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에 성공한 안희정 충남지사는 재선 소감 질문에 “날마다 새로운 아침”이라며 도민에 감사를 표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해 <일요신문> 추석 인터뷰(1114호) 이후 거의 1년 만이다. 재선 이후 좀 달라진 게 있나.
“날마다 새로운 아침이다(웃음). 다만 이제 민선 5기 때 정비했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점은 아주 좋다. 지난 4년은 내가 물려받은 과제를 처리하고 앞으로 내 계획을 짜면서 파악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제 온전히 내 계획을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도민께서 좋은 기회를 주셨다고 본다.”
―앞서 농업혁신, 서해안 경제 활성화 등 과제를 강조했다. 민선 6기 때는 어떤가.
“기조는 그대로 유지한다. 기존의 정부혁신을 통해 유능하고 일 잘하는 지방정부 만든다는 첫 번째 기조는 계속 해 나가야할 부분이다. 앞서 강조한 환황해 경제를 위한 서해안비전 정비와 3농 혁신도 계속 밀고 간다. 여기에 경제 산업과 관련해 하나 덧붙이고 싶다. 충남을 정주여건이 좋은 도시로 만들고자 한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는 예전처럼 산업용지 공급해주고 도로만 놔주면 안 된다. 예전엔 그것이 기업 유치의 핵심이었지만, 지금은 사람이 살고 싶도록 해야 한다. 그 핵심은 ‘웰빙라이프’다. 인위적인 시설을 짓는 ‘서울 흉내내기식’ 개발이 아니라 깨끗한 자연 속에서 어우러지는 도시공간을 만들 것이다. ”
―요즘 정주여건이라면 교육과 문화적 환경이 핵심 아닌가.
“교육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은 잘못된 관점이다. 교원의 질은 어디나 똑같다. 의무교육 수준은 학급당 학생수가 결정한다. 충남은 교실 당 학생수가 20명이 채 안 된다. 사설학원이 문제지만, 요즘 교육부에서 선행학습 금지하는 추세다. 방과 후 원어민 수업 등 특화 프로그램을 통하면 된다. 대학입학도 요즘 수시가 절반이다. 우리 아이들이 입학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또 요즘 세상, 어차피 대학이라는 라이센스가 전혀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지 않나. 우리 아리들은 최소한 도시 아이들 보다 아토피도 ADHD도 적다(웃음).”
―지난 5기를 돌아볼 때, 야권 도지사로서 지방정부 운영에 한계나 어려움은 없었나.
“물론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지방 분권화에 조금 더 힘을 써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대통령이)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그저 도로 몇 개 뚫리는 정도다. 대통령 때문에 어느 한 지역이 팔자 고칠 일 없다. 굳이 예를 꼽자면 정부 부처를 통째로 옮긴 세종시 정도인데, 이것도 대한민국 전체의 이익을 위한 일이었지, 지역을 위한 정책은 아니었다.”
―도의회는 이번에도 여권 일색이다.
“정치적으로 부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정 측면에서 협조하면 된다. 내가 먼저 정치적으로 ‘광’을 내면 견제를 받겠지만, 잘 대화해서 의원님들을 돋보이게 한다면 어느 누가 반대하겠나. 나 스스로 (내 정치를 위해) 과시성, 선심성으로 보여주기 위해 한 일 없다.”
―엄연한 대권주자다. 지난해 이 질문엔 ‘맛집은 맛집대로 소문난다’고 답했다. 재선 이후 이제 제대로 된 맛집 준비가 필요한 거 아닌가. 요즘 맛집은 경쟁도 심해서 맛에 대한 연구는 물론 마케팅도 필요한데.
“일단 자기 스스로 자기가 내는 맛이 맛있다고 판단해야 히트하는 거 아니냐. 나 스스로 충실하게 일하는 게 제일이다. 다른 누구와 비교하면 인생 망친다. 일단 내가 정치인으로서 즐겁고 보람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고 나서 국민들이 다른 일을 하라고 시켜주면, 그리고 내 스스로 용납이 되면 나서는 것이다. 이게 내 인생의 유일한 플랜이다. 일단 도지사 열심히 하겠다.”
―덧붙여 ‘김대중, 노무현의 장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제 안 지사와 문재인 의원의 친노 적자 전쟁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언론들이 너무 가볍고 고약하게 분석하는 거다. 내가 말하는 적자와 장자는 내 인생의 철학과 가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누구랑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일이 아니다. 앞서 마케팅 얘기가 나왔는데, 다 구차적인 일이다. 정치는 종합적 소비 상품이다. 휴대폰이나 자동차와 다르다. 너무 마케팅 기법 가해버리면 절대 본인이나 결과에 안 좋다. 적자전쟁? 그런 거 없다. 벚꽃이 다른 벚꽃보다 빨리 피려고 경쟁하듯 피는가. 때 되면 피는 법이다. 문제는 그 벚꽃 뿌리 속에 얼마나 분홍빛을 저장해 뒀는지가 중요하다.”
안희정 지사는 대권 도전에 대한 연이은 질문에 ‘맛집’과 ‘벚꽃’을 은유로 자신의 입장을 완곡하게 표현했다. 맛집은 결국 맛을 내는 스스로가 노력을 통해 만족해야 하고, 벚꽃도 뿌리 속 깊이 색을 내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표현 속에서 대권에 대한 그의 의미심장하면서도 묘한 자신감이 전해졌다. 결국 맛집도 소문 날 때면 나고 벚꽃도 필 때면 피게 된다는 동서고금의 진리가 대권에 대한 그의 대답을 대신한 셈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대권도전 질문에 ‘벚꽃’과 ‘맛집’ 등 완곡한 은유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국민 모두가 느끼는 것처럼 나도 안타깝다. 우리 사회는 20세기를 벗어났다. 20세기에 용인될 수 있는 것들이 지금은 용인이 안 된다. 국민의 눈높이가 뭐든 것을 결정한다. 정치인들이 이를 못 깨닫는 거다. 야당이 공세해서 (박근혜 정부의) 장관 후보자들이 낙마하는 게 아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이제 이를 허용하지 않는 거다.”
―지난 6·4 지방선거와 오는 7·30 재보선 공천과정을 거치면서 안철수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부호가 붙고 있다. 안 대표의 ‘새정치’는 이제 의미가 희미해진지 오래됐다는 평도 많다. 문제가 뭔가.
“안철수 김한길 공동 지도부가 큰일을 한 것은 맞지 않나. 무엇보다 야권의 분열을 막고 통합했으니까. 안 대표가 짊어지고 있는 문제는 정말 어려운 숙제다. 새정치는 누구에 의해 한꺼번에 달성될 문제가 아니다. 그럼 전 세계 민주주의 역사는 왜 수백 년 걸리겠는가. 이 점은 이해해줘야 한다. 다만 두 대표 모두 현재의 비상체제를 갖고 운영하긴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진 연이은 선거 탓에 힘들었지만, 아마도 재보선 이후 정당 조직의 정상적 운영에 대해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요즘 ‘월드컵은 증명하는 자리’라는 말이 화제다. 안철수 대표는 이번 재보선에서 자신을 증명해야하는 것 아닌가.
“한 번 이기고 지는 것 때문에 사람을 쓰거나 버리면 안 된다. 그래도 안 대표는 과거 국내 정보통신분야 기업 역사에서 상당한 수준을 이룬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가치에 책임을 느꼈던 사람이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판에 보내진 거다. 정치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꼭 1등을 해야 친구하나. 과락을 해도 친구는 친구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로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지금은 힘을 모을 때다. 누구 까면 안 된다.”
―최근 인기리에 막을 내린 드라마 <정도전> 탓에 요즘 많은 정치인들에게 던져지는 질문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정도전’이냐 ‘정몽주’냐.
“정도전도 정몽주도 아닌 시민이다. 역량 있는 시민이 필요하다. 정도전이 꿈꿨던 나라의 한계가 뭔지 아는가. 결국 시민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거다. 그 시대의 민주주의 수준 탓이다. 뛰어난 사람이 역사를 바꾸는 게 아니다. ‘주인 된 백성’이 많아야 제도화된 민주주의가 완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한국 시민의 수준은 상당히 올라왔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앞서도 얘기했지만, 정작 정치가 국민을 못 따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충남 홍성=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