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임원 살해 혐의를 받고 있는 20대 매춘녀 알릭스 티첼먼. 놀랍게도 그녀는 부유층 집안에서 자라 한때 작가의 꿈을 품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출처=알릭스 티첼먼 페이스북
지난해 11월 말,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즈 해변에 정박해있던 ‘이스케이프’ 요트 안을 둘러보던 선장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요트 주인이 선실 바닥에 쓰러진 채 홀로 숨져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름은 포레스트 헤이에스(51).
구글의 임원이었던 헤이에스는 다섯 자녀를 둔 유부남이었으며, 17년 동안 평범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던 모범 가장이었다. 고향인 미시간에서 자동차회사 중역으로 일하다가 서부로 건너왔던 헤이에스는 그 후 ‘선마이크로시스템’과 ‘애플’을 거쳐 ‘구글’로 자리를 옮기면서 핵심 간부로 일했다. 특히 ‘구글 X’의 연구개발 부서에서는 자동운전 차량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중요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이렇게 처참한 몰골로 숨진 채 발견되자 실리콘밸리 전체는 충격에 휩싸인 상태. 무엇보다도 그가 왜 요트 안에서 홀로 숨졌을까 하는 점은 많은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살해된 구글 임원 포레스트 헤이에스.
지난 9개월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던 수사에 탄력이 붙은 것은 경찰이 뒤늦게 확보한 감시카메라 영상 덕분이었다. 사건 현장이었던 선실 안의 감시카메라에 찍힌 화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선명한 영상 속에 는 헤이에스 외에도 검은 머리의 젊은 여성이 찍혀 있었다.
팔에 문신을 하고 있던 이 여성은 능숙한 솜씨로 헤로인을 물에 푼 다음 주사기에 헤로인을 넣었고, 먼저 자신에게 주사를 놓은 후 이어 헤이에스의 팔뚝에도 주사를 놓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헤이에스가 가슴을 움켜잡고 바닥에 쓰러지고 만 것이다.
의식을 잃은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던 여성의 모습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헤이에스가 쓰러진 후 7분 동안 이 여성은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헤이에스를 돕기는커녕 태연하게 선실 안을 돌아다니면서 주사기와 마약, 그리고 자신의 소지품을 챙겼다. 심지어 헤이에스의 시신 위를 건너다니면서 남은 와인을 마시는 등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와인잔을 씻고 주변을 정리한 후 선실을 빠져 나가려던 그녀가 다시 돌아와서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리는 모습을 본 29년 경력의 베테랑 수사관인 스티브 클라크는 “이렇게 냉정한 범인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 그녀는 빙산처럼 차가운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화면 속의 여성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헤이에스의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조사했던 경찰은 곧 헤이에스가 성매매 알선 사이트인 ‘시킹어레인지먼트닷컴(SeekingArrangement.com)’을 통해 사건 당일 한 매춘부와 만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바로 ‘AK Kennedy’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는 알릭스 티첼먼이었다.
돈 많은 ‘슈가대디’와 젊은 ‘슈가베이비’를 연결해주는 사이트인 ‘시킹어레인지먼트닷컴’은 3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대규모 데이트 사이트로, 티첼먼은 이 사이트에서 고급 콜걸로 활동하면서 수백 명의 부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헤이에스 역시 그녀의 단골 고객이었으며, 사건 발생 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만남을 가져왔던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티첼먼은 전 남친인 딘 리오펠(오른쪽) 살해 혐의도 받고 있다.
사건 발생 후에도 계속해서 콜걸로 활동하고 있었던 티첼먼이 경찰에 의해 체포된 것은 지난 7월 4일이었다. 고객으로 위장한 경찰이 그녀를 호텔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현장에서 체포했던 것이다. 당시 티첼먼은 화대로 1000달러(약 100만 원)를 받기로 되어 있었으며, 체포 당시 “내 고객 가운데는 돈 많은 부자가 200명이 넘는다”며 으름장을 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티첼먼의 노트북을 압수 조사했던 경찰은 그녀가 범행 후 구글을 통해 헤이에스의 사망 사건 수사 경과에 대해 여러 차례 검색을 했으며, 마약과다복용으로 사람을 죽게 했을 경우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검색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경찰에 체포될 경우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찾아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현재 티첼먼은 2급 살인죄, 증거 인멸죄 등의 죄목으로 법정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피해자를 돕기는커녕 그대로 방치했다는 점이 이번 판결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담당 수사관인 클라크는 전했다.
티첼먼이 체포되자 곧 그녀의 전 남친이었던 딘 리오펠(53)의 사망 사건도 뒤늦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집에서 쓰러진 리오펠은 병원으로 이송된 지 5일 만에 사망했고, 헤로인과 옥시코돈(진통제), 그리고 술을 과다 섭취한 것이 사망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다급한 목소리로 911에 신고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티첼먼이었다. 티첼먼은 흐느껴 우는 목소리로 “남자친구가 약물과다복용이나 뭐 그런 걸로 쓰러진 것 같아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질 않아요”라고 신고했고, 경찰 조사에서는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났어요. 나가보니 남자친구가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어요”라고 증언했다. 또한 그녀는 5분 동안 그를 깨우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말했고, 이에 당시 경찰은 그녀의 진술을 받아들이면서 ‘우발적인 사고’로 수사를 종결지었다.
하지만 헤이에스의 사망 사건이 터지자 티첼먼이 리오펠을 살해했을 가능성 또한 뒤늦게 제기됐다. 리오펠의 집에서 유모로 일했던 크리스티나 브루커(20)라는 여성은 <메일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티첼먼이 리오펠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다. 그녀는 완전히 미친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헤이에스와 리오펠 등 두 건의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 곧 티첼먼의 집안 배경에도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콜걸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엄친딸이었다. 티첼먼의 부친인 바트 티첼먼은 컬럼비아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인재로 30년 넘게 기술관련 회사에서 일했다. 또한 학생 시절에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소속되어 있던 대학생 사교모임인 ‘델타 카파 엡실론’의 회원이기도 했다.
현재 데이터센터 인프라 관리 솔루션 업체인 ‘시냅센스(SynapSense)’의 CEO인 그는 이와는 별개로 세계적인 수준의 포커 플레이어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렇듯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티첼먼은 학비만 3000만~5000만 원하는 사립학교에 다녔으며, 조지아주립대학에 입학해서는 저널리즘을 전공하기도 했다. 두 학기 다니고 중퇴했던 그녀는 그 후 미용학원에 다니면서 모델 겸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했으며, 한때 작가의 꿈을 품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릴 적 친구들이 회상하는 티첼먼은 늘 어두웠다. 심각한 식이장애를 앓고 있었으며, 다리를 칼로 베는 등 자학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가족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남학생들과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는 등 방탕한 생활을 했다. 또한 공포 영화나 연쇄 살인범 드라마를 즐겨보는 등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냈으며, 16세 때부터 마약에 손을 대는 등 불량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헤이에스의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아마도 이런 비뚤어진 성장 배경이 그녀로 하여금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차갑게 돌아설 수 있는 잔인하고 냉정한 사람이 되도록 만든 것 같다고 추측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