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바른이 지난 17일 ‘GM 리콜과 도요타 급발진 관련 한국 소비자의 법적 권리’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제공=법무법인 바른
지난 17일 오후 법무법인 바른이 개최한 ‘GM 리콜과 도요타 급발진 관련 한국 소비자의 법적 권리’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 기획자인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GM의 2900만 대에 달하는 시동키 리콜 사태와 도요타의 200여 건의 급발진 소송 사태는 앞으로 국내 소송 흐름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며 “이번 세미나는 2개월 전부터 김필수 대림대 교수와 논의하다 급변하는 급발진 소송에 대비하자는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배경을 밝혔다.
이 세미나에서 김필수 교수는 2015년을 급발진 역사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 근거로 김 교수는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핵폭탄급’ 발표를 첫 손에 꼽았다. 김 교수는 “오는 9월 자동차 회사들에게는 재앙 같은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며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기대해도 좋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근거는 현재 페달 쪽 블랙박스를 설치한 운전자가 날로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급발진 소송에서 자동차 회사가 늘 주장해 왔던 ‘운전자가 당황해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밟았다’는 주장도 힘을 잃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조만간 제조물책임법도 개정될 예정이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최병록 서원대 교수(법학)는 “공정거래위원회와 법무부가 함께 제조물책임법개정위원회를 구성해 개정 시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법이 개정되면 소비자가 제품의 결함과 손해의 인과관계를 밝혀야할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자동차 회사의 결함을 입증하기 쉽지 않은 소비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김 교수의 ‘폭탄 발표’와 페달 쪽 블랙박스 설치 증가, 제조물책임법 개정 등이 시너지 효과를 낼 경우 내년쯤 급발진 규명의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전망이다.
전 세계적 흐름도 같은 방향이다. 미국 법원에서 도요타의 급발진의 원인이 차량 결함에 있었음을 민간 소프트웨어 컨설팅 업체 바 그룹(Barr Group)이 밝혀냈다. 바 그룹은 2005년형 도요타 ‘캠리’의 급발진이 소프트웨어적 문제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해냈다. 이것으로 도요타는 천문학적 징벌적 배상을 해야 했다. 징벌적 배상은 유사 사례를 막기 위해 직접적인 손해액보다 큰 금액을 벌금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도요타와 법무부가 합의한 배상액은 12억 달러, 배상 관련 비용이 40억 달러, 리콜한 차량이 1200만 대에 이른다. 이날 하종선 변호사가 소개한 GM의 사례는 안전 문제를 도외시한 기업이 어디까지 몰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현재 GM은 아주 간단한 시동키 부품의 결함을 알고도 원가 절감을 이유로 11년간 숨겨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문제의 부품을 교체하는데 드는 추가 비용은 고작 57센트. 우리 돈 600원에 불과했다. 이를 아끼려던 GM 때문에 희생된 사람은 최소 13명으로 알려졌다.
현재 GM은 소비자 집단 소송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GM이 소송에서 패하면 천문학적 배상을 해야 한다. GM이 올해 리콜해야 할 차량은 3000만 대에 육박한다. 단순한 리콜 비용 외에 소비자들의 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리콜 결정에 따라 자신의 중고차 값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을 GM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GM의 이번 리콜 결정은 국내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소비자들도 리콜 요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 변호사는 “GM 건은 국내 법원과 미국 법원에 동시에 소송을 할 수 있으며 이 같은 투 트랙 전략이 보다 유리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도요타와 GM 사례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필수 교수는 “외국에서 급발진이 인정된 도요타와 같은 사례가 있고 그에 따라 천문학적 벌금이 매겨지고 있다. 기업들의 안일한 대응이 더 이상 이어지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만약 급발진이 단 한 건이라도 법원에서 인정되거나 승소한다면 자동차 회사는 대규모 리콜 사태와 더불어 소송까지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병록 교수는 제조물책임법의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은 마치 징벌적 배상 제도가 도입되면 작은 실수로도 천문학적 액수를 배상해야 하는 것처럼 두려워한다. 하지만 11년간 결함을 숨겨온 GM의 사례가 징벌적 배상의 대상이지 기업운영이 바르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징벌적 배상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법무법인 바른의 김기홍 변호사는 “급발진이 있다는 것이 도요타의 사례를 통해서 인정된 만큼 자동차 회사가 ‘급발진은 절대 없다’는 극구 부인만 하던 과거 태도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세미나에서는 의미 있는 통계도 공개됐다. 김필수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급발진 사고로 신고된 국내 사례 122건. 국산차가 104대였고 수입차가 18대였다. 국산차의 판매 비율이 월등히 높다 보니 국산과 수입 중 어느 쪽이 더 안전하다고 이 통계만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가솔린·LPG 엔진 차량과 디젤 엔진으로 구분해보면 통계가 어느 정도 유의미해진다. 가솔린·LPG 엔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94.4%로 월등히 높다. 디젤 엔진은 5.6%에 불과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