었다.
심지어 등산을 방불케 하는 높은 위치에 자리한 건물 뒤편까지도 캠퍼스 커플이 점령하고 있었다. 워낙 가파른 길이라 재학생들도 찾기를 꺼린다는 그곳은 다소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는데 덕분에 캠퍼스 커플에겐 사람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된 듯했다. 그중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벤치에는 여자가 남자의 무릎 위에 앉아 끈적끈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가로등조차 없는 곳이라 남자의 손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지만 여자의 허벅지가 고스란히 드러난 상태였다. 이번엔 기자 역시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녔음에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모른 척 지나치고 싶었지만 그 커플도 흥이 깨졌는지 서둘러 자리를 떠버렸다.
교정에서 사랑을 나누는 남녀 사진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자정이 가까워지자 캠퍼스는 적막함이 가득 찼다. 하지만 도서관만큼은 여전히 환한 불빛을 비추고 있어 발길을 돌렸다. 캠퍼스 ‘성지순례’ 사전조사를 하며 늦은 밤 도서관의 풍경도 충격적이란 정보를 들어 사실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방학임에도 도서관엔 수십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었는데 개중엔 술에 취해 잠을 청하는 학생도 있었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한 학생은 “성관계까지는 목격한 적이 없지만 진한 신체 접촉을 하는 커플은 자주 봤다. 요즘엔 도서관 장애인용 화장실이 인기라더라. 도서관은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니 언제든 찾아와도 되고 화장실은 소리도 신경 쓰이고 좁지만 장애인 화장실은 공간도 넓고 방음도 어느 정도 돼 신경도 덜 쓰인다는 이유에서다. 남녀 공용인 경우도 있어 일을 마치고 나올 때도 주변 눈치 살피지 않아 좋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대화를 나눈 뒤 곧장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갔으나 그날만큼은 아무도 사용하는 이가 없어 아쉬움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기자는 비록 이틀간의 ‘성지’ 순례에서 결정적인 장면을 목격하진 못했지만 직접 대학생들을 만나보니 예상보다 캠퍼스 섹스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 놀라웠다. 아무렇지 않게 새로운 ‘핫 플레이스’까지 공개하는 여학생도 있었다. 이 여학생은 “캠퍼스 섹스엔 동아리방이라는 생각은 고리타분하다”며 “동아리방보다 훨씬 안락하고 스릴 넘치는 여학생 휴게실이 최고다. 여학생 휴게실은 모텔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침대와 이불이 항상 준비돼 있으니 강의실이나 동아리방보다 훨씬 안락한 환경”이라고 소개했다.
대부분의 여학생 휴게실은 운영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캠퍼스 커플들이 노리는 시간은 문을 닫는 늦은 오후다.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주말이나 방학도 인기다. 휴게실마다 잠금장치가 있지만 여러 명이 관리하다 보니 비밀번호가 유출되기 쉬워 커플들의 ‘성지’가 되는 건 순식간이다. 혹여나 사람이 올까 스릴을 느끼면서도 침대에서 편안히 성관계를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훌륭한 장소는 없다. 여학생 휴게실 휴지통에서 콘돔이 발견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전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전 아무개 씨(28)도 “학교 행사가 있어 밤늦게까지 남아있는 날이었다. 학교 학생회관은 밤이면 불도 다 꺼지고 아무도 다니지 않는다. 한참 학생회관 앞에서 동기들과 놀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3층에서 규칙적인 ‘헐떡임’이 들렸다. 호기심에 올라가봤더니 복도에서 하고 있더라.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 순간에만 즐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이틀에 걸친 캠퍼스 성지순례 동안 대학생들로부터 그들의 ‘건강한 성 생활’을 엿들 수 있었다. 하지만 ‘남이야 뭐라 하든 우리가 하겠다는데’ 식의 발상은 위태롭고 위험해 보였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여대에서 생긴 일 남학생 수강허용 ‘계절학기’가 대목 금남의 구역이었던 여대의 문이 딱 한 차례 공식적으로 열리는 때가 있다. 바로 계절학기 시즌이다. 방학 중 진행되는 계절학기 중 일부 수업은 연계된 대학 어디에서나 수강할 수 있도록 돼있다. 간혹 여대와 연계된 학교도 있는데 남학생들에겐 ‘금남의 집’을 경험해보는 최고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미지의 세계였던 여대를 당당하게 활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 굳이 학점이 부족하지 않아도 계절학기 신청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영화 <캠퍼스S커플> 스틸 컷. 서울의 S 여대에서 계절 학기 수강 경험이 있는 서 아무개 씨(29)는 “남자들은 학점 취득이 아닌 여자친구 만들기가 수강의 목적이다. 학기 중반이 지날 때쯤이면 수업 도중 사라지는 커플이 생겨난다. 수업 중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으니 그 시간을 노려 화장실이나 옥상에서 성관계를 하고 온다. 시험 준비를 핑계로 밤늦게까지 학교에 머물다 온 캠퍼스를 떠돌아다니며 ‘그 짓’을 하던 애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여대라고 해서 방학 때만 ‘섹스 경계령’이 내리는 건 아니다. 남자가 없는 여대 강의실에서 무슨 일이 있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오산. 더 이상 동성애도 숨기지 않는 시대가 되면서 여대에서도 종종 낯 뜨거운 장면이 발각되곤 한다. 사립여대 졸업생 강 아무개 씨(여·27)는 “개강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꽤 넓은 강의실에서 진행하던 수업 중 너무 졸려 깜박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수업은 끝난 상태였고 내가 있던 자리인 강의실 뒤편은 불이 꺼져 있었다. 그런데 맨 앞자리에 여학생 두 명이 있었는데 갑자기 한쪽이 뒷목을 잡고 뽀뽀를 하더라. 그러자 다른 여학생도 적극적으로 키스를 하며 스킨십이 진해졌다. 너무 놀라 자세를 낮추고 황급히 뒷문으로 빠져 나왔다”고 말했다. 의도하지 않게 이런 장면을 목격한 여대생들은 남녀커플의 성관계 장면보다 더 큰 충격을 받기 일쑤다. 때문에 ‘빈 강의실을 열지 못하는 공포증’을 앓는 여학생들도 생겨났다고 한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